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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Jun 07. 2023

호숫가의 수초처럼 마음을 흔드는

# 리투아니아 - Klaipeda와 Curonian Spit, Nida


클라이페다 Klaipeda는 발트인이 만든 도시이다. 1252년 이곳을 점령한 튜턴 기사단(독일 기사단)Memelburg라고 불렀다. 발트해에 면한 도시는 수백 년간 권력의 이동을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지금은 인구 약 15만 명으로 리투아니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리투아니아 유일한 항구도시 클라이페다 앞바다에는 ‘액화천연가스(LNG) 기지’라고 부르는 대형 선박이 정박하고 있다. 2015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해상 LNG 기지’는 2014년 대한민국의 현대중공업이 건조했다.   

   

리투아니아는 구(舊) 소련 연방 국가였다가 1990년 독립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에너지를 무기 삼아 구 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나라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천연가스는 서유럽에 보내는 에너지의 2배에 가까운 가격을 책정했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에너지 공급을 차단시켜 교통과 전기 등 기반시설이 마비되는 일이 거듭됐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의 바람대로 친러 노선을 걸을 수는 없었다. LNG 선박을 제조하는 5년 동안 러시아는 줄곧 조롱 섞인 사설을 실었으며 국내에서조차 거대한 프로젝트를 믿지 못하는 의견이 분분했다.


리투아니아는 에너지 독립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LNG 선박 이름을 인디펜던스호라고 붙였다. 인디펜던스호는 러시아를 제외한 세계 각국에서 수입한 천연가스를 액화시켜 저장하고 필요할 때 천연가스로 바꿔 파이프라인을 통해 육지로 보낸다. 2022년,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발발하면서 러시아 천연가스의 수입이 중단되었다. 그러자 인디펜던스호는 더욱 바빠졌다. 현재는 리투아니아 기업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의 기업까지 돈을 지불하고 LNG 터미널을 빌려 사용한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길어지면서 클라이페다의 중요성은 더욱 확고해졌다.   

  

Klaipeda 역이 보이는 거리


2022년 7월 2일 자 중앙일보에 리투아니아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리투아니아 Lithuania는 한반도의 30퍼센트에 불과한 작은 나라입니다. 이렇게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가 최근 러시아와 연일 충돌하며 국제 뉴스의 중심에 섰습니다.’     

‘리투아니아는 지난달 17일 러시아 본토와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를 연결하는 유일한 육로를 봉쇄해 러시아를 격분케 했는데요. 러시아 본토에서 출발해 벨라루스~리투아니아를 거쳐, 칼리닌그라드로 이동하는 철로를, 중간 거점인 리투아니아가 막아버린 겁니다. "유럽연합(EU)이 제재한 품목이 선적된 열차를 통과시킬 수 없다"는 게 리투아니아의 설명이었죠.’      

‘러시아는 "국제법 위반" "전례 없는 적대 행위"라고 강력히 항의하며 "화물 운송을 복원하지 않으면 행동을 취할 것"이라며 엄포를 놨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무차별 침공한 세계 2위 군사 대국, 국토 면적 260배에 인구는 50배나 되는 러시아의 위협에, 리투아니아는 눈하나 깜짝 않습니다. 오히려 운송 제한 조치를 차량 화물로 확대한다고 나섰죠. "EU 회원국으로서 제재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뿐"이라고 차분한 반응만 보이면서요.’     

이처럼 리투아니아가 러시아의 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으면 러시아는 물류를 육로로는 칼리닌그라드로 보낼 수가 없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길어지면서 가끔 뉴스에 등장하는 리투아니아의 당당한 행보는 앞을 내다보고 준비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발트해의 목걸이, 쿠로니아 사주 Curonian Spit    

  

클라이페다에 온 이유는 쿠로니아 모래톱 Curonian Spit을 보기 위해서였다. Spit은 기원전 3,000년 경 빙하에 실려 온 빙퇴석 위에 모래가 쌓여 만들어졌다. 기묘할 정도로 가늘고 긴 98킬로미터에 달하는 쿠로니아 사주는 남쪽 삼비아 반도의 칼리닌그라드클라이페다 사이 발트해에 목걸이처럼 걸려있다. 클라이페다와 쿠로니아 사주 사이에는 쿠로니아 석호 Curonian Lagoon가 있다. 리투아니아의 클라이페다에서 약 5분 페리를 타고 쿠로니아 호수를 건너면 네링가 Neringa 시(=쿠로니아 사주)다. Neringa 시의 이름은 발트 신화에 나오는 힘이 센 거인 소녀 Neringa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사주(네링가 시)의 중심 마을 니다까지는 약 52킬로미터에 달하며 나머지 칼리닌그라드에 속한 남쪽 46킬로미터는 칼리닌그라드에서 도보로 접근이 가능하다.   

       


     

클라이페다 버스 터미널에서 니다행 버스를 타면 버스는 클라이페다항구를 향한다. 항구에서 주춤할 사이도 없이 버스에 탄 채로 페리를 타고 5분도 안돼 호수를 건너 쿠로니아 모래톱으로 왔다. 첫 마을 스밀티네 Smiltynė 항구에 잠시 멈춘 버스는 마을마다 사람들을 내려놓고  종착역 Nida까지 약 52킬로미터를 달린다. 왼쪽으로 보이는 것은 쿠로니안 라군(석호)이며 오른쪽은 발트해다. 마치 대한민국의 새만금 방조제(군산에서 부안까지 이어진 새만금 방조제-33.9킬로미터-의 왼쪽은 새만금(호수)이며 오른쪽은 서해바다이다.)를 달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다만 새만금방조제는 양쪽이 시원한 망망대해이다. 모래 땅과 울창한 숲, 띄엄띄엄 앉아있는 예쁜 목조 주택들을 구경하며 니다에 도착했다. 니다는 네링가 시의 중심마을이다. 이른 아침 8시경 너무 일찍 니다에 도착한 탓으로 인포메이션 센터는 닫혀있다. 오리들은 호숫가에서 아침 단장을 하고 부지런한 아저씨는 낚싯대를 드리운다. 옆에서 잡은 물고기를 보려고 기웃거리니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번 해보라며 여분의 낚싯대를 건넨다. 남편은 추억을 낚아 올리듯 쿠로니아 호수에서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았다. 하루종일 니다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집 앞이거나 잔교, 혹은 둑 위에서 낚시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았다. 수초가 우거진 호수에는 물고기가 많아 보였다.


호숫가/할아버지가 잡은  물고기


 Nida         

예상대로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연 레스토랑은 없다. 준비해 온 간식으로 호숫가 벤치에 앉아서 아침을 때우려고 하니 언제 왔는지 귀여운 오리들이 왝왝~ 거리며 벤치를 둘러싼다. 갈매기들까지 합세했다. 빵 조각이라도 던져 주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았다. 새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몇 나라를 제외하고 대부분 위반 사항에 속한다. 우리가 아침 식탁을 잘못 차린 것이다. 오리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지 않아 입맛을 느낄 시간도 없이 꾸역꾸역 얼른 먹고 일어났다. “미안해, 얘들아” 오리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흩어져 가버린다. 옷을 털어내면서 배낭을 메고 네댓 발자국을 걸었을까, 호숫가의 팻말이 눈에 띄었다. ‘새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위반 시에는 50유로의 벌금이 있습니다.’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잠깐 동안 숨을 멈추었다. “우하하하, 우리 돈 벌었잖아!” 50유로의 팻말은 그때부터 두 사람의 발걸음에 기분 좋은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날은 하루종일 뭘 해도 즐거웠다.      

호숫가를 따라 Parnidis 언덕으로 향하는 길에는 방풍림으로 조성한 키가 큰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라군 옆으로는 흰색모래를 덮은 회색 모래의 색깔이 뚜렷하다.  


Parnidis 언덕으로 향하는 길의 소나무 숲
미안했던 오리들과 호숫가

       

16세기경 이곳의 울창한 숲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어느 날 빽빽한 숲의 나무들이 하나둘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마을을 감쌌던 숲에서 자란 곧은 나무는 인근의 도시로 팔려나갔으며, 배를 만들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배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나무는 이주해 온 독일 상인들의 집을 지었다. 어느 해 둘러싼 나무가 사라진 마을에는 서풍을 타고 그레이트 듄 Great Dune의 회색 모래가 쌓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한 집 두 집 쓰러지기 시작하더니 모래는 마을을 삼켰다. 주민들은 지금의 니다로 주거지를 옮겼다. 서풍이 운반한 모래는 움직이는 하얀 고운 모래를 덮기 시작했다. 어느새 모래언덕 하나가 마을이 있던 자리에 생겼다. 사람들은 니다를 덮은 모래언덕을 Parnidis라고 불렀다. 사구의 이름 ‘Parnidis’는 ‘Nida를 건너다(덮다)’라는 의미이다. 인간의 탐욕으로 황폐화됐던 쿠로니안 사주는 19세기부터 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했다. 200년 가까운 인간의 노력으로 원래의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었다. 현재의 쿠로니아 사주는 모래와 숲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만큼 숲이 많다. 인간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자연을 회복한 파르니디스 사구 Parnidis dune를 비롯한 쿠로니아 사주를 유네스코는 2,000년에 자연유산이 아닌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파르니디스 언덕 정상에 설치한 해시계 달력

길이 1.7킬로미터, 높이 52미터인  Parnidis 모래언덕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에는 1995년 세운 해시계 달력이 있다. 낮은 계단을 이용하여 시간과 날짜를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현장실습을 나온 학생들이 해시계 달력의 원리를 살피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을 보면 그 나라의 현재와 미래가 보인다. 광장의 중앙에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국경이다. 칼리닌그라드 Kaliningrad는 러시아의 본토 밖 고립영토 exclave이다. 원래 독일기사단과 동프러시아 땅이었던 칼리닌그라드는 나치 독일이 패전한 후 포츠담 회담(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에서 소련의 영토로 인정받았다. 현재는 러시아의 부동항으로, 중요한 발트함대 사령부가 있다. 발트 3국이 독립한 후 칼리닌그라드는 북쪽과 동쪽은 리투아니아, 남쪽은 폴란드, 서쪽은 발트해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칼리닌그라드는 칸트 Immanuel Kant(1724~1804)의 도시로 알려진 쾨니스베르그 Königsberg다. 그가 살았던 국가는 독일이 처음 통일(1871)하기 전의 동프러시아였다.   

   

반대편 언덕으로 내려오는 길, 간이 카페의 커피값이 한국의 커피값과 비슷하다. 돌아 나오는 길은 산책하기 좋은 숲길이 길게 연결이 되어있다. 네링가 시의 전체를 보여주는 지도가 멋지다.  

오른쪽의 클라이페다와 왼쪽 끝의 니다(빨간색 동그라미)


마을에 리조트가 많으니 주민들보다 방문객들을 더 많이 만났다. 길을 걷다가 “어디에서 왔어요?” 하면서 서로 물어보는 격이다. 한두 달씩 머물다 가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세미나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화가들도 만날 수 있었다. 호숫가에서 그들이 그린 그림을 감상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국에서 참가한 분도 있어 깜짝 놀라며 서로 반가워했다. 니다까지 와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가 기념촬영까지 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니다는 글로벌하다.   

   

쿠로니아 사주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을 꼽으라면 파르니디스 사구와 이백 년 가까이 조성한 숲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자연과 사람이 힘을 합쳐 공존한 증거이다. 하나를 더 들자면 호수변을 따라 들어앉은 목조주택들이다. 니다의 주택은 쿠로니아 전통주택 양식을 따라 지은 집들이 많다. 주택에 사용한 색은 일부분 통일이 되어 있다. 갈색 을 상징하며 주로 집의 벽체에 갈색이 칠해져 있다. 파란색은 하늘과 호수, 바다이며 흰색은 구름과 안개를 나타낸다. 간혹 박공 위의 지붕 끝에 두 마리의 말머리가 교차하는 장식을 한 집도 있다. 말머리는 ‘zirgs’라고 부르는데 신성을 나타내는 문양이다. 주택에 적용한 문양과 색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전통신앙에 뿌리를 둔 상징들이다.

     

호숫가의 주택들
토마스만 Thomas Mann 기념관, 지붕 끝 두마리의 말머리 ‘zirgs’가 교차되어 있다.

      

토마스만 Thomas Mann의 집은 네링가의 전통적인 주택의 모습을 따르고 있다. 토마스 만은 1929년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로 20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소설가이다. 1930~1932년 여름 그의 가족은 니다에 쿠로니아식 여름 별장을 지었다.(당시는 리투아니아 령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서사시 소설 '요셉과 그의 형제들'의 일부를 집필했다. 그의 작품에는 <마의 산>,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등이 있다. 관심 밖의 작가였는데, 그가 거주했던 집을 보고 나니 그의 작품에 관심이 생긴다.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루키노 스콘티 감독의 1971년 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영화공부를 할 때 두세 번 봤던 작품이다. 베네치아가 무대이며 영화는 시종일관 죽음과 아름다움이 교차한다. 영화에 미소년으로 출연한 비에른 요한 안드레센 Björn Johan Andrésen(1955~ )의 미모가 빛을 발했던 영화이다.  

             



독특한 지형인 쿠로니아 사주를 확인하고 싶어 이른 아침부터 쿠로니안 라군(호수)을 건너왔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바다가 아닌 호수를 향해있다. 오리와 물새는 물론 사람도 호숫가 옆에 집을 짓고 산다. 서쪽 바람을 타고 넘어오는 모래까지 호수를 간절히 원 하는 것 같다. 보이는 것과 달리 쿠로니안 라군은 쿠로니아 사주를 품어주는 어머니다. 쿠로니아 사주 Curonian Spit를 보러 왔다가 쿠로니아 호수 Curonian Lagoon옆에서 하루를 보냈다. Nida는 호숫가의 수초처럼 소리 없이 마음을 흔드는 곳이다.


Curonian La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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