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울푸드는 냉면이다.
나는 냉면이 정말 좋다.
엄마는 그게 조미료 덩어리라 연신 싫다며 손사래를 치는 음식이었지만 난 그게 참 좋았다.
그건 아마 왕십리에 있는 사철냉면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사철냉면의 육수는 붉은색이다.
그건 물냉면이나 비빔냉면을 고민할 새 없이 매우면서 새콤한 육수야! 하고 던져지는 쾌감 같은 것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60년은 거진 넘었을 것 같았다.
한 번은 고급스럽지도 않은 그 식당에서 냉면을 후루룩 먹고 있는데,
다른 테이블에서 앉아있던 교수님께서 우리 테이블에 만두를 결제해 놓고 나가셨다.
그 통에 우리는 한 냉면에 만두 한 개씩은 얹어 먹을 요량이 생겼다.
그전에는 늘 냉면만 한 그릇씩 시켜 먹었던지라 만두는 메뉴에 있어도 열외였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집에 가면 아예 만두를 시켜버렸다.
물론 늘 냉면 한 그릇이면 찼던 배가 늘어나버린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차라리 배를 좀 일찍 비워서라도 그 집에서는 두 개를 꼭 먹고 싶던 심정이었다.
그 이후로는 출국할 일이 있으면 인천공항에서는 꼭 냉면을 사 먹고 나갔다.
대개는 거진 다 한국식당에 가면 어떻게든 그럭저럭 구해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는데, 냉면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마 첫 번째로 내가 지독히 냉면을 그리워했던 시기는 칠레에 살 적이었던 듯하다.
얼마 있지도 않은 돈을 수중에 들고서 한국 마트를 가보겠답시고 땡볕을 기어이 걸었다.
버스 값이라도 하나 아끼면 신라면 하나 더 집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심정이었다.
어렵사리 도착한 한국 마트에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것이 있지도 않았지만
오랫동안 한국말이 적힌 것을 그리워하던 나에게는 감동 같은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보리라고 상상도 한 적도 없던 청수물냉면이라는 브랜드였다.
나는 그 봉지를 한참 동안이나 쥐었다가 놓으며 망설였다.
시판 냉면 육수는 내가 기억하는 맛과도 확연히 다를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그 돈으로는 차라리 오뚜기 카레라도 하나 더 사서 몇 번이나 밥을 더 해 먹는 게 낫다는 계산이 머리에 내심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냉면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냉면 육수를 만들 줄 몰랐다. 그 면도 뽑을 줄을 몰랐다. 그건 내가 어떻게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판용 육수라도 먹기만 행복해질 것 같았다.
나는 그날 결국 그 냉면을 사갔고, 그날 집에서 바로 끓여 먹었다.
한국의 여느 냉면 집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는 맛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게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봐봐. 지구 반대편에서도 냉면 먹을 수 있잖아. 하는 그런 거였다.
그 이후로도 나는 이태리 피렌체를 갔을 때나 스페인 마드리드를 갔을 때, 한식이 당기면 한국 식당을 찾았고 내 메뉴는 항상 냉면이었다.
동반자들은 나에게 핀잔을 주기 십상이었다.
“그거 맛없어.”
나는 알고 있다고 했다.
그곳들은 냉면 전문점도 아니었고, 그들이 만드는 냉면 또한 시판용 육수를 쓰고 오이와 삶은 계란쯤 올려 만든 그냥 인스턴트 냉면 같은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한식당에서 그걸 먹는 것이 제일 남는 장사 같았다.
그리고는 항상 두둑한 배로 기분 좋게 식당을 나섰다.
그 이후로는 아마 가양에 있던 세숫대야 냉면집이 나의 또 다른 위로처쯤 되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어떤 회사 인턴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상사가 눈에 보이는 편애와 폭언을 일삼던 때였다.
나는 인턴이었기에 그저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이 기간도 끝날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았지만
그래도 걸어 다니는 길이 늘 평탄치만은 않았다.
어떤 날은 퇴근을 하고서 하염없이 동네를 빙빙 돌다가 들어가기도 하고, 일부러 버스 정류장을 한 두 정거장 앞서 내려가보기도 했다.
그러다 찾은 냉면집이 그 집이었다.
그때는 이미 평양냉면이 유명해져서 한 그릇에 만 오천 원이다, 만 팔천 원이다 하던 때였는데도 그 집은 여전히 만원 미만의 냉면을 팔고 있었다.
싼 가격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맛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나 사람들이 계속 오고 가는 북적이는 곳이었다. 덕분에 조금은 왜소하게 줄어있던 내 마음에도 힘이 들어갔다. 물론 그날의 나는 가위로 면을 잘라 육수까지 다 마시고 나왔다.
이번 여름 나는 인천공항에서 마지막으로 냉면을 사 먹었더랬다.
동생과 낄낄거리면서 우스갯소리로 이게 마지막 만찬이라고 했다.
그러고선, 이번 추석에는 여기에서 11불 즈음하는 냉면을 다시 사 먹었다.
식초와 겨자통쯤은 구비를 한 그럴싸한 집이었다.
그래도 난 이쯤은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겐 냉면을 사 먹을 돈이 있으며, 냉면을 파는 곳에 살고 있다는 것. 이쯤이면 나의 마음은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