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네가 여기서 왜?
기색(氣色)은 국어사전에 ‘마음의 작용으로 얼굴에 드러나는 빛'이라고 되어있었다. 얼굴은 눈과 마찬가지로 빛을 낼 수가 없다. 그런데 빛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이는 신체는 눈과 얼굴 밖에 없는 듯하다. 코빛, 입빛, 팔빛, 다리빛… 글로 적어도 이상하고 소리 내어 읽어봐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인간의 얼굴뼈에는 40여 개의 근육들이 붙어있고 이 근육들이 다양하게 수축과 이완을 하여 수많은 표정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마음의 작용으로 얼굴에 드러나는 빛'을 표정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얼굴 근육은 대부분 7번째 뇌신경인 ‘안면신경(facial nerve)’의 조절을 받는다. 우리 몸의 근육은 빠르게 수축하지만 지구력이 떨어지는 속근과 수축은 속근에 비해 느리지만 지구력이 높은 지근으로 나뉘는데 인간의 얼굴 근육은 속근의 비율이 높다. 언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집단생활에서 표정은 의사 소통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표정을 빠르게 짓기 위해서는 속근이 많아져야만 했을 터이다. 우리가 웃는 표정을 길게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웃는 표정이 어색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지근의 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아기들이 웃는 표정을 보면 마음이 녹아내린다. 더구나 자기 아이라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다. 필자도 첫째 아이가 갓난아기 시절에 새벽에 울어재껴서 잠을 깰 때면 화가 나다가도 아이가 방긋 웃어주면 화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곤 했다. 이것은 진화론적으로 아기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전략이라고 한다. 아기는 생존을 위해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귀여운 웃음으로 피곤에 지친 밤에도 부모가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자신을 돌보게끔 하는 것이다.
동물 중에도 아기와 비슷한 전략을 선택한 동물이 있는데 바로 개다. 개의 조상인 늑대는 얼굴 근육의 대부분이 지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개의 얼굴 근육은 속근의 비율이 늑대보다 높다고 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듀케인대학 생물인류학자 앤 버로우스 교수와 동물생리학자 케일리 옴스테드 교수팀에 따르면 개는 눈 윗부분에 눈이 커 보이게 할 수 있는 근육이 발달하여 이 근육을 이용해 사랑스럽고 순진해 보이는 강아지 표정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개가 인간과 같이 생활하게 되면서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개들이 인간의 선택을 받아 생존에 유리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가 있겠다. 우리가 강아지의 표정에서 아기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과학적 근거가 될 듯하다.
그럼 불안을 느낄 때 우리의 기색, 얼굴 근육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몇몇 연구들에 따르면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의 눈썹주름근(Corrugator supercilii muscle), 내측 이마힘살근(medial frontalis muscle) 등의 근육에서 근전도 검사를 해보면 근육 활동성(activity)이 증가되어 있다고 한다.
속근 비율이 높은 얼굴 근육들이 항상 활동성이 증가되어 있으면 근육이 쉽게 피로 해질 테고, 다양한 표정을 짓기 힘들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이마주름과 미간주름이 저런 이유로도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 주름들을 인위적으로 피려고 맞는 것이 보톡스 주사인데 주름을 피려고 보톡스 주사를 맞았더니 거꾸로 우울증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도 찾을 수가 있었다. 보톡스를 더 많이 팔아보려는 제약회사들의 꼼수가 배경에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재밌는 이야기이긴 하다. 주름 피려고 맞았는데 기분까지 좋아지면 나쁠 것은 없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