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모두가 비흡연자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53년 동안 담배를 입에 대지 않고 살아온 나에게 편도암이라는 녀석이 찾아왔을 때도, 어쩌면 그래서 더 억울한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담배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담배가 멀어졌다.
현재까지는 막내만 그대로라면 우리 가족은 꽤 드물게 ‘비흡연자 가족’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사람 일이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제 아침 작은 사건이 있었다.
아내가 막내의 쓰레기통을 비우다가 담배꽁초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순간 집 안의 공기가 약간 달라졌다.
아내는 당장 막내를 깨워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노발대발했다. 마치 범인을 현장에서 잡은 형사의 표정 같았다.
나는 일단 아내를 말렸다. 어젯밤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온 녀석을 지금 깨워봤자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점심 무렵 집에 돌아왔을 때 막내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들, 혹시 담배 피우니?”
막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괜히 오해하지 않도록 덧붙였다.
성인이니 술을 마시는 것처럼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야단칠 생각은 없다고. 다만 궁금해서 묻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막내의 대답은 같았다.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담배꽁초 이야기가 나왔다. 막내는 어젯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기억이 흐릿한데 아마 누군가 버리라고 줬던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막내에게 단호히 말했다.
“술은 괜찮은데 담배는 절대 안돼!”
본인이 정색을 하며 끝까지 아니라고 하니 일단 이 사건은 단순 에피소드로 마무리되었다.
저녁이 되어 하루를 정리하며 오늘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아내의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술은 괜찮은데 담배는 절대 안돼!”
생각해 보면 이 말에는 묘한 기준이 숨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괜찮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마음.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좋은 음식이 되고, 내가 싫어하는 음식은 이해할 수 없는 취향이 된다.
내가 즐기는 취미는 삶의 활력이 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취미는 괜한 시간 낭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술과 담배 같은 기호식품도 마찬가지다. 술을 즐기는 사람은 술자리를 자연스러운 문화라고 말하고,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습관처럼 바라본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들은 결국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환경 속에서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그래서 그 기준은 늘 어느 정도 편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기준이 어느 순간 세상의 기준인 것처럼 느껴질 때 생긴다.
그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선택을 판단하기 시작한다. 나의 기준이 옳다고 믿는 순간, 다른 사람의 기준은 틀린 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바라보는 방법은
내 기준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되 그것이 세상의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을 멀리하되 그것이 틀렸다고 단정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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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막내의 눈빛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비흡연자인 막내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어머니가 겨울무로 김치를 담궈보내주셨습니다. 감사히 잘 먹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이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오늘 카톡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니 더 친근하게 느껴졌고, 그 사실만으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