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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Oct 11. 2017

바뚜르화산과 바뚜르 호수

# 8월의 발리 - 우붓

      


우붓에서 3일째 되는 날,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바람대로 주인아저씨의 차를 하루 렌트하기로 했다. 아침 9시 30분에 방문을 두드린 이는 주인아저씨가 아니고 주인아주머니의 남동생이란다. 아저씨는 사원의 행사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자신이 왔다고 하면서 덴파사르에서 왔다고 한다.   

      

주인아저씨 차를 이용하려는 우리의 의도가 꼬였다. 처남이라니, 덴파사르에서 한 시간 반을 달려왔으니 좀 미안하긴 하지만 누군들 어떠랴. 구눙까위와 가까운 띠르따 음쁠을 보고 바뚜르 화산이 있는 낀따마니 지역을 둘러보고 오는 간단한 일정이다.   

 

우붓에서 북동쪽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구눙까위, 띠르따 음뿔, 낀따마니 화산지대

         

Pura Gunung Kawi   

      

우붓 북쪽에 있는 뜨갈랄랑Tegallalang 쪽으로 가다가 북동쪽으로 들어간다. 교외로 한참을 빠져나가도 우붓이 위치한 기안야르Gianyar 지역이 살기가 좋은 것인지, 시골 마을 풍경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70퍼센트의 산악으로 이뤄진 발리를 돌아다녀보면 깊은 정글까지도 논을 일궈 살아가며 공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인구밀도도 높다. 발리 면적은 제주도의 3 배지만 인구는 6배가 훨씬 넘는다고 한다. 관광객이 아니어도 발리는 차고 넘친다.        

 

동화처럼 이어지는 좁은 외길을 따라 한적한 마을 풍경 속을 달리는 드라이브는 몽글몽글해지는 마음이 부풀어 구름만큼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구눙 까위 입구에서 사롱을 입혀준다. 발리의 다른 사원들처럼 평지에 있는 사원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20여분 이상 경사가 심한 계단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간다. 가는 길 양쪽에는 논 풍경이 펼쳐지는데 산들바람에 따라 소리를 내는 종소리는 햇살만큼 맑게 울려 퍼진다. 특별히 논 풍경을 보기 위해 다른 곳을 가지 않아도 될 만큼 펼쳐진 논 뷰가 아름답다. 전형적인 V자 협곡으로 계곡으로 심하게 경사진 사면에 흙을 파내어 계단식 논을 만들었다. 드라이버가 “계단 내려가는 것이 힘들 거야.” 하고 등 뒤에 날렸지만 논 풍경에서 한 숨 쉬어가니 하나도 힘들지 않다. 하지만 한낮에 간다면 땀범벅이 되기 십상이다. 

 

급경사 계단을 한참 내려가면
옆으로 멋진 논뷰가 펼쳐진다.
경사면의 흙을 파내서 논을 만든다.


땀빡시링Tampaksiring 마을 Pakerisan 강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만든 구눙까위는 11세기에 조성된 영묘가 있는 사원이다. 사원 입구도 돌을 파서 만든 것이,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규모가 다르지만 인도의 ‘엘로라’와 ‘아잔타 석굴’의 느낌이 살풋 나기도 한다. 7m 높이의 부조는 절벽 바위를 깎아 만든 벽감에 조성되어 있다.


동쪽에 있는 5개의 벽감은 Udayana왕과 왕비 그리고 세 아들(Airlanga, Anak Wungsu, and Marakata)의 영묘이며 서쪽의 것은 왕의 다른 부인들의 영묘라고 한다. 참고로 현재 발리에는 Udayana 왕의 이름을 딴 국립대학이 있다. 힌두사원이지만 불교사원의 느낌이 물씬하며, 돌에 낀 이끼로 인해 11세기보다 훨씬 오래전에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조 아래로 흘러나오는 샘물은 바뚜르 호수와 낀따마니 화산지대에서 모아진 빗물이 남서쪽 땅 속을 흐르던 중에 이 곳(땀빡시링)에서 지표면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으로, 밭농사와 논농사의 경계, 즉 논농사가 시작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호수에서 흘러 땅속을 통해 내려오는 물이 해발고도 약 500m 부근에서 땅 밖으로 얼굴을 드러내다니, 알고 봐도 신비롭다.    

     

땅속으로 흐르던 물이 이 지역에서 지표면으로 나타난다.


Pura Tirta Empul   

     

Tirta Empul 사원은 땀빡시링 마을에 있어 Tampaksiring사원이라고 부르며 구눙까위에서 매우 가깝다. 구눙까위와는 달리 넓은 주차장은 벌써 차들로 가득하고 입구는 사람들로 넘친다. “뭐지?”, “이 광경은?” 소문대로 발리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사원이 맞는 것 같지만 현지인들보다 서양인과 중국인들이 더 많다. 관광버스 서너 대가 또다시 사람들을 쏟아놓는다. 아, 순간 되돌아가고 싶지만 이럴 때도 있는 거지, 다 좋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Tirta Empul 사원은 962년 Warmadewa 왕조(10th-14th) 때 풍부하게 솟아나는 샘물 위에 건설되었으며 ‘Tirta’는 생명수라는 뜻으로 이곳의 물은 약효가 좋로 이름이 나 있다고 한다. 바뚜르 호수의 물과 함께 낀따마니 화산지대의 빗물은 남사면의 땅 속으로 흐르다가 땀빡시링 지역에서 땅 위 샘물로 솟아오른 곳이 Tirta Empul이며 구눙 까위와 라이스 테라스 뜨갈랄랑도 주변에 위치한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기 전 왼쪽에서 사롱을 주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착용하다 보니 천은 찐득하기까지 하다. 챙이 넓은 멋진 모자와 선글라스, 셀카 봉을 들고 다니는 알록달록 모양을 낸 사람들이 몰려다니니 사원 구경보다는 사람 구경을 하기에 바쁘다. 노란 유니폼 점퍼를 입은 삼사십 명의 중국인들은 샘물 입구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며 사원이 떠나가도록 구호를 외친다. 가끔은 손님들이, 주인이 민망할 만큼 행동하기도 한다.  

    

샘물이 나오는 목욕탕에서 제물을 단에 바치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기도가 될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샘물은 항상 나오는 것이니 물이야 맑겠지만, 오늘은 말 그대로 목욕탕이다. 자세히 보면 오른쪽 샘물에는 사람들의 줄이 덜하다. 오른쪽 3개의 샘물은 힌두교 의식에 사용하거나 치료하는 성수로 받아가는 물이라고 한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병이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병을 얻어가는 일이 벌어질지도.     

   

Tirta Empul, 낀따마니 지역에서 시작된 물이 긴 여정을 마치고 나오는 용천수이니 약효가 없을 수가 없다.


왼쪽으로 보이는 언덕에는 잘 가꿔진 현대식 건물이 보인다.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Sukarno 대통령이 1954년 이곳을 방문할 때 지은 별장이다. 지금도 대통령 별장으로 혹은 중요한 손님들이 묵어가는 곳이라고 한다. 대통령 별장은 인드라 신이 만들어 놓은 생명의 샘을 굽어보고 있다.    

 

나오는 길은 가게들이 늘어선 길을 통과해서 나오도록 되어있다. 경험상 길고 긴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주차장으로 곧장 질러갔다가 드라이버를 찾느라 혼났다. 드라이버는 가게가 끝나는 길목에서 우리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우리는 만나기로 한 주차장에서 기린처럼 고개를 빼고 기다리고, 콕 집어서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도 이렇게 엇갈린다.       

   

피곤했던 사원을 뒤로하고 30여 분만 북동쪽으로 올라가니 서늘하고 청명한 기운이 느껴진다. 완만하면서 넓게 경사진 낀따마니 지역으로 향하는 드라이브는 띠르따 엠뿔에서의 피곤함을 확 날려버린다. 고도가 높아지니 길가 가판대의 과일들도 종류가 달라진다.     


고도가 높아지니 인근 과수원에서 생산하는 온대지역 과일도 보인다.


루왁커피를 좋아하니?     

   

기온까지 서늘한 화산지역인 이런 곳에서 재배하는 낀따마니 커피는 어떤 맛이 날까, 싶은데 드라이버는 루왁커피를 좋아하냐고 묻는다. 커피농장에 데리고 갈까 생각하면서 넌지시 던진 질문인 줄 알면서도 “루왁커피 너무 싫어해요.” 하고 톡 쏘아붙이듯이 말해 버렸다. 고가의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사향고양이를 닭장 같은 곳에 가두고 커피만 먹여서 키우는 인간의 탐욕스러운 행태를 혐오한다.    

     

18세기 초 네덜란드는 수마트라와 자바에 대단위 커피 농장을 만들면서 원주민들에게 재배만 시키고 정작 커피 열매 채취는 금지시켰다고 한다. 이럴 때 한 번 욕을 해 줘야 한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원주민들은 야생 사향고양이들이 커피를 먹고 싼 똥에 들어있는 커피콩을 수거하여 씻은 다음 볶아서 먹기 시작했다. 덕분에 원주민들은 고양이 장을 거치면서 이미 발효가 된 콩으로 풍미가 더한 커피 맛을 즐겼다. 이 소식은 농장주들의 귀에 들어가고, 안 봐도 뻔한 일이지만 이후 주민들은 강제로 사향 고향이 똥을 찾아 대단위 농장을 헤매던가, 야생 사향고양이를 잡아오도록 숲으로 들판으로 내몰렸을 것이다. 맛이 좋은 루왁 커피는 맛과 희귀성으로 당시에도 비싼 커피였다고 한다.   

      

   

낀따마니 지역과 바뚜르 화산Gunung Batur      

  

완만한 산기슭을 기분 좋을 만큼 달리면 눈앞에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낀따마니 지역에서 바뚜르 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Penerokan 마을이다. 바뚜르 화산 가장 최근의 폭발은 1968년이었다고 하는데 호수 쪽으로 흐른 완만한 능선에 짙은 회색 용암이 흘러내린 자국은 엊그제 흘러내린 것처럼 검정 물감을 부어 놓은 것 같다. 뷰가 좋은 레스토랑들이 있지만 어디든지 멋진 뷰는 감상할 수 있다.  

       

오늘은 투명한 햇살마저 한몫한다. 해발고도가 약 1500m인 낀따마니 지역은 다른 곳의 기후와는 상관없이 오후에는 비가 오는 경우가 많으며 맑고 쨍한 날이 흔치 않다고 한다. 구름이 북쪽의 높은 산을 넘지 못하고 남서쪽 능선에 비를 뿌리는 것이다. 덕분에 이 지역은 온대식물까지 경작하는 밭농사 지역으로 구름 그림자를 좋아하는 커피와 채소 등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실제로 열대우림지역이지만 동에서 서로 뻗은 화산 산맥을 경계로 발리의 북쪽은 남쪽에 비해 강우량이 많이 적다고 한다.

        

호수의 오른쪽에 위치한 아방산
바뚜르산,  검은 용암이 흐른 흔적이 물감을 부은 것 같다.


발리는 70퍼센트 이상이 산악지형으로 해발고도가 2000m가 넘는 산들이 4개나 되며 화산이 발달한 동북쪽 지역의 산들은 대체로 높다. 바뚜르산(1,717m)도 원래는 3500m 이상 높이였지만 화산활동으로 화구 주변이 날아가거나 무너져 지금의 높이가 되었다고 한다. 낀따마니 화산지대의 특징은 다른 화산과는 달리 오래전에 활동한 분화구인 칼데라 안에 다시 분화한 칼데라가 또 들어 있다. 큰 둥근 고리 안에 한 개의 고리가 들어가 있는 셈이다. 내부 칼데라에는 중앙 화산인 바뚜르 산과, 초승달을 닮은 넓고 깊은(최고 수심 120m) 바뚜르 호수가 들어앉아 있으며 오른쪽 바깥 외륜산에는 아방산(2152m)이 위용을 자랑한다.   


바뚜르화산(왼쪽)과 호수, 외륜산에 속하는 아방산(오른쪽)

      

바뚜르 산은 아궁산(3,141m), Batukaru산과 더불어 발리의 성산이다. 특히 넓은 화구호인 칼데라에 물이 고인 바뚜르 호수는 발리를 흐르는 대부 하천들의 시원지이며 호수와 빗물이 땅 속으로 흐르다가 띠르따 음뿔과 구눙까위가 있는 땀빡시링 지역에서 지표면으로 흘러나와 논농사가 시작이 된다. 논 뷰가 아름다운 뜨갈랄랑도 이 지역에 위치한다.


화산재로 인한 비옥한 땅과, 건기와 우기를 가리지 않고 풍부하게 내리는 비는 발리를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든 공신이다. 바뚜르 산과 바뚜르 호수는 진정 발리인들의 안식처이며 생명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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