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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의 정치

by 낭만샐러리맨
20171016_191239-1.jpg 색은 다양하게 어울려야 제맛


직장 내에서의 정치는 금물이다.


정치라는 단어의 사전상의 의미는 이렇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직장생활 30여년간 지켜본 대한민국은 이 빌어먹을 정치 때문에 계속 요동쳐 왔다.

그게 인생의 일부다, 그냥 모른 척하며 살자, 다른 나라도 그렇다, 이러면서 좋아진다 라는 온건파와, 저것들 하는 꼴을 봐라, 뭔가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서 하자 라는 적극파가 항상 내 머릿속에서 갈등 중이다.

시골에 계신 어머님은 팔순이 훌쩍 넘으셨고 아직도 건강하신데, 가끔 방문하면 어디서 들었을지 모를 마치 찌라시 성의 잡지(선데이서울같은)에나 나올 법한 정치 관련 얘기들을 하셔서 깜짝 놀라는 날들이 많다. 하도 황당무계한 소리들의 소스가 궁금하여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얘기를 들었느냐고 물어보면, 거의 항상 `노인정에 가면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는 대답만이 돌아온다. 생각해보면 인터넷도 못 보시는 어머니가 TV말고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노인정의 노인분들의 말 뿐인데,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분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고급진 쓰레기 정보들을 접하는 지 궁금하다.


직장에서의 정치적 활동은 대부분의 회사에서 사규로 엄격하게 정하여 금지하고 있다. 적어도 직장 내에서는 정치 문제를 가지고 격론을 벌인다든지, 공개적인 비난을 한다든지 하는 따위의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사람인지라 간간이 보이는 정치색들은 어쩔 수 없다. 특히나 개표 방송 다음날의 회사 분위기는 애매모호할 때가 많다. 우리 나라는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가면서 집권하여 왔고, 어느 한 쪽이 압도적으로 이긴 적이 드물기에, 직장인들 역시 대략 반반으로 섞어 있다고 봐야 하므로, 아무리 가벼운 농담성 견해일지라도 사내에서는 정치 얘기는 안 하는 게 좋다.


필자는 외국계 기업에서의 근무경력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직장 내에서의 정치색은 거의 못 느끼고 살아 왔다. 오히려 미국인 보스가 계실 때 상당한 친분관계를 유지하여 왔는데, 보스는 타향인 한국에서 외롭게 사모님과 둘이서만 계시다 보니 필자에게 솔직한 정치적인 감정을 털어 놓곤 하였다. 가장 심했던 때는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였다.

그분은 백인이고, 뉴요커로서 트럼프의 당선에 대해 거의 절망적인 단어들을 구사하시면서 본인의 실망감을 표출하였었고, 특히나 보스보다 더 적극적이고 감정적이었던 보스의 와이프는 트럼프가 당선되는 발표를 보면서 상당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미국 본사에 출장을 갔던 필자의 동료들이 전하던 얘기는 나의 보스의 예측(당연히 트럼프가 진다.)과 사뭇 달랐다. 당시 미국의 여론조사는 극히 일부의 매스컴만 제외하고 트럼프가 패색 일변도였는데, 출장을 갔던 동료가 전하던 바는 일반 실무진급 근로자들과 얘기하다 보면, `그래도 트럼프가 이긴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매니저급 이상의 분들은 트럼프가 진다, 져야 한다 일변도였던 분위기에 비해 일반 근로자들의 여론은 상당히 트럼프 쪽을 지지하던 것에 대해 동료들이 출장 후기를 호기심 있게 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진보니 보수니 하지만, 정치인들의 신뢰도는 지금의 주택담보 대출 이자 수준인 8% 정도로서 우리 나라 직업군 중 명실상부하게 최하위를 상당히 오랜 기간, 충실하게,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 덕에 정치는 항상 술안주이자, 울분 메이커 역할을 잘 해주고 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8%의 신뢰도를 보이는 정치인 모두 우리가 직접 뽑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남 탓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들 믿고 지지하는 대로 `성실하고 올바른` 사람들을 선발하였다면 보수든 진보든 적어도 신뢰도가 30% 이상은 나와야 하는데, 8%라는 얘기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두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다. 지방색이든, 혈연지연학연이든, 집 근처 지하철 개통공약이든, 뭐가 되었든 우리의 사적인 욕심이 결국 정치인들에게 투영된 결과인 것이다.


직장 내에서 직위가 높다 하여 간간이 식사 자리 등에서 정치 얘기를 꺼내시는 분들이 있다. 그것도 상당히 강한 논지와 어조로 마치 엄청난 애국자인양 누가 집권하면 나라가 망할 것이고, 그걸 지지하는 사람들은 죄다 바보천치라는 감정들을 표출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분들은 앞이든 뒤든 당연히 꼰대소리를 듣게 될 것이며, 지금의 세대들은 대놓고 솔직한 감정을 숨기지 않기에 자칫 심각한 논쟁과 감정싸움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


끼리끼리 술 한잔 들어가면 입에 거품을 물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대부분의 직장 내 일들은 깨끗하게 없던 일이 되지 않고 은근히 공유되기 마련이라서, 과도한 관심과 논지 표현은 찜찜한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맞다고 우겨도, 다른 편의 정보와 논리는 그걸 절대 받아들이지 않기에, 결국 감정적인 찌꺼기만 양산한 채 애매한 술자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제한된 정보와, 편파적인 매스컴들의 논지가 횡행하는 현실에서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보와 논리들만을 췌사선택한 무리들의 논쟁은 그야말로 격렬하면서도 비생산적이다. 친인척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물론, 친한 친구끼리의 우정에 금이 가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직장은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기 위해 모인 집단이기에 굳이 해 봤자 싸움만 나게 될 정치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특히 고위직 간부분들의 경우 직위가 높다 해서 앞에서 비난을 안 할 뿐이지, 그만큼의 뒷담화와 불만이 어떤 방식으로든 구현될 것이며, 이는 당연히 사기와 생산성을 동시에 떨어뜨릴 것이다.


사내에 암묵적인 정치적인 라인을 형성하는 분들이 간혹 계시다. `본인들 생각으로는` 사적인 목적이 없이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여기는 분들도 있었고, 특정 학교 출신들끼리 모여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모임을 유지(그것도 회사 경비로)하던 적도 있었는데, 인사분야에 오래 근무하다 보니 이런 저런 뒷담화와 정보들이 어떤 형태로든 접수된다. 한번 구설수에 오르게 되면 그 그룹의 인원들에 대한 경영진의 평가와 신뢰성이 낮아지게 된다. 정도가 심한 경우 명백한 사규 위반으로 간주하여 공식적으로 불러서 자제 혹은 해산하도록 한 경험도 있었다.


직장에서는 정치는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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