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2.내가 했던 투자중 성공한 것은 금이빨 뿐이었다

by 마부자


아직 아침이라 부르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며칠째 이어진 밀도 높은 찬 공기가 대지를 짓누르듯 깔려 있었고 어둠은 물러날 기색 없이 오히려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늘 하던 대로 같은 시간에 몸을 일으켜 베란다에 섰다. 차가운 공기와 함께 찾아온 계절은 언제나 생각보다 먼저 나를 깨운다.


이번주 부터는 독서를 통한 성장에 관한 책과 함께 아침 사유를 시작했다. 그리고 ‘존재’라는 단어를 붙잡고 한참을 씨름했다.


단어 하나가 이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다.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대개 내가 가벼울 때다.


여전히 강한 바람과 차가운 날씨로 인해 오전에는 책과 함께 하고 운동을 한 뒤 오후에 어쩔 수 없이 외출을 위해 패딩을 꺼내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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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 가는 날이다.

내 입속에는 현재 금 이빨이 네 개 존재한다.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다. 양치질을 극도로 싫어하던 나는 결국 충치 네 개를 얻었고 치과에서는 금니 네 개에 약 백만 원이라는 견적을 내밀었다.


그날 아버지의 표정도 함께 떠올랐다. 견적서보다 더 무서웠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였다.


치과가 아니라, 저녁 무렵 집으로 찾아온 ‘치료보조사’, 옷장에 머리를 기대고 입을 벌린 채 인생 최초의 야매 시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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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따지면 엄연한 불법 시술이고

당장이라도 경찰에 잡혀갈 일이었지만,

약 40년 전에는 그랬다.


놀랍게도 그 금니들은 39년간 한 번도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기능만 놓고 보면 장인 정신이었다.


다만 웃을 때마다 번쩍이던 금니 덕분에 친구들의 놀림도 함께 따라왔다. 나는 웃을 때마다 부자가 되는 고등학생이었다.


얼마 전 치과에서 진단을 받았다. 금니 두 개는 너무 오래되어 교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새 금니 한 개에 백만 원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이제 금은 입에 넣는 시대가 아니구나’라고 결론 내렸다.


결국 네 개 모두 크라운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주까지 잇몸치료를 마치고 오늘 기존의 금니를 두개를 벗겨내는 날이었다.


치료는 그리 아프지 않게 진행이 되었다. 아픈 건 항상 치료가 아니라 계산서다.

결재를 하기 직전, 문득 무언가가 번뜩였다.


금값… 비싼 금값… 그렇다면 내 입속에 있던 것도 금은 금인데

이거… 달라고 하면 주지 않을까? 아니 줘야하는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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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 속에서는 이미 계산이 끝났다.

최소 18K일 것이고,

네 개면... 헐... 이건 이빨이 아니라 소형 자산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말이 안 나왔다. “제 금니 주세요”라는 문장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잠시 인간의 존엄과 소심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


그렇게 한참을 뜸들이다 조용히 물었다. 최대한 공손하게, 그러나 지나치게 당당하지 않게 “저기 제 금 이빨은 다시 돌려주실 수 있나요?”


간호사는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웃으며 “원하시면 드려요? 드릴까요?”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면서 “네 주세요!”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말았다.


잠시 뒤 작은 1회용 팩에 담긴 금니 두 개가 돌아왔다. 39년간 내 입속에서 고생한 흔적이었다.


심지어 봉투에는 ‘금 이빨 고가 매입’이라는 문구와 보석상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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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확신했다.

요즘 금값은 정말 삐싸다.


집으로 오는 길,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금니를 만지작거리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이가 흔들리면 집에서 뽑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가장 무서웠다.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일단 겁부터 먹고 흔들려서 빠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할머니에게 찾아갔었다.


할머니의 발치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실을 감고 대화를 하다 갑자기 이마를 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문고리에 실을 묶고 밖에서 잡아당기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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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공포 영화였다. 이에 실을 감는 순간부터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프지 않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 위안은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아프지 않게 이가 빠지고 그 자리가 빨갛게 피멍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한다.


빠진 이를 내게 돌려주시며 밖에 나가 지붕위로 던지거나 땅속에 묻으며 “헌니 줄게 새이다오” 라고 꼭 말하라는 추억이 떠올랐다.


주머니 속 금니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지붕 위로 던졌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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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더 이상 내 이가 아니다.

이건, 39년전 나도 모르게 투자했던

나의 재테크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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