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내촌목공소 태그를 검색하다 만난 책이다. 나무를 키우지는 않지만 표지와 목차가 마음에 들어 일단 읽기 시작했다. 집에서 식물을 키우지만 예전부터 키우다 유명을 달리한 존재들이 많다. 가구보다는 가전에 돈을 더 들이는 게 요즘 트렌드라는데 당분간 이사 계획이 없으면서도 가구는 합리적인 가격을 찾는다. 가구용 목재는 호두나무가 고급이라는 말, 예전에는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어 혼수에 사용하려고 했다는 얘기 정도가 내가 아는 나무 관련 지식의 전부였다.
그렇게 나무 문외한인 내가 두 시간 만에 뚝딱 읽어버린 '나무 책'. 그리고 자꾸 다시 들춰보고 싶어 지는 '나무 인문학 책'. 전자책으로 샀지만 표지가 예뻐서 종이책도 구입을 고민 중인 책. <나무의 시간>을 소개합니다.
40년간 나무를 사랑한 사람
한 가지 일을 오래도록 해 온 사람은 책을 쓸 수 있다. 시간을 들여 경험을 쌓으며, 몸에 익힌 그 사람만의 것. 그런 이의 책을 읽으면 그의 인생을 몇 시간 만에 읽는 것과 같아서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기도 하다. 이렇게 깊고 많은 이야기를 쌓으면서 얼마나 어려운 시간을 보냈을까.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가볍게 읽어내려도 괜찮을까.
저자 김민식 고문(출처: 문화일보 기사)
이 책은 특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 김민식 님의 소개를 잠시 옮겨본다.
내촌목공소 목재 상담 고문.
한국의 목재 산업이 활황을 띠던 시절부터 40여 년 목재 딜러, 목재 컨설턴트로 일했다. 나무의 밭으로 꼽히는 캐나다, 북미를 비롯해 전 유럽과 이집트, 이스라엘, 파푸아 뉴기니, 뉴질랜드 남섬까지, 그의 나무 여정은 400만 km에 이른다. 독일 목재 회사 Jacob&Sho¨ns Gmbh의 파트너로 일할 때는 세계 최초로 ‘엔지니어드 자작 마루판’을 설계했고, 세계 공연장의 건축 음향을 연구한 이력이 길다. 2006년부터 강원도 홍천 내촌목공소에서 건축가,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목재 컨설팅 및 강연을 해왔다. 저자는 나무와 함께한 오랜 경험, 인문학적 지식으로 나무와 사람, 과학과 역사, 예술이 어우러진 깊고 넓은 나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나무를 잘 사용하는 사람이구나! 여하튼, 목재 상담 고문이라니 내 생전 만나본 적 없는 분이지만 새로운 지식을 쌓는다는 점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은, 자신 있게 추천하고픈 목록에 올랐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소재, 나무
혹시 지금 어디에 앉아 있나요?
소파에 앉든 의자에 앉든 대부분 나무를 사용한 제품일 것이다. 물론 바닥에 앉아도 나무로 바닥을 깐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과거에는 나무로 뼈대를 만든 집이 많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무는 사람과 정말 가깝게 쓰이는 재료다. 지은이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쉽지만 가볍지 않게 들려준다.
적절한 목재를 사용했든, 그렇지 않든 나무가 없이는 생활 자체가 힘들다. 그 나무에 대해 전혀 관심 없던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내가 앉아있는 의자의 나뭇결이 달리 보인다.(실제 무슨 나무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헤링본 무늬의 바닥에는 어떤 나무를 사용했는지가 궁금해진다. 하다못해 배달음식에 딸려 나오는 일회용 나무젓가락도 나무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가로수가 없으면 황량한 도시의 풍경이 얼마나 더 메말라 보일 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이렇게 나무는 인간과 밀착되어있는 소재다.
어딜 가나 나무만 찾는 사람
프롤로그의 한 부분을 옮겨 본다.
P12
그때부터 합판이든 원목이든 목재가 사용된 것을 보면 제조사를 추적하고 나무의 원산지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가구는 물론이고 미술관이든 공항이든, 심지어 자동차 내부에 조그만 나무 조각이라도 보이면 다시 보았다.
(중략)
... 백화점에 가도 바닥만 보고 다녔다. 1990년대 매장 바닥에 너나없이 원목 마루를 까는 것이 유행했는데, 아래만 보고 걷다가 지나는 점원의 시선이 민망해서 넥타이를 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건물에 들어가도 문을 보고 난간을 살폈다. 쾰른 콜룸바 미술관의 계단 난간은 사람의 솜씨인가 싶을 정도로 정밀하여 전율했다.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 콜럼버스의 무덤 옆으로 제단과 벽 장식, 가구는 모두 호두나무였다. 미술관, 갤러리의 작품에 나무가 있으면 살폈고, 소설과 영화 속에도 나무가 보이면 허리를 세웠다. 백남준의 작품과 TV 박스에 쓴 합판을 기억한다. 카뮈의 글, 반 고흐 그림 속의 아몬드 나무 흰 꽃은 눈이 부셨다.
그야말로 나무에 빠진 '나무 빠'의 전형이다. 어딜 가나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부터 눈에 띄는 것이 당연지사. 이 분에게는 그 대상이 나무였다. 그렇게 보고 또 보면 남들은 모르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것을 알게 된다. 그 40년간의 '나무 덕질' 결과(아주 일부분이겠지만)가 바로 이 책이다.
목재 가구가 눈길을 끄는 그의 집(출처: 브.레드 출판사)
알아두면 쓸데가 많은 나무 이야기
이 책을 읽다 보면 다른 이들과의 대화에서 은근슬쩍 어필할 수 있는 상식이 정말 많이 나온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국제공항 바닥에 마루를 최초로 깐 곳은 인천 영종도 신공항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바닥재로 참나무 원목을 헤링본 형태로 사용
일본 나오시마 섬의 이우환 미술관의 바닥은 무늬목을 붙인 참나무 마루판, 바닥이 해어지면 곧 무늬가 드러날 것
우리나라의 체육관 마루나 콘서트홀 무대에 설치하는 단풍나무 마루판은 가격 대비 과한 듯
문학작품에 나오는 나무가 그냥 '나무'로만 묘사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부분이 정말 많은데 나무에 푹 빠진 저자가 보기에는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인이 사랑을 맹세하는 나무가 가을의 단풍나무인 것과, 하늘 높이 솟은 대나무인 것과는 분위기가 꽤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나무가 사건의 단서가 되는 경우도 제법 있는데 이제부터 책을 읽을 때 나무에 대한 부분이 나오면 주목해서 찾아볼 것 같다.
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나무의 이름이 번역 과정에서 달라진 경우, 같은 나무를 다르게 부르는 경우, 원산지에 따라 나무의 쓰임이 다른 경우 등 '이런 것도 있었어?' 하고 놀라는 이야기들을 계속 들려준다. 이 책에 나오는 것들만 잘 기억하고 있어도 '나무 박사'라는 기분 좋은 오해를 받을 수 있을 듯하다.
나무만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어떤 나무가 어디에 좋고, 이 나무는 어느 나라가 원산지이며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의 전문적인 지식이 대부분이겠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나무에 대한 상식을 모았다고 하기엔 억울할 만큼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아니, 아무리 나무를 좋아한다고 해도 나무와 관련된 것들을 이렇게 많이 알고 있으면 반칙 아닌가!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악기를 만드는 나무는 무엇인지, 와인통에 쓰이는 나무가 시대가 변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청와대의 의자가 어떤 양식인지, 특정한 나무가 어느 나라에서 왜 귀하게 사용되는지 등등... 저자의 나무 이야기는 끝이 없고 한계를 모른다. 따라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술술 읽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에필로그를 읽고 있었다. 제발 다음 편도 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에필로그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옮겨본다.
P368
목재를 살피며 나무를 보았고 사람과 역사와 문화를 보았다.
나무를 헤아리며 살아온 나의 이야기가 우리 목수, 건축가, 디자이너들이 나무를 보는 시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또 누구든 나무를 살피고 누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소문내고 싶다. 다른 이들도 이 좋은 것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저자 역시 사랑하는 나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주고, 이해하는 사람이 늘었으면 하고 이 책을 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