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른, 나의 아이

일상에 머무는 위안 2편

by 새벽별노리

40대 중년 남성 '성원'의 고뇌와 성장을 다룬 단편 소설,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1편에서) 성원이 마주했던 고뇌의 기로에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평범함이 주는 위안>

불안과 자책으로 가득했던 밤들이 새로운 발걸음을 알렸다. 그가 도착한 곳은 도시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이름 모를 작은 해변 마을이었다. 높은 빌딩 대신 낮은 지붕의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자동차 경적 소리 대신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평화롭게 섞여 들었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성원은 그곳에서 생애 처음으로 ‘평범함‘의 가치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거창한 목표나 자극적인 성취가 아닌, 햇살 아래 널린 빨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오후의 나른함 속에서 졸고 있는 노인의 모습 같은 것들. 지극히 서민적이고 시시콜콜한 풍경들이었다. 그는 깨달았다. 누구나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욕망에 사로잡혀 살 때는 결코 가지지 못했던 것들. 평범한 것을 즐기는 것조차 큰 용기와 평정심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며칠째 마을을 정처 없이 걷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정원이 딸린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낡고 소박한 외관이었지만,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늑한 실내와 마당 가득 피어난 들꽃들은 왠지 모를 편안함을 주었다. 마치 불안에 흔들리던 자신의 '어린 자아'를 찾아가 보듬어주는 어른의 마음처럼, 그 카페는 그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삐걱이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은한 커피 향과 함께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고, 따뜻한 찻잔의 온기가 손끝에 스며들었다. 그 안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조용히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성원은 문득,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이처럼 흔들림 없는 평범한 일상의 안정감과 그 안에서 찾을 평정심임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멈추었다. 이제 그는 다시 자신을 들여다볼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창가로 시선을 돌리자, 나른하게 늘어진 햇살을 등지고 잠이 든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투명한 창틀 위에 납작 엎드린 고양이는 마치 일본 만화 영화에서 튀어나온 캐릭터처럼 이질적이고도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완벽한 곡선을 이루는 등줄기, 미동도 없이 살랑거리는 꼬리 끝. 그 고요한 존재 앞에서 성원은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그저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마치 고양이의 탈을 쓰고 인간의 영혼을 품은 듯한,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잠시 자신의 시선을 마주하는 듯했다. 성원은 저 고양이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그의 표정 없는 얼굴에서, 고양이는 세상의 모든 답을 알고 있다는 듯한 여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삶을 짓누르던 무거운 질문들이 저 고양이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것만 같았다.


"안녕, 낮잠 자는 중이구나." 성원은 조용히, 마치 비밀을 털어놓듯 고양이에게 말을 건넸다. "지나가다 들린 이곳에서, 너를 만나 반갑네." 그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훨씬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그러자 고양이는 느릿하게 몸을 쭉 펴더니, 마치 기지개를 켜듯 허리를 한번 크게 젖혔다. 그 움직임은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거인의 몸짓 같았다. 그리고 이내 다시 처음처럼 웅크리고는 편안하게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성원은 잠시 멈칫했다. 고양이가 정말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걸까? 아니면 그저 햇살에 몸을 맡긴 본능적인 움직임일까? 엉뚱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고양이는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걸까?' 그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고양아, 너를 만나 즐거웠다." 나지막이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몸을 피듯 움직이는 고양이를 응시했다.


그 짧은 교감은 성원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거창한 위로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고양이의 무심하고도 평화로운 존재감이 그에게 잊고 있던 평정심의 조각을 선물한 듯했다. 삶이 무능함과 실패의 연속이라며 자신을 채찍질하던 날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잠 못 들던 밤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지금, 늘어진 고양이의 모습에서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편안함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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