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 에도물, <삼귀> 두번째 에피소드 '식객 히다루가미'
소설을 좋아하세요?
일단 글이라면 읽고 보는 나지만, 자기계발서는 별로 안 좋아한다. 반면 소설은(특히 추리소설, 장르소설) 정말 좋아한다. 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는 다음에... 일단, 재미있으니까.
누구나 알다시피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다. 하지만 '능숙한 거짓말쟁이는 거짓을 말할 때 약간의 진실을 섞는다' 고 한다. 소설도 시대상을 잘 반영하면 더 진짜같이 느껴지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1980~90년대에 발표된 현대 배경 소설을 읽으면 지금과는 꽤 다른 생활모습에 약간씩 몰입감이 깨지곤 한다.
그나마 내 나이 이상의 독자들은 그 시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만, 어린 독자들은 또 다른 느낌이겠지.
그렇다면, 아예 과거가 배경인 시대소설은 어떨까?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시대이기에 오히려 배경보다 이야기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미야베 미유키(みやべみゆき, 宮部みゆき, 이하 미미 여사)의 현대물보다 에도물을 더 즐겨 읽는 이유인 듯하다.
미미 여사는 에도물을 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제가 에도 시대를 계속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며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에도물(미야베월드 제 2막)을 몇 가지 시리즈로 집필하고 있다.
오늘날로 치면 탐정이나 형사에 해당하는 오캇피키 모시치(에코인의 모시치 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시리즈 :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맏물 이야기>
천재 미소년 유미노스케와 그의 이모부이자 양아버지가 될 도신 헤이시로 시리즈. 모시치 다음 세대인 오캇피키 마사고로가 등장한다 : <얼간이>, <하루살이>, <진상>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소녀 오카쓰와 약하지만 알고 보면 스마트한 청년 우쿄노스케 콤비 시리즈 : <말하는 검>, <흔들리는 바위>, <미인>
마지막으로, 며칠 전에 신간이 나온 따끈따끈한 미시마야 시리즈 : <흑백>, <안주>, <피리술사>, 그리고 <삼귀>
미시마야 시리즈는 무엇을 먼저 읽든 주인공인 오치카와 괴담 대회(?)가 벌어지는 상황을 친절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크게 상관은 없다. 그래도 다 읽고 나니 순서대로 읽었으면 좀 더 오치카의 성장에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에도의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는 하녀처럼 일하는 예쁜 아가씨가 있다. 사실 주인 부부의 조카딸인데, 집에서 남매처럼 자라온 청년이 그녀의 약혼자를 죽이고 나서 자살한 끔찍한 사건 때문에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주인 부부에게는 딸이 없고, 두 아들도 일을 배우러 나가 있어 소중하게 아껴주고 싶은 조카다. 하지만 하녀처럼 일하겠다는 그녀에게 작은 아버지는 특이한 업무를 지시한다. 다름 아닌 괴담을 들으라는 것.
사실 괴담 듣기는 우연히 찾아온 손님이 창밖의 꽃을 보고 털어놓고 싶은 기억을 말한데서 시작되었다.
화자가 불편하다면 이름이나 지명은 가짜로 사용하거나 말하지 않아도 된다. 화자는 말하고, 청자는 듣고 버린다. 이것이 이 괴담 대회의 규칙이다.
영혼이 부서질 정도로
비극적인 일을 겪은 이에게
어지간한 위로나 격려는 별 소용이 없으며,
그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꿰매어
수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오치카는 나이를 먹어가며 사랑도 하고, 성장할 것이라는 미미 여사의 말과 달리, 시리즈가 3권이 나오도록 그녀의 상황은 비슷했다.
첫 번째 <흑백>에서 괴담으로 인연이 된 나막신 도매상의 후계자 세이타로와 사랑이 싹트나 했더니 남자 쪽의 일방적인 마음이었던 듯하다. 두 번째 권에서는 꽃놀이까지 가더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괴담을 들려준 습자소의 작은 선생 아오노 리이치로와 뭔가 진행이 될 듯 말 듯 하다가 3번째에 해당하는 <피리술사>에서는 연애 따윈 없다.
오치카는 분명 A형일 것이다. 스스로 정한 테두리를 깨고 나오질 못해...
서론이 길었는데 이번에는 <삼귀(三鬼)>라는 심플한 제목이다.
미망의 여관
식객 히다루가미
삼귀
오쿠라 님
마지막 에피소드 '오쿠라 님' 은 괴담보다는 다음 시리즈를 위한 포석일 듯하다.
첫째, 보기 드물게 흑백의 방에 귀신(?)이 직접 찾아왔고
둘째, 가끔 언급만 되던 작은 아버지의 둘째 아들 도미치로가 어이없이 싸움에 휘말려 부상으로 집에 돌아오고
셋째, 세책(방문 서점이라고나 할까) 집안의 아들 간이치라는 남자가 새로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오치카와 연애를 할지도 모르던 작은 선생 아오노 리이치로가 예상치 못한 일로 미시마야에서 퇴장한다. 다음 권에서는 분명 오치카의 연애가 비중있게 다뤄질 듯 하다. 단, 그 상대가 사촌오빠인 도미치로일지(사촌끼리 결혼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으므로) 조용하지만 매력 있는 간이치일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여기서 웃다가 울게되는 두번째 에피소드만 얘기하려고 한다.
식객 히다루가미
* 히다루가미(ひだる神) : 인간을 홀려서 배고프게 만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는 악령의 일종
한마디로 귀신이 붙은 이야기다. 하지만 전혀 무섭지 않다.
히다루가미가 도시락집 주인에게 붙는다. 계속 배고프다고 보채서 주인에게 혼이 나기도 하고, 맛있으면 맛있다고 표현도 한다.
난 이 귀신을 '반려 귀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음식을 먹으면 조용해지고, 귀신이 살이 찌질 않나, 식탐이 있어 먹을 것도 가린다. 귀신 치고는 너무 귀여운 것 아닌가?
먹을 것만 주면 보통 떠난다는 옛이야기와는 달리, 주인이 음식점을 한다니까 계속 따라다닌다. 하긴, 나 같아도 그렇게 음식 자랑을 하면 좀 더 있다가 뭔가 더 먹어보고 싶겠다.
주인공의 일이 잘 풀리지 않자 특기(?)를 발휘해 손님을 배고프게 만든다. 그렇게 장사에 도움을 주고... 먹고 또 먹어 급기야 집을 내려앉게 만들다니. 정말 기발한 발상 아닌가?
또 한 가지, 귀신도 다이어트를 하는데 사람이라고 별 수 있을까? 최고의 다이어트는 역시 입을 막아야 하는 것.
사실 한 권 내의 에피소드지만, '삼귀'는 너무 쓸쓸해서 다음에 따로 또 써야겠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이 에피소드를 읽고 나니 왜 일본이 지속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했는지 알 것 같다. 지배계층이야 다르겠지만, 피지배계층은 정말 살기 힘들었겠구나...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이나 <태백산맥>을 읽고 나서 먹먹했던 느낌과 어느 정도 통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삼귀'와 교고쿠 나쓰히코(
きょうごくなつひこ, 京極夏彦)
의 <웃는 이에몬>, <엿보는 고헤이지>를 엮어서 써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