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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Oct 30. 2017

또는 넌지시 웃어주거나...

# 8월의 발리 - 우붓의 미술관

Wayan Bawa Antara(1974~ ), 'Gift Offerings to the Sea-god Baruna'


발리의 미술    


우붓에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가까운 곳에 가볼만한 미술관도 많고, 수준이 높은 상설갤러리들을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길게 묵어가는 시간이 많은 여행자라면 관심을 기울일만한 가치가 있으며 전통적인 발리의 건축물과 정원이 있는 미술관은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붓에 있는 한두 곳의 미술관만 다녀와도 발리의 고전적인 전통 회화나 조각에서부터 발랄한 현대미술까지 장르별로 구분이 매우 쉬워 자신도 모르게 흥미가 생긴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전시실에는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정원이 쾌적해서 전시실을 나오면 그리 더운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원한 아침 시간이 좋다.


발리 르네상스    


우붓Ubud은 발리의 중부에 위치하며 명실공히 발리의 심장이다. 작은 왕국의 도읍지였던 이곳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네덜란드 식민 시절, 우붓의 영주였던 수가와티Sukawati의 초대로 서양의 화가들이 발리에 이주하면서, 우붓을 중심으로 발전한 발리의 근대회화가 세계에 알려지면서부터이다.   

  

1927년에는 독일 화가인 Walter Spies(1890~1942)와 1929년 네덜란드 화가 루돌프 보네Rudolf Bonnet(1895~1978) 등 다수의 예술가들이 이주하였다. 그동안 종교적인 접근과 표현에만 의존하던 발리 예술은 새로운 영향과 에너지를 받아 표현의 영역을 넓혀 나갔으며 다양한 기법과 주제(발리의 풍경을 비롯하여 일상 등)로 발전하였다. 특히 이주한 예술가 중 다재다능했던 월터 스피스는 발리 문화의 다양한 방면을 연구 정리하였으며 발리인들은 스피스의 제안과 계획을 받아들여 훌륭하게 발전시켰다. 18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는 침체에 빠져있던 발리의 전통회화는 물론 전반적인 예술 활동에 부흥을 일으킨 계기가 되었으며 이 시기를 발리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른다.


발리 르네상스의 주역이다. 월터 스피스와 루돌프 보네 그리고 '수가와티Sukawati'(가운데 사진)


와얀 네카Wayan Neka를 중심으로 창립한 예술인 협회인 '피타 마하'는 ‘위대한 빛’이란 뜻으로 발리 르네상스의 중심점이었다. 특히 루돌프 보네는 '피타 마하'의 설립에 한몫을 했으며 1956년에는 뿌리 루키산Puri Rukisan 미술관 건립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오랫동안 우붓에 남아 발리 현대 미술의 발전에 힘을 기울인 사람이다.     


우붓 양식과 바뚜안 양식    


1930년대 스피스와 보네가 가져온 서양미술 양식을 발리인들이 자신들의 자유로운 표현의 세계로 발전시킨 것을 우붓 양식이라고 한다. 주제는 발리인들의 일상과 의례 발리의 풍경 등이며 화면에 꽉 찬 세밀화는 발리 현대회화의 특징이 되었다.


우붓 양식, Anak Agung Gede Sobrat(1911~1992) ‘Bumblebee Dance’
Gudti Kotut Kobot,  ‘Garuda and The Battling Beasts’


우붓 양식보다 더 치밀한 양식은 바뚜안 양식이다. 바뚜안은 우붓 남쪽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주제는 악령과 신, 기이한 동물과 사람 등이며 주술적인 느낌의 그림이다. 검은색과 회색조의 색을 주로 사용하여 매우 어둡고 강렬하며 살아있는 기운이 넘치는 신들로 가득하다. 바뚜안 양식의 그림이 많은 전시실에 있으면 허겁지겁 걸음이 빨라지며 어쩌다가 전시실에 혼자 있을 때는 식은땀이 날 정도로 오싹해질 때도 있다. 주술이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발리인들의 그림답다.   

          

현대 전통 발리 미술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지나며 1980년대에는 현대적 미술교육을 받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1960년대 우붓 서쪽 마을 뻐너스타난Penestanan에서는 원색에 윤곽선을 강조하여 평면적인 느낌이지만 밝고 경쾌한 긍정적인 이미지의 그림들이 등장했으며, 1970년대 우붓 남쪽 마을 뻥고써칸Pengosekan에서는 부드럽고 섬세한 표현의 작품들이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나타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1980년대 이후에는 점차 개성이 뚜렷한 글로벌한 그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Wayan Pugur(1946~ ) Penestanan ‘In the Village’


대표적인 미술관    


네카미술관Neka Museum


우붓에는 일정한 등급 이상의 숙소에는 숙박하는 손님들을 위하여 요가와 트레킹, 요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된 경우가 많다. 호텔 카자네 무아 KaJane Mua에서 묵던 어느 날 아침 조식을 마친 후, 집사에게 네카미술관과 아궁라이 미술관을 가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바로 데려다주겠단다. 네카 미술관이 멀기 때문에 네카부터 가자고 한다. 네카미술관은 짬뿌한 지역을 지나 우붓 외곽에 있어서 거리가 좀 있다. 집사는 우리를 미술관 뜰에 내려주고는, 미술관을 관람하기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알고 있는지 몇 시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가 버린다. 개관시간에 맞추어 오니 사람이 없어 호젓한 미술관의 분위기가 서늘하기까지 하다.

    

네카 미술관

미술품 수집가였던 수테자 네카Suteja Neka가 1982년 세운 미술관으로 수테자 네카는 발리의 예술인 협회 피타 마하pita Maha의 창립에 공헌을 한 Wayan Neka의 아들이다. 개인 미술관이지만 인도네시아 및 발리의 미술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발리에서 한 곳의 미술관만 본다면 네카 미술관이다. 꽤 넓은 7관까지 있지만 잘 꾸며진 정원에 앉아 쉴 수 있는 공간도 많아 피로감도 적다. 개인적으로 1전시관과 4, 5전시관에는 다시 보고 싶은 작품들이 있었다.    

 

1전시관은 발리 전통미술을 비롯하여 근대 미술의 발전과정에 나타났던 양식이 전시되어 있으므로 양식마다 서로 다른 점을 알아내는 것도 흥미롭다. 하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작품 감상 방법은 들길을 걸으면서 지나치는 풀꽃들을 보듯이 보는 것이다. 걷다가 얼굴을 한 번 더 들여다보거나, 마음에 든다면 사진을 찍거나 또는 넌지시 웃어주거나 그러다가 마음이 동한다면 이야기를 걸어보는 것처럼.   

 

2전시관에는 20세기 중반에 발리로 이주한 네덜란드 화가 아리 스미스Arie Smith의 작품으로 인상파적인 때로는 야수파적인 경향의 작품들이다. 굳이 연결하자면 발리의 영 아티스트 작가들의 작품들과도 맥을 같이 한다.     

4전시관은 발리인들이 좋아하는 구스티 뇨만 렘파드Gusti Nyoman Lempad의 작품이며 5전시관은 인도네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지긋이 관심을 보여주면 보면 툭, 하고 마음을 건드리는 작품들이 다가설지도 모를 일이다.


자바 출신 Abdul Aziz(1928~ )의 작품들, 오른쪽은 유명한 'Mutual  Attraction'


아궁라이 미술관Agung Rai Museum of Art    


아르마ARMA미술관이라고도 부른다. 아르마 미술관이 있는 지역은 우붓 미술의 중심지 Pengosekan 지역이다. 우붓 교외 남쪽으로 드나드는 통로인 이 길은 늘 북적인다. 얼마나 복잡한지 미술관까지 우리를 데려다준 카자네무아 드라이버도 만날 때는 미술관에서 한참 떨어진 코코마트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한다.

 ARMA에는 의례와 주술에 관련된 발리 전통 회화가 아주 많으며 현대적인 작품도 많다. 특히 이곳에는 알수록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이며, 미술은 물론 발리 문화 발전의 공로자인 ‘월터 스피스’의 작품들이 원작은 아니지만 다수가 있어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뿌리 루끼산 미술관Puri Lukisan Museum  

  

시내 중심가에 있어 문이 열려 있다면 산책 중에도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붓 왕궁에서 스타벅스와 로투스 카페 지나서 짬뿌한 쪽으로 조금만 걷다 보면 오른쪽에 미술관이 나타난다. 1956년 우붓 왕실과 ‘루돌프 보네’의 노력으로 설립한 미술관으로 우붓 최초의 미술관이다. 넓게 조성된 정원과 전통 건축물이 시선을 끈다. 패키지 손님들이 많이 오는 곳으로 늘 붐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개관시간에 맞춰 들어가니 한산하다. 규모가 꽤 크며 발리 미술의 변천 과정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이곳에는 발리 미술에 지대한 공헌을 한 화가 루돌프 보네와 월터 스피스, 우붓의 영주였던 수가와티의 당시 활동했던 내용과 사진이 소개되어있다. 음료 쿠폰으로는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결코 공짜가 아니지만 얻어 마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블랑코 미술관AThe Blanco Renaissance Museum  

  

스페인 화가인 Don Antonio Blanco의 개인 미술관이다. 20세기 중반에 발리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했던 화가이다. 과장된 느낌의 조형물,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를 닮은  듯한 허세와, 반면에 느껴지는 소년 같은 순수함은 동전의 양면처럼 느껴진다. 나오는 길에 만날 수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는 그 만의 낭만적인 향기가 서려있다. 노장의 한 생을 훑어본 기분이랄까, 꼭 봐야 할 곳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짬뿌한 트레킹 가는 길에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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