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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라KAYLA Sep 28. 2016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

샬롱 쉬르 손, 내가 사는 곳

한국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지 이제 4개월 차다. 서울에서 막차 타고 집으로 가던 시간이 밤 열한 시 반이었는데, 여기는 아홉 시, 열시면 다들 밤잠을 청하는 분위기다. 누런 가로등 불만 남아있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 파리의 시끌벅적함과는 차원이 다른 작은 동네, Chalon sur saone 샬롱 쉬르 손.


여기로 이사온지 3개월째, 아직도 아침에 눈을 뜨면 놀랄 때가 있다. 여긴 어디지? 왜 내방하고 다르지? 한 5초쯤 멍 때리다가 현실을 마주한다. 아, 난 프랑스에 있지. 그리고는 긴 한숨을 내쉰다. 어쩔 땐 그냥 눈물이 흐를 때도 있고 때때로 이유 없는 무기력증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주문을 외면서 일상생활을 하려 애쓴다. 이를테면 아침에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 그리곤 책상에 앉아 프랑스어 공부를 하는 것. 그리곤 집안 정리를 좀 하다가 도서관에 가서 잡지를 읽고 책을 보는 것. 심한 날엔, 책을 보고 잡지를 보다가 확 울음이 터지는 날도 있다. 


이런 걸 우울증이라 부른다지. 내 마음이 아프다는 신호. 그래서 이런 글도 시작하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흘러가는 하루에, 변화무쌍한 내 감정을 적어놓고 정리하고자 함이랄까?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정리를 해도 뒤돌아서면 다시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눈물이 났다가 또 웃기도 했다가. 어쩌면 조울증일지도 모르겠다. 쉽게 슬프고 쉽게 웃는다. 감정의 88열차, 청룡열차. 제일 힘든 건 옆사람이겠지. 요즘 들어 옆사람에게 자주 듣는 말은 :


"내가 뭘 해도 네 마음을 모르겠어, 네가 뭐 때문에 슬픈건지 모르겠어. 나는 열심히 노력하는 건데 너에겐 늘 부족한 것 같아 그게 나도 스트레스야."


그렇겠지.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어찌 당신이 알 수 있을까? 프랑스 도착 후 처음 한 두 달은, 처음이라서 그렇다. 이런 환경에 혼자 놓인 게 처음이라 그렇다고 말했지만 지금에서 생각하면 그게 아니다. 그냥 다 마음에 안 들었다. 내 성격에, 문제가 생기면 나서서 처리하고 어떻게든 그걸 고쳐보고자 하고 일어나는 일을 해결하려 하고 중재하려 하는데 여기는 이런 내 성격이 통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내 상태로는 통할 수가 없다. 말도 잘 못하거니와 여기가 어떤 분위기인지, 프랑스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이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어떤 건지 잘 알지 못하니까. 그리고 이런 것은 하루아침에 득도하듯 깨닫는 게 아니니까 답답할 뿐이다. 


집을 떠나서 이렇게 오랫동안 타지에 있어 본 게 처음이다. 한국사람 없이 혼자 있었던 것도 처음이고, 마음이 맞을 거라 생각했고...그냥 무턱대고 온 거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었다. 준비는 내가 아니라 내 옆사람이 하는 거라 생각했다. 나는 그냥 프랑스를 가서, 모든 것이 준비된 환경에 나만 껴맞추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바보. 멍청이지. 


1. 내가 제일 중요한 건데 그러니 준비도 내가 해야 하는 건데 왜 그걸 남에게 미루기만 했을까?

2. 모든 것이 준비됐다고 치자, 거기에 나를 어떻게 껴맞춘다는 생각을 했을까?

3. 온전한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인지를 봐야 할 텐데 나를 껴맞춘다는 발상 자체가 오산이었다. 

4. 어떻게 이렇게 순진하게 모든 것들이 잘 풀릴 거라 생각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간단히 퉁칠 수 있는 건 '잘 몰라서요.'

잘 몰라서 그랬다. 그리고 잘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만 있었다. 그 믿음이 깨졌을 때 내가 얼마나 아플지 생각지 못하고 기대기만 했다. 어려서 그랬다 할 수도 있고 무식이 용감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 이런 모습도 내 자아 중 하나라는 걸 알았다.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을 하니 빨리 접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해보고 돌아가야지 생각도 들고 

내 비자 종료는 내년 6월 6일인데, 내년까지 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 시간을 알차게 쓰는 게 제일 남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들고 

이러나저러나, 어떻게는 사는 게 인생 아니겠나.


결국 중요한 건, 이 모든 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지 아닐까?

돈을 버는 생산활동에 대해서 겁이 나는 건 없다. 여기서도 어떻게든 살려는 마음만 선다면, 먹고사는 거에는 자신이 있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취업난이 심하다지만, 내가 돈을 벌려는 마음이면 뭐라도 해서 입에 풀칠이야 하겠지. 중요한 건 '나'인 거지. 

이런 오늘의 마음을 이렇게 적어둔다. 

잊지 않아야지. 

나를 망치는 것도 '나'고, 나를 예뻐하는 것도 '나'고 모든 것은 '나'다. 

2016년 9월 26일 저녁 즈음에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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