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짝사랑의 사칙연산과 부등식 그 어딘가.
대영이의 짝사랑은 정말 오래 갔다. 그게 정말 짝사랑인지, 다른 무언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정리를 못했다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애에게 미안해서 연락을 자주 기피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전에도, 그 전에도 여러 번 단호하게 말하곤 했다.
날 좋아하는 것은 시간낭비이며, 전역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 얼른 잊으라고.
난 연애를 할 상황이 아닌걸 알잖냐고.
그는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게 더 매력으로 다가온다 했지만.
재수학원에 들어와서 좋은 점은 연애를 하고 싶지 않게 만들어준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도 핸드폰과 떨어져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연락을 늦게 받아도 마음 급해하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연락의 부담감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는 뜻이다.
늘 내 첫 마디는 '핸드폰을 지금 막 받았어. 집가서 전화할게.'
모친에 의해 생긴 핸드폰 노이로제가 점점 치유되고 있었다.
답장이 1,2분이라도 늦거나 전화를 못받으면 몇 통을 더 해가며 집착을 하던 여자.
덕분에 핸드폰을 붙들고 있거나 부술 일은 이제 없을 것 같다.
다만 요즘은 알람이 울리면 경기를 일으키며 기상하는 걸로 바뀌었다.
그래도 뭐, 학원에 지각할 일은 없어서 순기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
아, 그리고 나의 짝사랑.
핸드폰이 없으니 그의 연락이 없어도 난 이제 기다리지 않았다.
오면 오는거고 없으면 일하거나 다른 여자 만나겠지 하는 생각.
그러다보면 그의 생각은 손에 묻은 수채화마냥 옅어진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사방에 널려있어서 비문학을 풀다가 2문제 당 3번 꼴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그의 이름을 보면
나는 암초에 걸린듯 자꾸만 머리를 부딪치곤 했다.
나는 언제 너를 잊지.
보고 싶은데. 갑자기 좀 슬프네.
아직까지도 마음 정리를 못했다는 대영이를 볼 때면 나는 그가 생각이 난다.
내가 대영이를 귀찮아하듯,
'걔도 내가 귀찮을까' 뭐 이런 걱정.
좋아하는 마음도 폭력일 수가 있다는데.
어쩌면 나를 불쌍해서 만나주는 것일 수도 있다.
애초에 싫어하는 사람이면 안만나는 성격이긴 하던데,
내가 갑자기 보고싶다고 하는데도 만나주는거 보면 좀 이상하기도 하고.
난 왜 안목이 이모양이지 싶고.
갑자기 이러면 또 대영이에게 단호하게 말했던게 미안하다.
내가 상처주도록 단호했기 때문에 얘는 더 마음 정리가 어려운걸까 싶은 그런 생각.
혹은 날 좋아하는 남자를 옆에 두고 다른 이상한 늙은 남자가 좋다고 쫄래쫄래 따라댕기는게 대영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 하는 그런 쓸데 없는 생각.
그런데 대영이도 참 이상하다.
내가 직설적이고 내숭이 없고 털털해서 좋다는데,
대영이는 그게 언젠가 자신에게 비수로 날아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나랑 싸우면 많이 아플텐데. 그래서 오히려 의견충돌을 피해다니는 것 같긴 하지만.
대영이가 "아직도 네 마음은 같아?"라고 물으면
나는 내 짝사랑에게 "내가 많이 좋아해요!"라고 철없이 떠들었던게 부끄럽게 떠오른다.
어차피 걔는 영원히 날 좋아해줄 수가 없는데.
그에게는 흡연실이었고,
내게는 죽음과 가장 가까웠던 화장실이란 곳에서
털어내듯 처음으로
'좋아해요. 좋아해주세요.'라고 말했을때
'많이 아낍니다.'라고만 건조하게 대답하는 그 기류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화장실은 대체 어떤 장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