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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라인- 손에 쥐어질 만한 아이디어를 사랑한다.

by 이롱이
손에 쥘 수 있듯 아주 간결한 그런 아이디어를 사랑한다.

미국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만약 어떤 사람이 스물다섯 개 혹은 그 이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 아이디어는 아주 괜찮은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나는 그런 아이디어를 좋아한다. 특히 손에 쥘 수 있듯 아주 간결한 그런 아이디어를 사랑한다."며 로그라인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의 이 말은 할리우드의 전설이 되었고, 지금은 영화 마케팅의 핵심이 되었다.


"THE KINGDOM IN THE HAND OF A LAYMAN FOR 15 DAYS. (15일 동안 평민의 손에 쥐어진 왕국)" 이는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의 영어판 로그라인이다. 한국어판은 "역사 속에 사라진 15일, 그들은 진정한 왕을 꿈꾸었다."로 만들어졌다. 스필버그에 의하면 이 영화의 로그라인은 스물다섯 단어 이하로 설명되는, 손에 쥐어질 만한 간결한 아이디어인 셈이다. 광고에 카피(copy)에 있듯, 영화 마케팅에는 바로 로그라인(log-line)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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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창민의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영어와 한글 포스터



로그라인에 대하여


로그라인(log-line)은 바다의 항해사들이 길을 잃지 않으려고 지도에 항로를 그린 일지를 가리키던 용어이다. 이후 영화계에서 이야기의 전체 줄거리를 요약한 핵심적인 한 문장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영화 마케팅의 목적은 수많은 경쟁작 중 관객의 흥미를 끌어 선택을 받기 위한 것이므로 로그라인은 영화의 마케팅 전략으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까지 이런 수사는 없었다. 낮에는 치킨장사, 밤에는 잠복근무."
"베테랑 광역 수사대 vs 유아독존 재벌 3세, 자존심을 건 한 판 대결이 시작된다!"
"330척에 맞선 12척의 배,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이 시작된다."


위 문장들은 한국에서 크게 흥행했던 영화들의 로그라인이다. 한 해 수백 편의 영화들이 개봉하지만 손익분기점을 넘는 영화는 소수고, 흥행하는 영화는 더 극소수에 불과하다. 개봉의 홍수 속 관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무기가 필요한 셈이다. 할리우드는 그 방법으로 하이 콘셉트(high concept)를 사용했다. 이것은 흥행을 목적으로 한다면 쉽고 간결하게 전달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진 영화를 기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이 콘셉트의 전략은 한 마디로 "~을(를) 한다면?"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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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공룡을 다시 복제할 수 있다면?"이라는 하이 콘셉트로 만들어진 영화, 스티븐 스필버그의 <쥐라기 공원>(1993)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쥐라기 공원>(1933)은 "만약 공룡을 다시 복제할 수 있다면?"이라는 하이 콘셉트로 기획되었다. 이를 통해 발전된 로그라인은 "호박 화석 속 모기에서 공룡의 DNA를 뽑아낸 억만장자가 6,500만 년 전 멸종한 공룡들을 부활시킨다"로 만들어졌다. 하이 콘셉트의 "high"가 의미하는 바는 높은 집약도와 전달력이다. <쥐라기 공원>은 이야기를 간결하게 요약하면서도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좋은 사례이다.



로그라인이 주는 소소한 슬기, 두괄식 표현


로그라인은 두괄식 표현의 중요성을 알게 한다. 엘리베이터 피치(elevator pitch)는 엘리베이터를 타서 내릴 때까지의 시간인 약 60초 이내에 투자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첫 만남 시 짧은 순간에 주어지는 인상이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두괄식 표현이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을 첫 문장에 배치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상대방이 내 말의 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방법이다.


1. 길에서 철수를 만났다. 철수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기에 무슨 게임을 하는지 궁금해 물었지만 말해 주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게임을 하면서 걷던 철수는 깨진 보도블록을 보지 못해 그만 넘어져 코피가 났다. 휴대폰 액정 화면도 깨졌다.
2. 철수가 코피를 흘렸다. 휴대폰 게임을 하며 길을 가다 깨진 보도블록에 발이 걸려 넘어진 것이다.


위 글의 전자는 미괄식 글쓰기, 후자는 두괄식 글쓰기이다. 만약 코가 다친 긴급한 상황에서 보건 선생님께 이를 알려야 한다면 후자처럼 핵심만 말해야 할 것이다. 두괄식 글쓰기는 모든 일상에 적용해볼 수 있다. 발표할 때, 면접 볼 때, 투자자를 설득할 때, SNS에 글을 쓸 때 등. 거의 모든 비문학 글쓰기의 기본인 것이다. 중요한 내용을 먼저 쓰게 되면 뒷부분을 읽지 않더라도 핵심을 파악하는 데 문제가 없다.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고 싶다면 뒤이어 내용을 보충해주면 된다.


상대는 당신이 생각보다 훨씬 바쁘다. 혹은 당신이 늘어놓는 지루한 말들을 놓치지 않고 들어줄 만큼 인내심이 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 "상대는 바쁘다. 핵심부터 말하라"라는 명제를 철저히 지킨 것이 영화의 로그라인이고, 할리우드 마케팅의 핵심인 하이 콘셉트인 것이다.


추창민,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저스틴 와이어트, 「하이 컨셉트」, 아침이슬, 2004.

장선화, 「장선화의 교실 밖 글쓰기」, 스마트북스, 2017.

"하이 콘셉트의 정의", 「박문각 시사상식 편집부」

"로그라인", 토리샘의 영화 로그라인 모음,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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