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를 싣는 사람들 1편

화가 많은 세상의 시작

by 새벽별노리


이 소설은 종혁의 하루와 그 안에서 겪는 관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조명합니다.


<화가 많은 세상의 시작> 1

오종혁은 오늘도 새벽 댓바람부터 트럭에 몸을 실었다. 이른 아침의 공기가 뼈를 시리게 파고들었지만, 그의 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은 비좁은 운전석과 꽉 찬 물류 때문만은 아니었다. 박스 하나하나가 곧 그의 이익금으로 직결되었기에, 점심을 거르는 일은 그에게 일상다반사를 넘어선 의식이었다. 한 푼이라도 더 움켜쥐려는 치열한 성실함, 그것은 팍팍한 삶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끈이자 생존의 조건이었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마음은 천근만근, 어깨는 뻐근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진 듯 육중한 피로가 그를 짓눌렀다.


첫 배송지는 낡고 비좁은 단독 주택 단지였다.

붉은 외벽이 다닥다닥 붙은 빌라들 사이, 좁은 골목에 짐을 옮긴다. 머리 위로 뒤엉킨 전깃줄 사이, 켜켜이 쌓인 먼지가 한숨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뿌연 가루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와 인후를 긁어대는 듯했다. 체념하듯 차에서 내린 그는 익숙하게 박스 몇 개를 챙겨 들었다. 꿉꿉한 새벽 공기 속에서 미세먼지 특유의 텁텁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투박한 손아귀에 잡힌 박스는 겉보기에도 무게감이 상당했다. 비탈길을 오르다 보니 낡고 녹슨 대문이 눈에 들어왔다.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문틈으로 터져 나와 그의 귓전을 사정없이 때렸다.


“누구세요? 대체 몇 시부터 남의 집 벨을 눌러 대는 거야!”


박노인이었다. 종혁은 순간 움찔했지만, 터져 나오려는 깊은 한숨을 겨우 삼키고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택배 왔습니다, 어르신.”

속으로는 ‘아침부터 이 난리라니, 오늘 하루도 순탄치 않겠군.’ 하는 푸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문이 삐걱이며, 마치 오래된 뼈마디를 움직이듯 느리게 열렸다.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맨 박노인이 퉁명스러운 얼굴로 종혁을 내려다봤다. 그의 미간에는 오랜 세월의 깊은 주름이 흡사 균열처럼 파여 있었다.


“아니, 젊은 사람이 목소리가 왜 그래? 잠이 덜 깼어? 요즘 것들은 영 기합이 없어!”


노인의 음성은 날 선 칼날처럼 귓속을 파고들었고, 듣는 이의 심기를 거스르기에 충분했다.

종혁은 속으로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삼켰다.

‘기합이라뇨, 어르신. 기합으로 사는 세상이 아니라니까요. 숨 쉴 틈도 없이 뛰며 발버둥 치는데 무슨 기합이 더 필요할까요….’ 하지만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여기 받으실 물건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그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작아져 있었다. 마치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박노인은 종혁의 손에 들린 박스를 거칠게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그 손길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예의도 없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어제 온다더니! 이래 가지고 뭘 믿고 택배를 시키겠어?”


박스 모서리를 툭툭 치는 손짓에서는 신경질과 불만이 그대로 묻어났다.


“어르신, 어제는 물량이 많아서….”

종혁이 변명하려 했지만, 노인은 들은 척도 안 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종혁을 지나쳐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들을 마음이 애초에 없는 듯했다.


“됐고! 다음부터는 미리 연락하고 와! 그리고 이 박스는 왜 이렇게 찌그러졌어? 안에 뭐 깨진 거 아니야?”


종혁은 박스를 다시 확인했다. 작은 찍힘이 있었지만 내용물엔 지장이 없을 터였다.


“아닙니다, 어르신. 저희가 포장할 때부터 튼튼하게….”

그의 설명은 노인의 귀에 닿지 않는 메아리 같았다.


“시끄러워! 하여튼 요즘 젊은것들은 말대꾸나 하고! 아휴, 됐어 됐어. 가서 얼른 다음 집이나 가 봐!”


박노인은 혀를 차며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굉음이 새벽 공기를 가르고 귓가에 길게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그의 가슴속에 닫힌 빗장처럼 느껴졌다.


종혁은 닫힌 문 앞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손에 들린 송장은 꾸깃꾸깃 구겨지고,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응어리가 치밀어 올랐다. ‘젊은것이… 요즘 것들은….’ 귓가에 박힌 노인의 말들이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그는 마른세수를 하며 간신히 끓어오르는 화를 눌렀다. 아직 배송할 물건은 산더미 같았고, 그는 그저 ‘택배 기사’ 일뿐이었다. 감정은 그에게 사치였고, 생존만이 현실이었다. 트럭으로 돌아온 종혁은 좁은 운전석에 몸을 욱여넣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핸들을 잡았다. 그의 머릿속에 하나의 문장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화가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


격양되어 있는 톤과 자기보다 작은 몸집을 내려다본다. 예절에 대한 배움도 사라지고 정직과 사실은 뒤섞인 채, 화만 남아 자신만을 보호하는 경우들을 체감한다.” 그의 머릿속에 이어진 문장들은 겪어온 수많은 순간들의 파편이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화’들을 마주해야 할까. 벌써부터 지친 하루의 무게가 그의 어깨를 묵직하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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