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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Aug 21. 2022

그래서 그게 영양실조에 걸린 이유라고?

21세기에 영양실조가 말이 되니?

    밥을 잘 먹고 다니지 않아서 자주 쓰러졌다. 밥을 먹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체중을 감량하려고.


    평소 먹는 만큼 살이 잘 찌는 체질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현재의 평균 체중에서 살을 더 빼려 했다. 이유는 내가 현재 화장을 잘하지 못하고, 아직 배울 여유가 되지 않으니까 옷이라도 예쁘게 입고 싶어서였다. 외모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던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늘 의식하다 보니, 살부터 빼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된 다이어트 방법을 평소에 알아둔 적이 없으니 냅다 굶기로 한 것이었다. 많이 미련했다. 그러니 그렇게 버티다가 결국 어느 날 서점에서 쓰러지는 것을 기점으로 나는 영양실조로 의식을 잃어 자주 병원에 들락거리게 되었다.



    평소에 잘 연락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연락이 하루 동안 닿지를 않자, 친구는 이상하게 생각했고 나는 창피했음에도 마땅한 둘러댈 거리가 생각이 나질 않아 사실대로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친구는 내가 어쩌다가 들르게 되었는지를 듣고는 '21세기에 영양실조가 말이 되나..?'와 같이 의심을 가득 담은 말을 했다. 나는 그 진지한 의심에 한동안 웃었다. 나는 이상한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왜 그렇게까지 해서 살을 빼고 싶은 것인지 물었다. 그런데 다시 봐도 모순적이지만, 그날의 답장은 '옷을 예쁘게 입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쓰러졌을 때 들것에서 침상으로 옮겨주는 사람이나 의식이 없는 동안 보건실로 옮겨다 주는 사람이 무겁지 않으라고'였다. 이유가 점점 변질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데, 그때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행해지는 터무니없는 배려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친구: 아니, 근데 그 옮겨다 주는 사람한테 미안하면 밥을 제대로 먹어서 영양실조에 안 걸리면 되는 거 아니야?

나: 어... 근데 나는 자기 관리라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나중에 친구를 사귈 때 내가 마른 체형이라서 한 번이라도 호감을 얻고 싶어.

친구: 아. 그래, 하긴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지금이 딱 여자애들은 좋아할 만한 몸매긴 하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 해?


또래 여성들과는 달리 특별한 날이 아니면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우연히 어떤 친구가 가만히 있어보라며

찍어줬던 사진에서 마주하게 된 나는

내가 생각했던 내 체형보다 많이 말라있었다.

속으로 혼자 ‘아니, 언제 이렇게 된 거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매번 차도 없는 성적표만 보고 자란 사람이

발전 없이 제자리에 있다며 좌절하고 있을 때는

이런 식의 확연한 성취로 중독되는 거다.

그러니 당연히

한 번 그렇게 큰 변화가 당사자의 눈에 보이니 마음의 이면에서는, 가까이서 보는 내 체형은 마르다고 생각되지 않으니, 여기서 조금만 더 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굴러가지를 않으니 몸을 혹사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건강하지도 않고 체계적이지도 않은 방법으로.



앞서 들었던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친구의 물음에는 난 결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환자가 되고 싶었지도 모른다.



언니, 오빠들은 자신들보다 어린 사람을 자주 챙겨줬고,

아프다고 하면 무언가가 자주 면죄부가 되어주던데.



잠시나마 만화영화 여자 주인공 마냥 여린 척을 하거나 어떤 핑계를 만들면 누군가가 챙겨주려 다가오진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옆에 없어도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핑곗거리를 만들려고 했던 것도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이 바보 같고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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