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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Jul 25. 2016

히포의 '성 어거스틴'

# 알제리 - 안나바 Annaba

Hippo Regius


빛바랜 알제리 Algeria의 항구도시 안나바의 언덕에서 보이는 지중해는 왠지 둔중한 듯 탁한 청록 빛을 띠고 있다. 상처투성이지만 정신을 놓치지 않은 처연한 느낌이다. 알제리에서 어찌 안나바뿐일까. 그래도 삶이 계속되는 것은 미소만큼 아름다운 삶이 있기 때문이다. 지중해의 언덕에서 그들은 미래를 그린다.  


해안선을 보니 한 때는 해적들의 본거지였던  포스가 풍긴다. 지중해가 보이는 안나바의 언덕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는  사람들


안나바는 알제리의 북동쪽 코너 해안에 위치하여 튀니지와 국경을 맞댄 곳으로, 어지러운 시절에는 북아프리카 해적의 본거지였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자원이 많은 알제리의 광석을 수출하는 주요 항구이다. 이곳에 기원전 12세기 페니키아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페니키아의 항구로 발전했던 이 도시는 고대에는 히포 Hippo Regius라고 불렀다.     



히포의 폐허 Hippo Regius ruins 


제밀라Djemila나 팀가드Timgad에는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로마 고대 유적지가 온전히 남아있다. 제밀라를 꼼꼼하게 보고 온 내게 히포 유적지는 풀이 우거진 벌판에 멀리 보이는 기둥을 제외하고는 거의 폐허 수준이다.

히포 Hippo Regius는 당시 고대 북아프리카에서 카르타지 Carthage(카르타고) 다음으로 번성했던 도시였다. Hippo뒤에 붙은 Regius란 지명으로 볼 때, 왕의 관할 지역이었거나, 수도만큼 중요한, 왕이 거주했던 지역임을 알 수 있다.


130년이 넘는 프랑스의 식민통치기간 동안 대부분의 유물들은 프랑스로 유출되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히포의 유적들을 수장해 놓은 유적지의 오른쪽 언덕 위에 있는 소박한 박물관이 가상하다. 박물관 뜰에는 고대 유물은 아니지만 1845년부터 사용하며 지금도 사용하는 풍채도 듬직한 우물이 인상적이다. 


Hippo Regius ruins
박물관뜰의 우물, 1845년부터 사용하는 우물이다.
박물관의 히포 유물


햇살만이 춤을 추는 인적 없는 유적지를 들어서면, 지금 봐도 규모가 큰 하수시설 위로는 넓적한 돌을 덮어 길을 만들었으며 유적지를 덮어버린 풀 틈 사이를 헤치고 조금만 눈여겨봐도 당시의 섬세한 모자이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모자이크 타일이 붙어있는 곳은 부유한 상인의 거실일 수도, 마을의 귀족들이 드나드는 시설 좋은 대욕탕일 수도, 철학자의 서재일 수도 있었으리라.


길 옆으로 규모가 큰 주택들의 잔재가 허리만큼 남아있는 곳에 상상이라도 할 수 있도록 벽돌 위에 Quanties des Villas라고 붙여 놨다.


스페이드, 스페이드


돋을새김의 선명한 스페이드 문양이 많은데, 왜 이곳에서만 스페이드 문양이 눈에 띄는지 알 수 없었다. 스페이드 문양은 서양 카드인 트럼프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문양이다. 동양에서 서양으로 넘어간 카드는 프랑스 루이 14세 시대에 발전한 서양의 대표적인 놀이문화이다.


카드에서 가장 중요한 문양인 스페이드는 칼을 상징하는 것으로 권력을 지닌 황제와 왕을 의미한다. 도시의 이름인 Hippo Regius의 Regius가 왕을 상징하는 말이지만 이곳에 있는 스페이드 문양이 Regius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지, 짧은 내 지식으로는 알 수가 없다.


널판같이 다듬은 돌 아래는 고대의 하수시설이다.
풀 숲을 조금만 눈여겨봐도 드러나는 모자이크의 흔적
 부조로 새겨진 스페이드문양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차분하면서도 격조 있는 고대도시를 상상하며 가다 보면, 기둥들이 제법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광장이 나온다. 깊게 새겨놓은 라틴어 비문은 글자의 형태를 알아보기가 힘들 만큼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데,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을 혼합한 전형적인 로마시대의 기둥들은, 얼마 전에 석공이 새겨놓은 것처럼, 세련되게 변형시킨 세로로 난 홈도 선명하다.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이 혼합된 로마의 대표적인 기둥 양식
바닥에 누워있는 기둥, 금방 새긴 듯한 세로 홈


히포의 어거스틴 Augustine of Hippo


고대 폐허의 끝, 언덕 위에 하얀색 교회가 서 있다. 바로 성 어거스틴 성당 Basilique de Saint Augustine이다.

 Augustine(354~430)은 베르베르인으로 당시 로마의 점령지였던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Thagaste(현재 알제리의 Souk-Ahras)에서 태어났다. 어거스틴 Saint Augustine은 당시만 해도 신비적이고 원시적이었던 계시 종교인 기독교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접목시킨 교부 철학자이다. 당시 대도시였던 카르타지에서 수사학을 공부하고, 로마에 가서는 수사학을 가르쳤던 그는, 늦은 나이인 33세에 기독교에 귀의하기 전까지 마니교에 빠져 살았었다.

이론이 없던 헤브라이즘에 헬레니즘의 옷을 입혀 플라톤의 이데아를 신으로 대체시킨 이론을 바탕으로, 로마의 기독교는 중세 기독교 철학이 발전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었다. 고대 기독교에 사상의 옷을 입힌, 최초의 로마시대의 교부였지만 그가 활동했던 곳은 북아프리카의 히포 Hippo Regius였다.  


429년 북아프리카를 침공한 반달족은 히포 Hippo Regius를 14개월간 포위하고 결국은 함락시켰는데, 히포 교구(현재 Annaba)의 주교였던 어거스틴은 히포가 함락되기 직전 430년에 죽음을 맞이한다.     


1900년 준공하였지만 1914년에야 봉헌된 교회가 있는, 초대교회 교부철학의 중심지였던 안나바는 성 어거스틴을 만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 아닐까.   


히포 폐허의 끝 언덕 위에 성 어거스틴의 소박한 교회가 서 있다.
교회 안에 있는 성 어거스틴
어거스틴은 안나바 히포 유적지를 바라보고 서 있다. 동상 안에는 성인의 한쪽 팔 유골이 들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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