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마을과 홍쌍리 매화마을

# 구례 그리고 광양 - 1박 2일, 남도에서의 꽃놀이

by 그루


광양을 다녀온 후 약 2주 후, 볼 일이 있어 언니 집을 방문하였다. “이모, 엄마가 광양 매화 축제를 무지 가 보고 싶어 해”. 매화마을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한데 매화마을에 다녀온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조카가 대뜸 매화 축제 이야기를 꺼낸다. TV에 나오는 매화마을을 봤나 보다. 이모인 내게 혹시 엄마를 데리고 가 달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구나!” 했을 뿐, 혼자만 다녀온 것에 미안한 마음이 앞서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코로나 3년째 봄날, 난생처음 벼르고 별렀던 남도의 꽃놀이를 드디어 하고 말았다. 3월 중순, 구례에서 산수유를 본 다음 광양에서 자고 이튿날 이른 아침 홍쌍리 매화마을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새벽같이 서너 시간을 달려 아름다운 구례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아지랑이였을까, 이른 아침 도착한 도심은 포근한 산자락에 안겨 편안한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들린 적이 있었을까만은 구례는, 오랫동안 산을 가까이하지 않았기에 더욱이 지리산은 처음이었다. 이정표에 ‘노고단’ 이란 지명까지 보이니 분명 이곳은 지리산 자락이다. 지금은 ‘노고단’이란 지명만 보고도 산을 오르고 싶어 진다. ‘노고’는 ‘마고할미’를 부르는 말이니 지리산 ‘노고단’은 전통적인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었을 것이다.

구례 산수유 마을과 광양 홍쌍리 매화마을


구례 산수유 마을은 어릴 적 동화 속에서 봤던 소박한 마을 모습을 닮았다. 지리산 산그리메를 따라 노란 물감이 발라져 있고, 벽걸이 달력 안에 있었던 봄날의 이미지 안에서 계곡 따라 노랗게 이어진 마을 길을 내가 들떠서 걷고 있었다. 자연이 잠시 보여주는 이런 풍경은 인간이 꿈꾸는 천국의 이미지와 닮았다.


우리 집 근처에도 찾아보면 산수유나무가 한두 그루 있지만, 구례에서 처음으로 작은 불꽃이 팡 터지는 모양을 닮은 독특하고 발랄한 산수유꽃 모양을 발견했다.


지리산 자락을 등지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
팡, 팡, 팡! 작은 불꽃이 터지는 모양이다.


다음 날 방문한 홍쌍리 매화는 가히 예술이다. 꽃과 강인해 보이는 줄기와 가지들이 중첩되어 마을 자체가 추상화였다. 잭슨 폴록(1912~1956)의 어둡고 강렬한 추상화와 대비되는 밝고 몽환적이면서도 강한 이미지다. 흰색, 분홍색, 꽃분홍색, 자주색 붓 터치로 뒤덮인 산 능선은 작품 그 자체이다. 한 사람의 집념이 이토록 아름다움을 창조한 것이다. 학부 때 한국화 수업을 한 학기 들으면서 매화를 그려본 적은 있었지만, 선조들의 매화 그림을 보면서 한 번도 매화도에 매력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관심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보면 매화는 그냥 상상 속의 꽃 취급을 해버린 것 같다.


잭슨 폴록의 추상화가 생각났던 풍경


매화를 자세히 본 적은 홍쌍리 매화가 처음이었다. 보는 순간 그냥 반했다. 거칠고 옹이 진 굵은 줄기는 옹골지고 자유로웠다. 어두운 색 가지는 스스로 가고자 하는 곳으로 거침없이 뻗어 있었다. 가는 가지에 가볍게 흔들리듯 매달려 있는 꽃송이들은 이른 봄을 즐기는 것인가, 발랄하다. 그래서 매화 그림은 꽃과 줄기와 가지가 같이 있어야 어울리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꽃은 조연일 뿐, 짙다 못해 검은 줄기와 가지에서 내뿜는 힘찬 에너지는 화가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기운생동’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야 매화를 즐겨 그렸던 추사의 제자이면서 그와 쌍벽을 이뤘던 조선 후기 화가 ‘조희룡(1789~1866)’의 그림에서 용처럼 꿈틀거리고, 바위처럼 거칠게 그려진 매화 줄기는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그가 왜 매화에 평생 집착했는지, “좋은 종이와 먹이 있으면 가장 먼저 매화가 생각났다.”는 그의 매화에 얽힌 일화가 이해가 되었다.


조희룡 홍매화.jpg 조희룡의 홍매화
마음 가는 대로 흐드러진
제멋대로 살아있는 매화에 반했다.


이른 아침, 밥도 먹지 않고 숙소에서 나왔건만 한나절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넋이 나갈 정도로 황홀한 매화 삼매경을 즐겼다. 나오는 길, 평일임에도 10킬로미터 이상 줄지어 서 있는 매화 마을로 들어가는 차량들을 보면서 “어메, 뿌듯한 것!”, 흐뭇한 마음으로 마을을 빠져나왔다. 전날 와서 가까운 곳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들어오는 이들보다 하루를 더 투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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