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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Aug 02. 2016

쓸쓸한 신화의 땅 '로토파고스'

# 튀니지 - 제르바Djerba


튀니스 시내에서 공항까지, 10 디나르면 택시로 충분한 거리이다. 아침 7시 15분발 제르바Djerba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분주했다. 1월 제르바의 하늘은 회색빛의 구름이 가득하고 비까지 슬슬 뿌린다.


제르바는 튀니지의 동쪽 옆구리 가베스만에 위치한 섬이다. 섬은 생각보다 넓고 육지와는 가까운 편으로, 바다와 땅의 고도 차이가 별로 없다 보니 육지까지 다리가 아닌, ‘로마 둑길’로 불리는 로마시대부터 만들어진 오랜 옛길로 연결되어 있다. 지중해의 섬이 다 그렇지만, 제르바는 신화 속 오디세우스와 특히 무시무시한 해적 드라굿까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다.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튀니지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제르바는 예부터 베르베르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 공용어로 베르베르 어를 많이 사용한다. 투어리스트를 위해 개발된 해안선에는 리조트들이 바다를 끼고 앉아있는데, 그 길이가 20킬로 미터에 달한다. 여름 성수기가 아닌 이상 제르바에 오면 숙소 걱정은 없을 듯하다.   


리조트 안에는 한겨울 따뜻한 곳에서 생활하기 위해 온, 유럽의 어르신들로 가득하다.
1월에도 열국의 꽃이 흐드러지는 곳이 제르바이다.


오디세우스의 변명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에서 고향 이타카로 가던 중, 로토파고스에서 로투스를 먹고 환각상태에 빠진 동료들을 아주 어렵게 구해내는데 그 로토파고스땅이 제르바이다.


로토파고스lotophagus는 부족이름으로 연꽃을 먹는 사람들(Lotus Eaters)이란 뜻이다. 주민들은 자신들처럼 일행에게 로투스를 권했는데, 오디세우스가 만사를 잊고 황홀경에 빠진 동료들을 구해낸 곳이다. 이들이 먹고 정신줄을 놓은 것은 연꽃과 모양이 비슷한 최면 성분이 있는 식물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오디세우스는 집에 돌아가기 위해 항해를 시작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중해 남쪽에서 헤매었다. 로토파고스(제르바)가 튀니지 동쪽 바다에 있는 섬이며, 칼립소를 만나서 7년을 보낸 곳은 역시 제르바에서 멀지 않은 지중해 남쪽에 속한 몰타의 고조 섬이니 지도상으로 보면 얼마나 두 지역이 가까운지, 게다가 고조 섬에서 이오니아해에 있는 그의 고향 이타카 근방이다.


오디세우스는 따지고 보면 방종과 여성 편력을, 신들의 농간이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라고 변명하며, 집을 코앞에 두고, 10년 동안 누리고 산 것이다. 뛰어난 리더였던 그는 칼립소를 만날 때,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동료들을 다 잃어버린 뒤였다. 지혜와 유연함은 있었으나 책임감과 진실함은 부족했던 인물이다. 키르케와 칼립소와의 사이에는 아들들도 있다고 하는데, 지혜와 언변, 기략과 용기, 인내를 갖춘 남자의 먼 조상이라고 치부하기엔 오디세우스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 사회였던 그리스식의 관점으로 미화되었거나 과대 포장되지 않았나 싶다.    



무스타파 요새의 드라굿Dragut Rice


터키어로 Turgut Reis(1485~1565)로 부르는 Dragut은 오스만투르크 북아프리카의 해안선을 확장시킨 오스만의 제독으로, 동시에 북아프리카의 사략선 해적이었으며 지중해의 군주, 첫 번째 군주, 군주 중의 군주, 마지막 트리폴리의 파샤 등 존경심이 담긴 많은 존칭을 가지고 있었던 알제리의 bey였다.  

 

그는 1485년생으로 아나톨리아의 보드룸이 고향이며, 그리스 혈통의 서민 가정에서 출생했다. 드라굿의 총명함을 눈여겨본 지방 총독의 후원으로 이집트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이집트 맘루크병으로 복무했다. 바르바로사와 만난 후 출세가도를 달렸으며, 바르바로사와 함께 많은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 오스만 제국에게 많은 힘을 안겨주었다. 바르바로사(하이르 앗 딘1478~1546)의 최고의 친구였던 그는 1546년 바르바로사 Hayreddin Barbarossa의 죽음으로 그의 뒤를 잇는다.

무스타파 요새 안에 있었던 바르바로사(왼쪽)와 드라굿 라이스(오른쪽)의 모습


그는 누구보다도 자비로운 성품의 소유자였으며 뛰어난 지략으로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찬탄을 받는 최고의 지휘관이었다고 한다. 그는 바르바로사와 함께했던 프레베자 전투(1538)의 승리를 이끌어냈으며 제르바 전투 Battle of Djerba(1560년 5월)에서 스페인 왕 필립 II세의 선단을 무찔렀다.


제르바 해변에, 6천 명을 죽이고 해골을 그 자리에 탑처럼 쌓았다는 전설적인 해골 타워를 언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제르바 전투 이후였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 해골들의 무더기는 오랫동안 드라굿을 기독교 국가의 적들에게 두려움을 일으키는 이미지로 심어놓기에 충분했다. 이 흉물스러운 탑은 300년도 더 지난 1848년이 되어서야 철거되었다고 한다. 이후 지중해는 1571년 레판토 Lepanto 해전 때까지 오스만이 장악하게 된다.

드라굿은 몰타 공성전에서 고문관으로 총지휘관을 맡아 출전하였지만  주둔지였던 몰타 슬리에마에서 전사하였다. 몰타의 슬리에마에서는 아직도 ‘잔인한 해적 드라굿’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들려온다.


무수타파 요새의 폐허에는 무게를 달리한 대포알과 로마시절의 석상까지, 세상모르고 편안하게 앉아있다. 바르바로사도, 드라굿 라이스도 바쁜 걸음을 내딛었을 요새의 계단을 오르면, 바라보이는 것은 야자나무 사이로 양쪽에 펼쳐진 무심한 어촌마을이다. 


무스타파 요새 Ghazi Mustapha Fort
무스타파 요새의 대포알과 로마시절의 석상


제르바의 다운타운 'Houmt Souk'


무스타파 요새에서 걸어서 갈만한 가까운 곳에 제르바의 중심지 훔 수크가 위치한다. '수크'란 시장을 의미하는 말로, 한 때는 노획한 물건들로 넘쳤던 시장이 그대로 지역의 이름이 된 곳이다.  


튀니지의 어촌에서 미끼를 넣은 도기들을 바다에 넣어 문어를 잡는 문어잡이는 꽤 유명한 볼거리다. 문어잡이를 보는 재미는 못 느끼지만, 살이 오른 문어를 맛보는 것은 할 수 있지 않나, 항상 식욕이 넘치는 입맛을 달고 다니니.

갖은 어류를 놓고 파는 시장에서 물고기를 구입하면 옆의 식당에서 조리를 해준다. 아~ 감동, 기대, 세상에 태어나서 저렇게 튼실한 문어는 처음 본다. 하지만 그토록 먹음직스러운 문어는, 노력했으나 끝내 다 먹지 못했다. 너무 짜다. 소금을 뿌리지 말고 구워달라고 마구마구 요청할 것.


점심 때가 지나서, 한산해진 시장
이런것들을 사다가...
내가 본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문어, 비주얼은 최고지만, 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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