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파에 앉아 TV를 보다 담담하게 말했다.
“엄마, 나 이번 주말에 이사가요.”
잘 못들어서였는지 아니면 확인을 위한 것이 었는지 엄마도 담담하게 물었다.
“뭐라고?”
“집 계약했어요. 일요일 아침에 가요.”
아주 잠깐의 고요 뒤에 엄마는 말했다.
“한 번 나가면 다시 못 들어와.”
“네.”
그렇게 나는 독립을 했다.
독립을 결심한 이유는 직장을 그만두고 한 달 정도 지나서였다. 사찰에서 살면서 근무를 했다. 그때는 개인차도 없었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쉬는 날에만 집에 가는 독립 아닌 독립 같은 생활이 10년 넘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 지내던 습관 때문에 한 가지씩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완전한 독립을 이야기하기까지 내 마음 역시 오락가락했다. 언젠가 하게 될 일이지만 가족의 반대가 있으면 마음 약해져 설득당할 것 같기도 했고 내 입에서도 쉽게 꺼내기 힘든 단어였다. 다시 사찰 일을 시작하더라도 출퇴근 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고 그렇다면 혼자에 익숙해진 내가 ‘함께’에서 올 불편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모든 경우의 수에서 벗어나고자 미리 집을 알아보았고 통보에 가까운 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때 나는 엄마의 마음보다 내 마음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막내의 독립이 현실이 될 때 내 마음이 이상하게 울컥했다. 나의 독립은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고, 둘째는 결혼과 함께 자연스럽게 독립이 되었으며 막내는 엄마 집 옆으로 독립을 했다. 살 셋이 다채로운 독립을 한 셈이다. 그때서야 엄마의 마음이 보였다.
가족 구성원의 독립은 부모 뿐 아니라 함께 생활하던 형제자매에게도 깊이가 다른 마음을 가가지게 한다. 독립은 한 집에 살 때보다 서로를 더 챙겨주고 걱정하게 되기도 한다. 눈에 보일때는 무심하던 마음이 보이지 않으니 더 애틋해지는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노랫말이 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각자의 가족 구성원이 생겼음에도 마음에 변함이 없음이 독립은 또 하나의 마음이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