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품고 세상의 끝까지 돌진할 것이다.
최진영 -2006년<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화롱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끝나지 않은 노래>, <나는 왜 죽지않았는가>, <구의 증명>,과 소설집 <팽이>가 있다. 한겨레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얼마전 딸의 집에 세탁기롤 고쳐주러 갔다가 마무리하고 나오는 길
“세탁기 고쳐준 수고비 대신이에요.”
손에 쥐어진 것은 돈이 아닌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딸이 건넨 책은 바로 최진영 작가의 장편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였습니다.
손끝으로 표지를 쓰다듬으며 딸을 쳐다보며 물었다.
“갑자기 웬 책이야?”
그러자 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얼마 전에 아빠가 최진영 작가의 에세이 ‘어떤 비밀’에 대해 후기 쓴 걸 봤어요.
좋아하는 작가인 것 같아서 준비했어요.”
내가 쓴 짧은 후기 하나를 기억하고, 그것을 생각해 선물로 이어가는 딸의 섬세한 마음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책을 손에 든 순간, 단순한 책 한 권 이상의 의미가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딸이 보여준 사랑의 표현이자, 내 취향을 존중하고 공감하려는 그녀의 노력이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이런 교감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그리고 딸이 그것을 먼저 보여줬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그 순간, 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이 책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의미를 온전히 음미하겠다고. “해가 지는 곳으로”라는 제목처럼, 이 책도 나를 또 다른 세계로 데려가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오늘 이 책을 펼쳤습니다.
최진영 작가의 장편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는 원인 모를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계를 배경으로,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생존 본능을 깊이 탐구한 작품입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주인공들은 한국을 떠나 낯선 땅 러시아의 울란우데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다섯 명의 인물, 류, 도리, 지나, 건지, 미소가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각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며, 자신만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소설은 폐허가 된 세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장면들과 변해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합니다. 동시에, 생존의 갈림길에서 피어나는 연대와 사랑, 그리고 희망을 보여줍니다. 특히 도리와 지나의 관계를 통해 동성애라는 소재를 섬세하게 다루며, 극한 상황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적 감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작품은 생존과 윤리, 인간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며, 각 인물이 가진 사연과 선택을 통해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바이러스라는 파괴적인 배경 속에서 생존을 향한 필사적인 여정을 그린 《해가 지는 곳으로》는, 독자들에게 인간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과 여운을 남깁니다.
당신은 한국을 아는가?
한국은 아직 그곳에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소설은 시작합니다.
<해가 지는 곳>은 다섯 명의 주인공, 류, 도리, 미소, 지나, 건지의 시선을 따라가며, 각자의 고통과 생존의 여정을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주요 등장인물과 그들의 이야기
류는 둘째 아이를 바이러스로 잃고, 남편 단과 딸 해민을 지키기 위해 울란우데로 피신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에서 늘 일에 쫓겨 가족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후회에 시달립니다. 자신이 남편을 사랑했는지조차 의문스러웠지만, 결국 그녀의 사랑은 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도리와 동생 미소는 부모를 잔혹하게 잃은 후, 생존을 위해 서로를 의지합니다. 지나의 도움으로 비교적 안전한 환경에서 지내지만, 지나의 친척들은 도라를 성폭행하는 끔찍한 일을 저지릅니다. 도라와 미소는 결국 그 무리를 떠나 다시금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지나는 처음엔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도리와 미소를 돕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도리를 성폭행하려는 삼촌들을 방관한 것을 알게 되면서 깊은 혼란에 빠집니다. 지나의 내면은 신뢰하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이 사랑한 도리에 대한 감정으로 복잡하게 얽힙니다.
건지는 가정폭력과 상실로 얼룩진 과거를 가진 인물로, 지나를 사랑하지만 말하지 못한 채 곁에서 묵묵히 지켜봅니다. 도리가 무리에게 희생당할 때 이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그는 홀로 고독한 생존을 이어가며 지나를 그리워하지만, 결국 지나가 도리를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미소는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예리한 직감으로 모든 상황을 파악합니다. 도리와 지나, 그리고 건지의 감정까지도 알고 있는 미소는 이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침묵의 존재로 깊은 울림을 줍니다.
최진영 작가의 <해가 지는 곳으로>는 단순히 생존기를 다룬 소설이 아니라,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 내면의 본질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탐구한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바이러스라는 재앙이 휩쓸고 간 세계에서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통과 상실을 경험하며, 그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본질을 마주합니다.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희망의 흔적을 붙잡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특히 이 책에서 주인공들의 이름은 각 인물의 삶과 내면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며, 작가의 메시지를 더욱 깊이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로 느껴집니다. 각 이름이 가진 의미는 단순한 호칭을 넘어, 이들의 내면과 갈등, 그리고 소설 전반에 걸친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먼저, "도리"라는 이름은 인간의 도리, 즉 윤리와 도덕을 떠올리게 합니다. 도리는 부모를 잔혹하게 잃고, 성폭행과 같은 극한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동생 미소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집니다. 그녀의 선택과 행동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인간의 도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해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한 도리의 모습은, 인간이 어디까지 도덕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가능한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지나"라는 이름은 그녀의 내면에 담긴 희망과 연결됩니다. 그녀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이 모든 혼란과 고통이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합니다. 지나의 존재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의 강인함과 연대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 또한 배신과 갈등, 사랑의 고통을 경험하며 내면의 혼란을 겪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이 암시하듯, 지나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건지"는 그의 내면적 갈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건지, 지나를 사랑해도 되는 건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건지." 그의 이름은 이러한 의문을 품고 살아가는 그의 삶을 대변하며, 동시에 독자들에게도 삶의 선택과 방향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건지의 내면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지는 질문과 닮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소"라는 이름은 이 책의 가장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도리도 지나도, 심지어 류와 건지까지 모든 사람들이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미소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존재합니다.
그녀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절대 놓아서는 안 되는 가치, 즉 "미소"를 통해 나타나는 작은 희망과 따뜻함을 상징합니다. 작가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두려운 상황이라도, 우리는 "미소"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 미소라는 이름은 작품 전체의 핵심 주제이자 인간의 가장 순수한 희망을 표현한 상징으로 보입니다.
주인공들의 이름을 통해 작가께서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내면과 윤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 낸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 이름들은 각 인물의 삶과 선택, 그리고 독자들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을 풍부하게 만들어줍니다. 각각의 이름은 소설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며, 독자들에게 삶의 복잡성과 희망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만듭니다.
이 작품은 바이러스라는 외적인 재앙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드러내고 왜곡시키는지에 집중합니다. 작가께서는 인간이 때로는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희망과 사랑이라는 연약하지만 강력한 힘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하십니다. 각 인물의 내면은 우리 모두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상실, 후회, 고통, 사랑, 그리고 희망이 얽힌 이 이야기를 통해, 삶의 본질과 오늘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해가 지는 곳으로>는 인간 내면의 심연을 섬세히 그려낸,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