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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ropsia Jul 10. 2024

나의 불안 탐사

 나의 불안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 보고자 한다.

 

 우선 밤낮없이 울려대는 '코드 브레인' 알람이 불안이라는 바다 표면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다. '코드 브레인'은 언제 어디서든 울릴 수 있으니 온콜(on-call)에 해당하는 주에는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다. 물론 이것은 내가 스스로 만든 제한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대범하지 못해서 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시내에서 약속을 잡는다던지 주말에 교외로 바람을 쐬러 간다던지 하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 가족 모임, 휴가 일정, 친구들과의 약속 등 모든 일정이 나의 온콜 일정에 영향을 받았다. 시간의 자유도 일부 제한된 셈이다.

 

 '코드 브레인' 알람은 정말 정맥내 혈전용해술(intravenous thrombolysis) 또는 혈전제거술(mechanical thrombectomy)이 필요한 급성 뇌경색 환자가 발생한 것일 수도 있고, 뇌경색 환자는 맞지만 해당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 때문에 발생한 문제인데 급성 뇌경색으로 오인된 경우일 수도 있다.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당직 근무 중인 전공의는 나에게 전화를 한다. 판단이 쉬운 경우라면 전공의 스스로 어느 정도 판단과 결정을 하고 난 뒤 나에게 확인을 받기 위해서 전화를 한다. 그런데 전공의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고 그런 일은 꽤 자주 발생한다. 그럴 때 나는 전공의에게 전해 들은 제한된 정보만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배가된다. 전화 통화 만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직접 병원으로 가야 한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응급 진료가 필요한 환자 수가 증가하니 권역응급의료센터도 따라서 증가하고 있다. 응급의료센터는 시설, 장비, 인력에 따라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나누어 지정하고 있다. 2023년 7월 5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내용을 살펴보자.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추가 지정으로 권역응급의료센터는 기존 16개소에서 5개소가 늘어나 모두 21개소가 되었으며, 이번 권역응급의료센터 5개소 추가 지정을 통해 응급환자를 위한 중환자병상 100 병상, 입원병상 150 병상이 늘게 되어 응급환자에 대한 서비스가 더욱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리하자면 '하드웨어를 더 늘렸으니 응급 환자에 대한 진료가 더 좋아질 것이다'라는 희망찬 의견이다. 하드웨어가 늘어나서 서비스 이용자(환자)들이 많아지면 서비스 종사자(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119 대원 등; 그렇다고 필자가 정부의 의대 증원을 통한 의사수 증가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들도 같이 늘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존 서비스 종사자들이 자신을 갈아 넣어야만 유지되는 그런 곳이 되어 버린다.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요즘 사회적 분위기이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이런 경향은 나타나고 있다. 의료 분야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다. 힘든 분야는 지원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신경과도 수련 과정이 쉽지만은 않고 전문의 취득 후 소득도 다른 진료과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도 할 수 없다. 이런 점이 전공의 지원 현황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뇌졸중 늘어나는데… 신경과 전공의 못 뽑는 수련병원들 '비상' (https://www.sedaily.com/NewsView/1RUFS27N2H)


 전공의 지원도 줄어들고 있는데 수련받고 있는 전공의라고 해서 밤낮 할 것 없이 항상 대기해야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뇌졸중을 세부전공하겠다는 결심하는 전공의가 있겠는가? 실제로 몇 년간 계속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점점 전문의 충원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고 있다. 병원에서는 수익이 나지 않는 분야의 전문의 채용은 쉽게 해주지 않는다. 채용을 해주더라도 채용 그 이상의 수익을 낼 것을 요구하는 분위기이다. 업무의 분산을 위해 충원을 하는 건데 오히려 채용이 업무를 과중시킬 수도 있는 기이한 현상이 벌이지는 셈이다. 누군가 나의 업무를 나누어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더 배가되어 버렸다. 나의 불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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