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딸과 야구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두바이 쫀득 쿠키(두쫀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뭔가 굉장히 세련되고, 최소한 입안에서 사막의 낭만쯤은 느껴질 것 같았다.
그 유명한 두쫀쿠.
딸은 이미 먹어봤다며 묘하게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맛있다고도, 맛없다고도 아닌 그 어딘가의 표정.
“하나 정도는 먹을 수 있는데, 굳이 또 사 먹진 않을 것 같아요.”
이 말이 이미 모든 걸 설명해주고 있었지만,
나는 그 애매함에 더 끌렸다.
그래서 결국 말했다.
“그럼 아빠도 한번 먹어보자.”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문을 해주겠다고 했고,
나는 괜히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탐험가라도 된 기분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오늘,
커피와 함께 배달된 두쫀쿠가 내 앞에 놓였다.
겉모습은 아주 익숙했다.
찰떡 아이스를 닮은,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듯한 비주얼.
“이게 그렇게 유행이야?”
나는 약간의 기대와 함께 한 입을 베어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아주 먼 곳까지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식감은 분명 쫀득했다.
그런데 그 쫀득함 사이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았다.
이건 마치,
두바이에서 찹쌀떡을 먹다가
갑자기 모래바람이 불어
입안에 고운 모래가 한가득 들어와 함께 씹는 느낌.
옆에 아내도 한 입을 베어 물더니
아무 말 없이 슬그머니 남은 반쪽을 내 쪽으로 밀어두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새로운 경험이네.”
그렇게 어렵게 한 개를 마무리하고,
나는 서둘러 커피와 물로 입안을 정리했다.
그래도 딸이 보내준 것이니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남겼다.
“맛있게 잘 먹었어 근데 얼마야?”
“하나에 5,500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런데 딸은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은 싸진 거야. 예전에는 8,000원도 했어.”
그 말을 듣고 나니
이건 맛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먹고 자란 것은
꿀떡, 인절미, 찹쌀떡이었다.
쫀득함 안에는 고소함이 있었고,
단맛 안에는 편안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쫀득함은
어딘가 설명이 필요하고,
한 번쯤은 경험해봐야 하는 맛이 되었다.
순간, 이제 세대 차이라는 것은
말이나 생각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입맛에서도 시작된다는 것을.
결국 아내는 결단을 내렸다.
“안 되겠다. 떡으로 버린 입맛은 떡으로 찾아야지.”
그리고 집 앞 떡집에 다녀왔다.
한 팩에 5천 원짜리 꿀떡.
우리는 그 꿀떡을 먹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또 한 번 웃었다.
“역시 우리는 두바이가 아니라 한국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새로운 음식 앞에서
몇 번쯤 더 놀라게 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입맛이 다르다는 건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온 시간이 다르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