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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May 23. 2023

시체

    나는 계속해서 무언갈 하는 척을 했다. 바쁜 척. 열심히 사는 척을. 그것은 내가 학생때 바쁘고 열심히 치열하게 건강보다 중요하게 두면서까지 해왔던 짓이라, 연기 또한 제법 노련해보였다. 


    누군가가 

'너 되게 열심히 사는 것 같아.'

혹은,

'너 되게 성실하게 사는구나.'라는 말을 해주면 

나는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아온 사람처럼

'에이 아니에요. 이게 익숙해서 저는...'

거짓말처럼 보이지만 앞은 거짓말이고 뒤는 사실이다.

바쁜게 익숙한 사람. 그런데 처음 맞아보는 잉여로움을 참을 수 없어하는 사람.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열정적이었지 떠올리면 재작년이었다.

대치동에서 논술을 끝내고 왕복 두 시간 거리의 집에 와서 겨우 먹는 저녁(야식)



그때는 코로나가 매우 심했던 시기라, 10시만 넘으면 모든 음식점이 모두 닫았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배달이 심야까지 되는 집을 찾으면 마라탕집 단 한군데 뿐이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 매주 토요일마다 꼭 시켜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며칠전에 시켜먹은 그 마라탕은 그 맛이 아니었다. 


나는 논술을 본 뒤로 더이상 어떤 것에도 열정과 노력을 다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것 같다. 

공부도, 인간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겼다면 문제해결에 관해서도. 


시험 기간에 공부를 해야 할 때에도 

내가 왜 이따위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내 집중력을 이런 학교를 위해 사용해야하지 라는 생각


인간관계에서도

뒷담화를 즐기는 당신들이 내게 무슨 배울점을 줄 수 있어서 내가 뒷담화에 맞장구를 쳐야하지라는 생각.


내게 어떤 문제가 생겨도,

어차피 해결될것도 아니면서 내가 뭐하러?


이런 생각 밖엔 안들었다.



공부를 참 좋아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었다. 넌 내게 늘 뒤통수만 치는 나쁜 새끼.


 무언가를 배우는건 참 좋은데, 간혹 한 번씩 나를 죽고싶게 만든다. 


나는 항상 당연히 받아야할 것들을 못받으며 자라는 사람. 

부모정도, 가정 통신문도, 알림장도, 성적, 합격증...


어떤 건물이든 옥상에 올라와보면 

난간에서 나를 밀면 순순히 저항없이 밀려날 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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