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마주하고 의자에 앉았다. 빛에 반사되어 그런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얼굴을 앞으로 내밀었다 뒤로 뺐다 하며 착시가 아님을 확인한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머리카락 뿌리가 하얗다. 흰 머리카락이 두피를 뚫고 1센티가 넘게 자라 이마 앞과 정수리를 덮고 있었다.
처음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반년에 한 번 염색을 한 것 같다. 그 주기는 점점 빨라졌고 이제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것뿐 아니라 가을 단풍 들듯 서서히 머리카락이 사라지는 것이기도 하다. 머리카락이 빠져나간 속머리도 하얗다. 염색을 한 첫날은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처럼 시원한 흰색 가르마가 보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피와 흰머리카락이 만나 폭포의 넓이가 점점 넓어진다.
'염색을 하지 말까, 요즘 하얗게 탈색도 하는데 자연스러운 흰머리가 뭐 어때서.'라고 생각했다. 염색약이 눈 건강에도 안 좋다 하니 잘됐다 했다. 하지만 매번 실패였다. 거울 속에 보이는 모습이 초라해 버티지 못한다. 초라해 보이는 일정 기간만 잘 버티면 염색 안 하고 살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일정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미장원을 간다.
염색주기를 조금 늦추겠다고 외출할 때마다 머리에 톡톡 색조 화장을 해준다. 나이가 들어 신체의 노화가 시작되면 모든 것이 느려진다는데 참 이상한 일이다. 흰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는 노화와 반비례하듯 느려지지 않고 오히려 빨라지고 있다.
거울 앞에 선다는 것은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데 마음보다 앞서가는 육체를 마주하는 것이다. 매일 거울로 들여다봐도 거울을 벗어나면 내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리 마음을 들여다봐도 버려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