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100일차의 기록
올해의 마지막 늦가을의 정취는 지난 주말의 따스했던 햇살이 마지막이었다는 듯, 창밖에는 차가운 냉기가 가득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새벽 따뜻한 차 한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협력이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을 적으며 이기적 유전자의 마지막 책장을 천천히 넘겼다.
투병 이후의 하루하루는 이미 충분히 소중했고, 의미라는 말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오늘은 이유 없이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 지 정확히 100일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면 내 삶에서 ‘100일’이라는 숫자는
늘 축하의 상징이었다.
만남 100일, 결혼 100일, 아이를 품에 안고 맞이했던 100일, 그리고 입사 후 100일, 모두 기쁨과 설렘이 묻어 있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100일은 그 기억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완치라는 단어를 아직 말할 수 없고,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이겨낸 시간들이 쌓여 이 숫자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퇴원 100일. 이 숫자는 기쁨을 기념하는 숫자가 아니라 내가 견뎌온 날들에 대한 조용한 증명에 가깝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흔들리는 몸과 마음을 다잡으려고, 아침마다 스스로를 세워 올린 작은 의지들이 모여 만들어낸 하루들.
어쩌면 이 100일은 누군가에게 보여줄 기념일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깊고 고요한 성취의 기록일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괜찮다. 조금 느려도, 조금 부족해도, 지금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의 100일은 내가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가장 조용한 선언처럼 느껴진다.
오후에 우연처럼 오래된 친구 두 명에게 연락이 왔다. 서로 모르는 사이의 친구들인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내 안부를 물어왔다.
어릴 적부터 이어져 온 인연만큼이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자연스럽게 느슨해졌다.
한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에 뛰어들어 20대 후반부터 자영업을 시작해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친구다.
또 다른 친구는 대학을 거쳐 직장인이 되었고 어느새 작은 중소기업의 임원이 되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00친구’.
두 사람과의 전화를 끝내고 나서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의 인생이 서로 다르듯,
위로의 방식도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한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사정을 빗대어 맞장구를 쳤다. “나도 예전에...”로 시작하며, 경험을 끌어와 나에게 공감하려는 방식.
어쩌면 본인이 살아온 결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 안에 있었을 것이다.말의 흐름 속에서 친구 특유의 따뜻한 추진력 같은 것이 느껴졌다.
반면 또 다른 친구는 내가 말하는 동안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알고 있는 내용도 모르는 듯 조용히 들어주고, 괜찮다는 말 한마디를 오래 고민한 사람처럼 건넸다.
위로라기보다 묵묵한 동의, 상대의 숨을 따라가 주는 방식의 위로였다. 그 침묵 속에서 묘하게 편안함이 있었다.
나는 둘 중 누구의 방식이 더 좋고 나쁜지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두 사람이 보여준 전혀 다른 위로의 결이 신기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겹쳐 넣으며 다가오고,
누군가는 자신을 완전히 지우며 곁에 서준다.
그 방향이 다를 뿐, 두 마음 모두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새삼 크게 다가왔다.
병을 겪으며 잃은 것보다 더 크게 얻은 것도 있다는 것을 친구들의 연락이 조용히 일러주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말투 속에 담긴 조심스러움, 침묵 속에서 흘러나오는 배려, 자신의 시간을 내어 나의 안부를 먼저 묻는 행위까지 예전의 나는 이런 것들을 너무 쉽게 지나쳤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이렇게 일상의 틈새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날이었다.
병은 분명 나에게 많은 것을 빼앗고 나의 일상을 흔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진심을 더 세밀하게 들을 수 있는 감각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솔직해질 수 있는 여유를 되돌려 준 것 같았다.
오늘 두 명의 친구로부터 받은 위로는 그래서 단순한 안부 전화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다시 살아가야 할 방향을
아주 작은 목소리로 가리켜주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그런 사실을 조용히 확인한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