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와 `요`의 사이
`까`와 `요`, 존칭의 틈새
군대에 있다 보면 여러 갈등 형태를 겪게 된다. 다들 말들을 안 해서 그렇지 장교와 부사관(과거 하사관이라 칭함)의 문제는 정말로 오랫동안 잠재되어 온 문제였다.
군대 사회는 특성상 혈기가 가장 왕성한 남성들을 한곳에 묶어두고 매사를 제 맘대로 못하게 하니 사실 아무런 일도 아닌 사소한 것이 큰 갈등으로 번지는 것이 다반사이다. 쌓인 스트레스는 없던 사건도 만들어서 사고를 쳐댈 판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필자는 초급 장교로 복무하였었고, 아래는 이때 실제 겪었던 갈등들이다. 지금은 여러 제도들이 변경되어 그저 지나간 과거의 에피소드가 된 것들도 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해결되었길 바란다)
1. 장교 대 하사관 : 대대급 싸움으로 번져서 패싸움 나기 직전까지 갔었다. 이유는 장교가 간부(장교 및 하사관) 교육을 하는데, 젊은 하사관들(중사급)이 뒤에서 농땡이를 약간 도가 넘게 부렸는데, 이를 본 중위가 집중하라고 하면서 반말을 했고, 이에 대해 나이는 많은 고참 중사들이 반발하면서 바야흐로 장교 대 하사관 간 패싸움 직전까지 갔었고, 다행히 시기적절하게 대대장님이 엄하게 진정시켜서 겨우 일단락 되었던 적 있었다.
2. 사병 대 하사(분대장) : 과거 분대장은 일반 사병 중에서 일병이나 상병 급을 선발하여 분대장 교육을 다녀 왔고, 다녀 오게 되면 계급은 하사를 달게 되는데, 군 짬밥은 기존의 병장들보다 낮아 이 문제는 그야말로 소대장들에게는 고민거리였다. 즉, 하사관 교육 가기전엔 쫄따구였던 일병이, 하사관 교육 다녀오면 바로 김병장 하고 말을 까게 되는데, 문제는 이때부터이다. 서로 존중하며 지내면 큰 문제가 없는데, 아주 사소한 문제라도 큰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특히 군대는 총과 수류탄을 항시 보유하는 조직이라서 신경을 바짝 세우게 되는 적이 많았었다. 이 갈등을 확대하면 몇년전 국가적인 논쟁으로 번진 장교 대 하사관의 갈등과 유사한 형태이다. 나이는 어린데, 장교 교육 수료후 위관장교로 출발하는 장교는 하사관 중 최고참인 30년 경력의 원사보다 계급상으로는 높은 편이다. 아들 뻘도 안 되는 소위가 원사에게 반말을 하는 것도 실제 본 적이 있었다.
3. 장교간의 갈등 : 이 상황은 좀더 복잡한 양상이다. 장교 출신별로 사관학교 출신 이외에 과거 최초 4년제 삼사관학교, 그리고 2기 2년제 졸업후 9개월 과정의 삼사관학교(지금은 없어졌다 함), 그 이후 다시 2년제 삼사관학교, 여기에 학군장교 (ROTC) 및 학사장교 등의 여러 출신들이 어우러지는데, 여기에도 어김없이 나이 개념과 임관일 개념이 갈등을 빚고 있으며, 또한 조기 승진한 경우 진급일까지 고려하여 여러 갈등들이 생산된다. 특히 대위급 이하 초급장교 시절에는 진급 속도가 거의 비슷하고, 다들 젊은 나이인지라 기세와 고집들이 장난이 아닌 분들이 많다. 서로 먼저 경례 안 한다고 말다툼, 경어체 (하였습니까? 와 했어요? 이 `까`와 `요`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사용을 둘러싼 별거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거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이 별 것 아닌 것 같은 `까와 요` 이슈는 장교 대 하사관의 갈등에도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모르시는 분을 위하여, `까`(-습니까?)를 붙이게 되면 확실한 존칭이고, `요`(-어요?)는 수평적 언어에 가깝다.
위 대부분의 갈등은, 그 잘난 `나이`와 계급의 사이에서 자존심의 충돌과 갈등이다. 특히 그넘의 나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구석구석 한가락 못해 안달이다. 말다툼하다 막히면, 그런데 너 몇 살이야? 가 당연한 수순이다.
일반 회사는 나이와 계급의 갈등은 매우 낮은 수준이긴 하며, 나이가 이렇게까지 갈등의 큰 원인이 되지는 않고 있다. 나이로 유세 떨다 보면 조직에서 밀려나기 딱이다. 그럼에도, 언어로 인한 갈등은 회사 조직에도 엄연하게 있다. 특히나 보수적인 집단으로 갈수록 언어의 군기는 살아 있어서, MZ세대의 경우 언어의 선택에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심지어는 경어가 거의 없는 영어 사용시에도 당연히 언어의 군기와 예의가 있다. (Sir. / Madam, 문어체 등등)
필자가 보는 보수적인 집단은 (경험의 한계가 있어서 아는 집단만 예로 들었음) 아래와 같다.
대학 교수 사회
공무원 조직 및 준공무원 조직
대형 로펌 및 검사
나이 50 이상의 모든 조직 구성원
외국계 기업보다는 국내 그룹사 등 대기업
회사 조직 중 영업 조직과 공장 생산 라인의 언어 군기가 세다
최고의 인기 드라마였던 `태양의 후예`에서 이 케케 묵은 언어 선택의 갈등의 해답을 볼 수 있다.
대위인 송중기는 하사관(상사)인 진구에게 깍듯이 경어를 사용하며 친근감을 과시하고,
진구는 절대 중대장의 권위에 대해 도전하지 않는다.
송중기는 '서상사님'이라고 부르지, 국적불명의 단어인 '서상사요' 라고 안 부른다. 그랬습니까 를 쓰지 그랬어요 를 쓰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해 주는 언어들을 사용하자. 언어 사용에는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