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른, 나의 아이

나를 안아 줄 어른은 누구인가? 3편(완결)

by 새벽별노리

40대 중년 남성 '성원'의 이야기가 드디어 마무리됩니다. 총 3편으로 연재된 단편 소설의 마지막 이야기를 즐겁게 읽어주세요.


<나를 안아 줄 어른은 누구인가?>

돌아온 일상, 깊어진 평온

고양이와의 짧은 교감이 선사한 평온함 속에서 성원은 문득 깨달았다. 혼자서 견뎌낼 수 있는 즐거움, 그것은 어쩌면 완벽한 행복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해변 마을에 머무는 동안 성원의 여행은 겉으로 보기에는 꽤 고단했다. 특별한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움직였고, 간혹 숙소를 구하지 못해 차 안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쉬지 않고 계속 달린 탓에 피로가 온몸을 짓눌러왔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육체적인 피곤함 속에서 성원은 전에 없던 자유와 평안함을 느꼈다. 도시의 무기력감 사이로 파고드는 이 생생한 감각은, 그가 분명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는 더 이상 시간에 쫓기거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며, 존재 자체의 가치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살면서 절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유명하다는 작은 어촌 식당 앞에 줄을 서서 무려 네 시간을 기다렸다. 지루함보다는 호기심이 앞섰고, 결국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순간, 그 기다림이 선사하는 소박한 성취감과 만족감에 새삼 놀랐다. 창밖으로는 손을 꼭 잡은 채 도란도란 걷는 연인들의 모습,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서 웃음꽃 피운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에게는 그저 일상일 풍경이, 성원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동안 자신이 그토록 이루려 했던 '성공'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명함에 박힌 직함, 통장에 찍힌 숫자, 타인의 부러움 섞인 시선? 그 모든 것보다, 저들처럼 소박하지만 단단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삶의 목표는 아니었을까.

그 순간, 그의 시선은 식당 한쪽에 앉아있는 몇몇 할머니들에게 닿았다. 밝게 염색한 머리카락, 곱게 차려입은 옷,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다. 예전 같았으면 '시끄럽고 피곤한 존재들'이라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성원의 눈에는 그들이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을 즐기는 모습. 그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만큼 깊어진 연륜과 만족감이 배어 있었다. 성원은 문득 깨달았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어떤 거창한 성공이 아니었다. 그저 삶을 함께 나눌 사람들과 소소한 즐거움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에 있어서 진정으로 행해야 하는 발걸음, 즉 혼자서도 견뎌낼 수 있는 평안함과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이 조화된 진정한 행복임을.

여행은 끝났지만, 성원의 내면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았다. 평생 안 할 줄 알았던 경험도 해봤다. 이제 그는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우리' 속에서 평정심을 찾는 법을 어렴풋이 아는 듯했다. 그 깨달음은 번개처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고민과 작은 경험들이 쌓여 맺어진 열매였다. 여전히 모든 답을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방향으로 걸어야 할지는 명확해졌다. 이제 익숙한 풍경들이 있는 자신의 도시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몇 달 후, 서울의 일상 속에서 성원은 여전히 회색빛 권태와 마주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깊은 나락으로 빠지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마주했던 평범함의 가치와 고양이의 고요한 존재감, 그리고 이름 모를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그의 마음속에 단단한 뿌리처럼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자신을 채찍질하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성원아, 지금 너는 무엇을 느끼고 있니?' 거울 속 자신의 흰머리와 깊어진 주름을 애써 가리려던 손짓 대신,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깨달았다. 나의 어른은 모든 것을 해결하려 애쓰는 자아가 아니라, 상처 입은 나의 아이를 있는 그대로 안아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나의 아이는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울부짖던 존재가 아니라, 그저 온전하게 사랑받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을. 비로소 그는 과거의 실패와 현재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모든 면을 아낌없이 수용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던 그의 희망은, 이제 삶의 진정한 발걸음을 내딛을 단단한 용기와 함께, 앞으로 찾아올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성원은 자신과 화해했다. 그리고 그 평온함은 비로소 그의 삶 속에서 진정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끝.


*에필로그*

중년이라는 삶의 중턱에서 우리는 무엇과 마주할까요?"

누구에게나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드리우는 중년의 시기,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쩌면 실수를 자책하거나 불안함에 떨며 사는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 속 고양이의 느긋함처럼, 우리 또한 삶의 평온함을 마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저는 이 작품을 통해 각자의 직분과 위치에서 삶을 1cm라도 더 나아가려는 모든 분들의 노력을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다음 작품 예고>>

"다음 소설은 삶의 팍팍함 속에서 사라진 여유와 깊어진 불신을 마주하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주인공의 여정을 그렸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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