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뭘까?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현재를 소중히 생각하면 된다는데 그 소중함을 어떻게 알아야 할까?
작년에 미국에서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이 무서운 곳이고 만만한 게 아니란 걸 알지만, 난 내가 어떻게 강해져야 하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하지? 정말 강해 져야 하는 건가?
어떻게 강해져야 하는 걸까? 내가 당신을 짓밟고 내가 나를 밟고 어떻게든 저 위로 올라가면 강해지는 건가? 위로만 올라가는 게 강해지는 건가?
그래, 난 약하고 세상은 강하다고 하자. 세상에 나처럼 약한 사람이 어딘가에 또 있지 않을까? 그럼 약한 사람끼리 뭉쳐서 살면 되지 않을까? 하나보단 둘이 낫고 둘보단 셋이 낫고 그렇게 우리끼리 연대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아직까지도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학교를 다니고 있고, 언어를 배우고 있고 문화도 차츰 알아가게 될 거고. 근데 그 언어로 뭘 해야 할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해본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 움직이는 게 나으니까. 그러다 보면 뭐가 생각나고 하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정말이지 막연한 기대와 바람.
사실은 작년에 미국에서 좀 더 버텨볼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 외로움에 못 견뎌 귀국을 했고, 귀국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을 떠날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직장은 알아보지 않고 되는대로 돈을 모았었다. 내가 한국을 떠남에 있어서 확고했던 생각은,
‘한국은 역시나 안 돼. 여기는 아니야.’
그래서 프랑스는 한국보다 나은가? 여기는 내가 살 만한 곳인가? 내가 생각하던 유토피아는 여기가 맞나?
유토피아는 없었다
희망을 품고 왔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희망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고
세상 어느 곳도 내 마음에 다 차는 곳은 없을 거란 걸 알았다.
내가 바라는 게 있고 원하는 게 있다면, 그곳이 어디던지 맞춰가며 버틸 생각을 하겠지만 그런 게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테지.
다만, 없어지지 않는 두려움이 있다.
과연 여기서 내가 살 수 있을까? 여기서 내가 이 정도로 배워서 살 수 있을까? 여기서 사는 건 잘 사는 거라 할 수 있을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답이 없다. 내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뿐.
어학원을 다니게 된 것은, 안 다니는 것 보다야 낫겠지. 근데 그 이후에 과연 나는 여기에 잘 정착할 수 있을 것인가? 정착한 다는 게 뭘까? 나의 이런 성격으로 잘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어디까지 양보하고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어가 되고 난 뒤 여기서 살겠다는 마음이면 어떻게든 일을 찾고 버티려고 하겠지. 그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만약에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취준생이라고 하기엔 많은 나이이고, 공백기에 대한 걸 어떻게 채워 말해야 할까?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위에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해줬던 또 다른 말이 생각난다.
그런 걸까?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난 이렇게 바라는 거 없이 흘러가도 되는 걸까? 그러다 보면 뭐 떠오르는 게 있기나 할까? 없으면 어떻게 하나? 나만 뒤쳐지고 다들 앞서가면 난 이렇게 도태되는 건가? 도태됨의 기준이 뭘까? 난 가치가 없는 걸까?
또 시작된 생각의 실타래.
이건 도와줄 사람도 없다. 내 몫이니까. 그래서 더 힘들다.
이 우울함은 말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온다.
2016년 10월 2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복잡한 마음을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