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라고 부르기에는 빗줄기가 제법 성격이 급했다. 조용히 내려앉는 비가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려는 비. 괜히 나까지 덩달아 무언가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하루였다.
이런 날에는 평소 읽지 않던 결의 책을 펼치고 싶어진다.
넷플릭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변요한이 주연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했다. 혹시라도 결말을 먼저 알게 되면 설렘이 줄어들 것 같아서였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스무 살이 등장했다. 서툴고, 과장되고, 모든 감정이 최대치로 설정되어 있는 나이. 사랑은 곧 인생이고, 고백은 곧 운명이며, 이별은 곧 세계의 종말이던 시절.
스무 살의 사랑이라니.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10대의 풋사랑과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을 빼면, 내 연애사는 의외로 단촐하다. 열여덟에 만나 결혼까지 이어진 한 사람. 내게 스무 살의 사랑은 여러 권의 단편집이 아니라 단 한 권짜리 장편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밤새 통화를 했다.
“먼저 끊어.”
“아니야, 네가 끊어.”
이 대화를 스무 번쯤 반복하다가 결국 둘 다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던 시간들.
그때는 전화기 너머의 숨소리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쳤다.
“지금 뭐 해?”라는 질문 하나에 세상이 반짝였다.
서로의 하루를 보고서처럼 보고했고, 내일 만날 시간을 초 단위로 계산했다.
사랑은 그 자체로 사건이었고, 모든 감정이 속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나와 사랑을 속삭이던 그녀는 지금 연휴가 끝났다며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먼저 잘게” 하더니, 침대에 눕고 5분도 되지 않아 코를 골며 잠들었다.
밤새 통화하던 그녀가 이제는 밤새 코를 고는 사람으로 진화했다. 사랑의 형태도 진화론을 따른다는 걸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 코고는 소리에 당황했다.
‘이 사람이 이렇게 잘 자는 사람이었나?’
스무 살의 그녀는 분명 속삭이듯 말하고, 조용히 숨 쉬던 존재였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 그때도 코를 골았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내 심장이 더 크게 뛰어서 못 들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웃긴 건, 이제 그 코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내가 먼저 눈을 뜬다는 사실이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괜히 불안해져서 슬쩍 확인한다.
이불은 잘 덮고 있는지, 숨은 고르게 쉬고 있는지. 스무 살에는 숨소리 하나에 설렜다면, 지금은 숨소리가 없으면 걱정이 된다.
사랑은 이렇게 방향을 바꾼다. 설렘에서 확인으로, 두근거림에서 안심으로.
밤새 통화가 사랑의 증거였다면,
지금은 5분 만에 잠드는 편안함이 증거가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변화가 꼭 초라한 것만은 아니다. 밤새 통화하던 시절에는 서로의 존재를 계속 확인해야 했다. 끊기면 사라질까 봐, 멀어질까 봐.
지금은 굳이 붙들지 않아도 된다.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책으로 돌아간다.
스무 살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있지만, 내 사랑 이야기는 이미 계속 쓰이고 있다는 것을.
스무 살의 청춘들은 계속 사랑에 빠지고, 계속 고민하겠지.
나는 그들을 응원하면서도 안다. 언젠가 그들 역시 코고는 사랑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때가 오면 알게 되겠지.
사랑은 설렘의 크기가 아니라, 함께 버텨온 시간의 길이라는 것을.
비는 언젠가 그치고, 밤은 깊어진다.
그리고 내 옆에서는 여전히 일정한 리듬으로 코고는 소리가 난다. 나는 그 리듬을 들으며 생각한다.
이 정도면, 내 스무 살의 사랑은 꽤 잘 자라고 있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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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읽던 책을 덮고 작은소리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그냥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며 좋은 문장이 떠올라 포스트잇에 적으며 스스로에게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막내가 드디어 내일 대학에 등교합니다. 길었던 방학을 무탈하게 마친 녀석에게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