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치료에도 차도가 없이 제자리를 맴돌다 보니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나는 다른 병원을 알아보기로 했다. 물론 이것은 핑계이고, 몽고가 주사를 맞다 상처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몽고의 몸에 주사자국이 남았는데 두 군데가 털이 자라지 않는 동그란 상처가 생긴 것이다. 의사 선생님의 말로는 고양이 피부는 두꺼워서 가끔 이렇게 생긴다는데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여기저기 주사를 맞아 민둥 냥이가 되어야 하지 않나?
털이 자라지 않게 주사를 잘못 놓은 것은 의료 사고가 아닌가?
나는 이해되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이 일을 며칠 째 고민하며 방법을 찾아보다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그런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겼다. 며칠 사이에 간판만 있는 상태로 병원은 종이만 날리는 빈 공간이 되어 있었다. 두 달가량 다니던 동물병원이 갑자기 폐업을 하고 사라진 것이다. 병원의 전화번호도 연결이 안 되는 건 당연했고, 어느 곳에서도 병원의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는 힘들었다. 며칠 전까지 몽고가 치료를 받던 곳인데 이렇게 사라져 버리다니 꿈인가 싶을 정도로 실감 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평소보다 하늘은 더 노랗게 보였다.
그럼에도 몽고의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을 찾기 시작했고, 마지막 지푸라기인 ㅎ병원에 몽고를 앉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에선 한 고양이가 계속 울고 있었고, 원장 선생님이 무언가를 지시하러 나오는 순간, 나는 저분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고를 앉은 채 계속 쓰다듬으면서 그 선생님을 어디서 보았는지 사진을 넘기듯 기억을 넘기기를 반복했다.
아!!!!
그분이다. 우리 집에 두니와 몽고의 교배를 위해 사료와 두니를 안고 방문했던 그 아저씨.
그때는 사복을 입었고, 지금은 하얀 가운을 입은 것이 달랐지만, 그분이 ㅎ동물병원의 원장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몽고의 장가가기 프로젝트에 우리 집에서 잠시 살던 '두니'라는 샴 고양이의 주인.
동생이 십자수 바늘을 삼킨 몽고를 수술하러 갔다가 미묘에 반한 동물병원 선생님이 교배를 제안했었는데 그분을 여기서 만난 것이다. 당시엔 동생만 병원에 갔었고, 집에서 상황만 들었던 나는 지금의 상황이 무척 놀라웠고 신기하고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원장 선생님에게 그 당시의 이야기를 했고, 원래 무표정인 원장 선생님은 아! 한 마디로 나의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끝냈다. 아.....
두니는 잘 있냐는 물음에 덤덤한 표정의 원장 선생님은 대화중에도 울고 있는 고양이 목소리를 지목하듯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네. 여전히 발정이 나서 저렇게 울고 있죠."라는 한 마디를 했다.
그 무시무시한 울음소리는 두니였고, 병원의 대기실로 나온 두니는 두리번거리다 몽고를 보곤 가까이 왔다. 그런데 몽고는 두니를 보더니 하악질을 하는 것이다. 나를 더욱 껴안으며 두니를 멀리하는 몽고가 이상했다. 첫사랑이 아닌가!!!!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연인을 왜 빚쟁이 보듯 싫어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몽고의 차례가 되어 또 그동안의 이야기를 설명하다가 다시 울음이 터진 나로 인해 원장 선생님은 당황하셨고 감정 기복도 없던 분이 피부병과 진료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셨지만 울고 있어서 기억이 조각난 상태였다. 캡슐약을 하루에 두 번 먹이라 했는데 이미 많은 약을 먹어서 걱정이다 했더니 위보호제를 듬뿍 담아 조제했으니 걱정 말라며 먹이고 일주일 후에 방문하라고 했다. 이미 캡슐약이 준비되어 있었고, 진료과정의 상세한 설명과 내가 할 일 역시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후에도 폐업을 한 동물병원의 소식은 알 수 없었고, 나는 몽고의 상처로 인해 동생에게도, 몽고에게도 죄책감이 드는 시간을 보냈다. 그 상처가 사라지는 방법도 열심히 찾으며 문의도 했지만 방법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진료가 서툴렀던 병원이라고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에 빗댈 수 있을까마는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고, 좋은 것보다 훌륭한 것을 해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그리고 자신이 부족해서 모자란 것을 해 주었을 때의 아픈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