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어

by 포카혼타스


코로나가 극심하던 해, 나는 백신도 예방책도 없는 나라에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기는 했지만 인사를 할 때면 여지없이 마스크를 벗고 볼뽀뽀로 인사를 했다.

그것을 거르면 인사를 한 것 같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다.

볼뽀뽀는 서로의 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맞대며 소리를 내는 정도였다. 때로는 어깨를 붙잡는 정도가 아니라 끌어안고서 부둥켜안아야만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 강렬한 마음을 표현해야 풀려나는 경우였다.



당연히 일회용 마스크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 나라는 공산품이라면 젬병이었다. 대개는 중국에서 수입해와야만 했다. 모두가 마스크 얘기만 하고 있었으니 뻔한 결과였다. 한 달쯤 지나자 사람들은 갖고 있던 갖가지 천을 잘라 마스크를 직접 만들었다. 기상천외한 모양들이 나왔다. 대개는 웃고 넘어갈 정도의 마스크였다.



나는 백신도 나오기 전에 코로나에 걸렸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스물몇 명 정도 걸린 상황이었다.

아마 추정컨대, 친구가 잠시 자기가 가방에서 뭘 찾는다고 아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동안 옮긴 것 같았다.

나는 심각한 고열에 시달렸고, 땀을 뻘뻘 흘렸다.

간장냄새도 못 맡을 정도로 후각을 잃었다.

한 번은 물을 올려놓았다가 냄비를 새까맣게 태웠는데, 탄 내를 전혀 맡지 못해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렇게 격리된 생활을 보내는 동안, 아파트 경비원들은 번갈아가면서 나에게 꼬박꼬박 전화를 걸었다.

“우리 아파트 모든 사람들이 네가 낫기를 바라고 있어.”

“네가 집에서 나오질 못하니, 이 아파트가 너무 무미건조해. 네가 빨리 나아서 환한 밝음을 전해줬으면 좋겠네.”

“아무 이상 없지? 비타민을 잘 챙겨 먹어. 금방 나을 거야.”



백신도 없이 혼자 아파트에 갇혀, 하루에 몇 만 명이 전 세계에서 죽어나가고 있다는 뉴스만 보던 나에게 그 전화는 희망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때 사람이 외로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들은 내가 감염되었는지 몰랐을 때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서 자신들을 감염시켰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내가 금방 나아 다시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소독은 했어요?”

“그럼. 네가 알려줘서 바로 소독을 했어. 그런 건 걱정 마.”


나를 안심시키려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걱정이 안 되는 건지 궁금했다.

회사에도 나의 감염사실을 알리고서, 나와 접촉한 이들에게 격리에 들어가야 한다고 알렸다.

나는 그들에게 못내 미안함 마음을 갖고 있었고, 누누이 그 마음을 표현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건 바이러스잖아. 눈에 안 보이는 거야.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예방은 할 수 있지만, 우리가 다 막을 수는 없다고.”



사람이 죽어가는 뉴스에서도 그렇게 한결같이 얘기하다니.

나는 그래도 그런 위험에 빠뜨린 나 자신을 책망하며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어. 죽지 말았어야 할 사람은 없어.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누구도 그걸 피할 수 없어.”



웃기게도 그들의 말에서 이상한 위로가 느껴졌다.

실제로 그곳에서는 직장 동료, 누군가의 가족이 산소 포화도 부족으로 시달리다 죽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렸다.

그건 ‘이랬더라면 그들은 죽지 않았을 텐데!’하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나 자책스러운 마음보다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온 힘을 다해 이해해보려 하는 애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를 향한 위로이기도 했다.


내가 아기를 안지 않았더라면, 걸리지 않았을 텐데! 보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코로나에 내가 걸렸을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파트에 혼자 갇혀 고열에 시달리다 죽을 수도 있음을, 그것이 소스라치게 놀랄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물을 많이 마시는 것과 비타민을 열심히 사 먹기로 마음먹었다.


그건, 내가 지나간 인생을 돌아보며

“그 일은 겪지 않았어야 했어! “ 보다

이미 일어난 일들을 꽉 끌어안고 헤쳐나가 보려 애쓰는 사람들이 준 지혜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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