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산다고 무시당하면 안 돼."
주지스님이 새로운 도구나 신기한 물건을 꺼낼 때마다 하시는 이야기다.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도구는 우유 거품기다. 며칠 전부터 진한 커피에 바나나우유에 를 넣고 마시면 맛있다고 하시더니 거품기가 등장한 것이다. 버튼을 누르니 윙~~~ 하고 돌아가며 따뜻한 우유 거품이 만들어졌다.
"커피 줘봐요, 얹어 줄게."
나는 마시던 커피잔을 들고 주춤했다. 우유를 마시면 생목이 올라 라떼나 카푸치노는 좋아하지 않아서였다.
괜찮다고 거절의 표시를 했으나 스님 커피를 보니 부드러운 거품이 봉긋 올라온 모습이 꽤 맛있어 보였다. 스님 뒤를 쫓아가며 방금 했던 말을 번복했다.
"스님, 거품이 너무 이뻐요. 제 것도 만들어 주세요."
사실 마시겠다는 마음보다 보기 좋은 모습에 홀랑 넘어간 것이다. 역시 이쁜 게 최고다.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거품을 살포시 얹으니 모양이 제법 그럴싸하다.
바닐라 카푸치노를 들고, 정확히 말하면 바나나우유 카푸치노를 들고 난간에 서니 어제와 다른 가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풍경을 보는 일은 매일 새로운 계절과 만나는 일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지만 산에 있으면 등잔 밑이라 더 잘 보이는 일도 있다. 멀리 서는 볼 수 없는 작은 움직임을 매일매일 직관하는 일이다. 이 시간은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시간이다.
김종원 작가는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에서 사색을 강조한다. 책을 읽다가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을 발견하면 책을 덮고 그 문장에 대하여 사색하라고 한다. 글씨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이해하는 과정에 꼭 필요한 단계다. 매일 같은 모습을 보며 사색하는 시간은 어제 보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 시간은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시지 않아도 부드러움이 전달되는 커피잔을 들고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소리를 듣는다. 도시의 유명한 경지 좋은 커피집도 내가 있는 이곳의 분위기를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산에 산다고 무시당하면 안 돼.'를 외치는 스님 덕분에 매일 새로운 계절과 마주할 수 있는 커피집에서 모닝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사색을 한다.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남는 문장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글을 쓰자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