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이를 먹고 있단다.

by 포카혼타스



너는 어리잖아. 이런 거 본 적 없잖아.



임대차 계약서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옆자리에는 20대 초중반 남짓했을까 대학생을 두고 그녀의 엄마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엄마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 이면에는 그녀의 딸이 사기라도 당할까 봐, 혹은 실수라도 할까 봐 불안해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그녀의 딸은 대학교에 입학할 만큼 공부도 했을 것 같았고, 그 계약서에 있는 내용도 모두 알 것 같았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계약서를 스스로 확인할 만큼의 어른은 되지 못한 모양이다.


그녀는 엄마 옆에서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여기 사인해. 여기도 이름 써.” 하면 가서 자기 이름만 써넣는 형식이었다.


나는 그녀가 조금은 안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아마 늘 엄마의 불안한 마음속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할 만큼의 어른은 평생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오후 은행에서는 이런 얘기를 들었다.


나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 못해요.



무슨 어플로 어디에 접속을 해서 코드를 받아야 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그걸 스스로 할 줄 아셨다면 은행에서 그분을 볼 일은 없었겠지.

그들은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는 법, 공인인증서를 설치하는 법, 심지어는 현찰을 안 받는 곳에서 결제하는 법부터 배워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들에게는 “너 나이 많잖아. 이런 거 못하잖아.” 하고 알아서 대신해줄 엄마도 없을 테 였다.

되레, 그들의 집에는 아직까지도 “너는 어리잖아. 밥 한 끼 제대로 못 차려 먹고 다니지?” 하며 자식을 향한 불안한 마음이 일부 숨겨져 있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게 중에는 한때는 유명한 병원의 의사였으며, 이름을 날리던 정치인들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사람들은 식당에서 음식 하나 주문하기 어려워하는 이의 역할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그 노인 분은 은행의 텔러 앞에서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가 텔러가 “여기 사인하세요. 여기도 이름 쓰세요.” 하면 가서 자기 이름만 써넣는 형식이다.


나는 그가 조금은 안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아마 늘 무언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남은 생 동안 발견하고 살 것만 같았다.

그건 세상의 속도가 자신의 인생 속도를 추월해 버린 이상 피할 수 없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 노인의 느린 움직임은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너도 나이를 먹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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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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