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뻑 빠져들었던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관심사가 비슷해서 말이 끊이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겹쳐 "아니야 네가 말해봐”를 여러 번 했다. 앉아서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훅 지나버려서 겨우 막차를 타곤 했다. 그 사람에게 계속 말을 걸고 싶었지만 매일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말을 하면서도 계속하고 싶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공통점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과의 대화는 내심 기대했다. '이번엔 성공일까?’ 이상하게도 누구와 말을 해도 그 느낌이 들지 않았다. 대체 그런 사람은 어디 있는 걸까.
사람을 만나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하루에 한두 명은 꼭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어느 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도 마시지 않은 채 한 마디라도 더 하고, 또 어떤 날은 어떻게든 노트북을 덮고 그 자리를 나오고 싶다. 조금이라도 그 자리에 더 앉아있고 싶게 만든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와 비슷한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말에 집중하는 그 눈빛과 내 말을 기억하고자 어딘가에 적고 있는 그 행동 때문이었다.
상대방의 말에 집중해주는 사람. 생각보다 드물다. 나를 보고 있는 건 맞는데, 내 말은 듣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흘러가는 말의 흐름을 타지 않고 어딘가에 박혀있는 배를 생각하고 있는 눈은 공허하다. 이따 다시 물어보면 처음 듣는다는 듯 말을 하거나 아는 척 둘러대겠지. 분명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누구도 관심이 없는 말만 떠돌아다닐 뿐이다. 안타깝게도 자주 받는 느낌이다.
그 대화가 좋았던 이유를 이제와 생각해보면, 관심사가 비슷해서, 그 사람에게 매력이 있어서, 아는 게 많아서, 이 모든 것 때문이 아니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며 내 대답이 궁금하다는 그 눈빛 때문에. 하나라도 더 알려고 하는 그 질문 때문에. 나는 자꾸 말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는 나와의 대화가 고역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상대방을 향한 관심이 양질의 대화를 만든다는 것을.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내가 다짐하고자 함이다. 난 누군가의 말을 집중해서 들은 적 있었나. 상대방이 말을 할 때 다음에 뱉을 말을 머릿속으로 뒤적거리곤 할 뿐이다.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자랑할 만한 내 이야기를 한다. ‘내’가 더 중요한 건 모두가 똑같다. 좋은 대화 상대를 찾기 전에 좋은 리스너가 되어야 했는데 괜히 상대방을 탓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는 나를 탓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