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계절

by macropsia

건조한 계절이다.


외래 진료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무들에는 이제 잎 하나 남아있지 않다.


나무들은 건조한 계절이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잎에서 일어나는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이미 가을부터 잎을 떨어뜨려 왔다. 떨어진 나뭇잎은 점점 물기를 잃고 말리 비틀어져 바람에, 사람들의 발길에 부스러져 간다.


외래 진료가 시작되고 대기 환자를 부른다. 80대 초반 할머니, 아들과 함께 들어온다. 6개월 만에 내원한 할머니는 지난번 보다 생기가 떨어져 보인다. 아들은 딱 봐도 모친에게 살갑게 구는 타입은 아니다.

할머니에게 내가 묻는다.


“식사는 잘 챙겨드시나요?”


음식에는 수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식사만 충분하게 먹어도 하루 필요한 수분의 50%는 식사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로 젊을 때 먹던 식사량을 유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로 물을 챙겨 마시지 않으면 만성적인 물 부족 상태에 이른다.


피부는 생기를 잃고, 어지럽고, 멍하고, 집중도 안 된다. 이유 모를 컨디션 저하가 생긴다.


“손등 좀 봅시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할머니 손등 피부를 살짝 집어 올려본다. 바짝 마른땅에 드러난 나무뿌리 마냥 주름 잡힌 채 다시 펴지는데 한참 걸린다. 몸이 건조하다는 신호다.


아들에게 어머니가 식사는 잘 챙겨드시는지 다시 묻는다. 아들은 대답이 없다. 식사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수분 부족이 생기기 쉬우니까 중간중간에 물 한 잔씩 마실 수 있도록 챙겨야 한다고 말해줬다.


아들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면서


“그럼 내가 챙기지 못해서 이렇게 됐단 말입니까!”라고 화를 낸다. 그 화를 예상하지 못한 나도 순간 심장이 쿵쿵거렸고 되받아쳐야 하나 싶었지만…


잠깐 말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이 사람이 엄마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그걸 나에게 투사하는 거구나.


“오해하신 거 같은데 아드님을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노인들이 수분이 부족하면 기력이 떨어지니까 챙겨드리면 좋겠다고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 다음 진료 때는 생기 잃은 겨울 고목이 아니라 나뭇잎 열린 고목의 모습으로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진료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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