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 살 적의 이야기다.
너무 돈 자랑을 하지 마. 그러니까 네가 그 사람들 보다 잘 산다는 걸 티 내지 말라고. 되도록 감춰.
60세쯤은 지나셨을 한 한국인 아주머니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그곳에 경험을 오래 쌓은 현지 교민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의아했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한 번도 돈 자랑을 한 적이 없었다.
사실은 할 수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라온 동네는 학군지로 손에 꼽을만한 곳이었는데, 한 집 건너면 의사나 사업을 하는 부모님들 곁에서 자란 이들이었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너도나도 세뱃돈을 몇십 만원씩 받았는지 자랑하던 때에 나는 얼마를 받았는지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건 해가 지나도 액수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어서 무력감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명절은 그다지 나에게 반갑기만 한 때는 아니었다.
그런 때면 아버지는 으레 ‘자신의 집이 얼마나 가난했었는지’와 ’왜 자신의 형제들은 자신보다 더 가난하게 살고 있는지’를 되풀이 말씀하셨기에 나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건 아마 오랜 추억을 기억하려는 아버지의 명절 보내는 방식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왜 세뱃돈을 많이 받지 못하는지 스스로 되뇌는 방식이었다.
그네들은 명절이 지나고 나면 휴대폰을 바꾼다던가 가방이나 신발을 바꿔서는 나타났다.
나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 고작 명절을 기념한답시고 주어진 몇 장으로는 그럴 수가 없었던 터였다. 나는 그들이 바꿔 온 것을 구경하며 ’ 좋겠다.‘고만 얘기해 줬다.
되도록이면 축하해 주려 노력하였으나 아마 그들도 내가 진심으로 기쁘지 않은 것쯤은 느낀 것 같았다.
물론 가정교육은 그 세뱃돈을 감사히 여기라는 가르침이었으니 그런 마음이야 묻어두기로 했다.
그런 내가 필리핀에 갔을 때 그들은 나에게
‘우리는 여기서 부자‘라고 알려줬다.
내가 보통으로 여기는 천 가방, 신발, 옷, 심지어는 커피 살려고 돈을 내기 위해 꺼내는 지갑까지도 대단하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사실은 지갑 이전에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는 행위조차 그들은 ’ 쟤는 돈이 많아.’라는 단정이 내려진다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나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도 안 보는 듯 보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식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과 그들의 시선 속에 어울려 살기 위해 얼마나 포기할 수 있는지 가늠을 해보기 시작했다.
예컨대 나는 코코넛 워터를 매장에서 그냥 사 먹을 테지만, 옆 집 사는 그 가정에게 저어기 나무에 있는 코코넛 따는 걸 봤는데 좀 나눠줄 수 있느냐 하고 한번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도 매번 필요할 때마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매장에서 코코넛 워터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을 마주칠 때면 그리 어색한 순간이 더 없었다.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보다 더 나은 것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느끼는 ‘탐심’이나 ‘무력감’ 같은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그 마음을 잘 알고 또 숨기려 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웃에게서 확연히 느껴지는 그 마음 앞에서 나는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건 우리 둘 다 스스로의 차이와 마음을 어찌할 수는 없음을 인정한 데서 나온 것이었다.
나에게 그 말을 한 그 아주머니는,
때로는 상대가 그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해 ‘반드시 네가 가진 것을 뺏고야 말겠다.’ 라던지 ‘지금 당장 폭력을 써서라도 가져야겠다.‘라는 것으로 이어져 나에게 피해가 이어질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실제로 몇몇 이들은 간사한 마음으로
아무도 모르는 그 순간에 스리슬쩍 다가와 나의 가방의 지퍼를 열려하거나
대뜸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내놓으라는 방식으로 다가왔다.
나는 무력감을 느끼지만 그것을 숨기며 사는 쪽이든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을 대하며 불안함을 느끼며 사는 쪽이든
별로 행복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가까이하고 싶은 이들 앞에서
그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알아차릴 만큼 관심을 갖고 가까이 지내며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기를 택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