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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Nov 28. 2023

피통 드 라 푸르네즈

#  레위니옹 Réunion  3

활화산, Piton de la Fournaise


인도양의 하루는 오전 8시부터 시작한다. 호텔 로비에서 투어 가이드 프레드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전 8시, 프레드는 7시 50분에야 sns로 트래픽잼으로 조금 늦는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약속시간보다 30분은 늦게 나타난 그는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지 운전하면서도 질문할 틈도 주지 않고 횡설수설이다. 30분 늦은 것에 대해서 항의를 할까 봐 지나치게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을 걸려다 말고 어이가 없어 아예 앞만 보고 있었다. 눈치를 보더니 그제야 넌지시 가이드다운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 얼마나 되냐”


“한국에는 레위니옹보다 조금 작은 아름다운 섬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산이 가장 높다. 2000미터가 조금 안된다”

라고 하니 마치 ‘그러면 그렇지, 대한민국의 화산과 레위니옹의 웅장한 산세를 비교할 수도 없지’ 라고 하는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턱을 내밀며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프레드의 으스대는 표정을 보니 그는 분명히 레위니옹 출신이었다.


 "레위니옹에서 태어났니?"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바로 레위니옹으로 왔냐고 묻는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왔다고 했더니, 순간 놀라더니 되묻는다.

 “마다가스카르요?”

그리고는 이내 아련한 듯 긍정의 표정이 섞인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뀐다.


그에게 마다가스카르에 가 봤냐고 묻지 않았다.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하는 도중에 독일과 프랑스, 이스라엘 사람을 만났지만 레위니옹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었다. 레위니옹에서 마다가스카르는 돌다리 하나만 뛰어넘을 정도로 가깝지만 생각보다 오고가는 길은 간단하지 않다. 직항이 없어 모리셔스를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인도계와 중국계가 아닌 이상 그는 말라가시인(마다가스카르 사람)의 피가 섞여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마다가스카르인들은 인도양의 섬을 비롯해 카리브해와 브라질까지 제국의 플랜테이션 농장의 노예로 많은 인구가 팔려나갔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예전의 노예와 별반 다른 것이 없는 값싼 노동자로 이주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마다가스카르와 가까운 레위니옹은 동부 아프리카인들과 마다가스카르인들로 일손이 많은 부분 채워졌다. 그러면서 대뜸 크리올 전통음식을 먹어봤냐며 묻는다. 아직 못 먹었다고 했더니 잘하는 레스토랑을 알려주겠단다.  

    

Belvédère de Bois Court


능숙하지 않은 가이드 프레드는 어설프고 불안했다. 그러면 어떠랴 일이야 반복하다 보면 느는 것을. 가이드로서의 기대는 이미 단념했다. 토박이여서인지 드라이버의 역할은 그럭저럭 해 주었다. 피통 드라 푸르네즈 화산은 레위니옹 남동부에 위치하며 섬 전체의 약 1/3을 차지한다. 그래서 남쪽에 있는 도시 생 피에르에서 접근하는 것이 빠르다.      


프레드의 차는 생 피에르 해안에 위치한 호텔에서 출발하자마자 곧바로 오르막이다. 한참을 올라가도 마을과 밭 풍경은 계속 이어진다. Le Tampon 마을을 뒤로하고 조금 오르니 출발 한 시간 만에 해발고도가 약 1400m인 Belvédère de Bois Court 에 도착했다. Belvédère가 전망대를 의미하니 Bois Court 전망대인 셈이다. 이곳에는 화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위한 주차장과 화장실 등이 있다. 빠르게 올라와서 현기증이 느껴진다면 고도적응을 하기 위해 안내문을 보면서 이곳에서 여유 있게 쉬어가는 것이 좋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전형적인 레위니옹의 다이내믹한 풍경을 접했다. 아래 계곡 옆에는 Grand Bassin이 있으며 계곡 왼쪽으로는 실라오스 마을이 멀리 보인다. 그러나 레위니옹이 처음인 내게 알려준다고 보이겠는가, 그곳에 있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검푸른 봉우리와 계곡만으로도 놀라운 풍경이다. 계곡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가 오면 강이 되는 마른 강바닥이 보이며 조금만 눈을 돌리면 보석처럼 주택의 지붕이 옹기종기 앉아있다.  

   

이곳이 Waterfall로 유명한 Grand Bassin 계곡 트레킹을 하는 출발점이라고 쓰여있다. 트레킹을 안내하는 표시만 있어도 숲길을 따라 걷고 싶은 마음이 불쑥 동한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레위니옹에서의 4일간의 짧은 일정을 후회했다. 레위니옹은 트레킹의 천국이다. 믿을 수 없는 험한 지형이지만 4백 년 가까이 노예들이 숨어들었던 길목이 이제는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살아가는 마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두 번의 트레킹을 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있어야 했다.


Commerson 크레이터


전망대에서 30여분을 오르면 2310미터라고 쓰여있는 커머슨 크레이터를 만난다. 약 2000년 전 폭발한 분화구가 있는 커머슨의 넓은 주둥이는 235미터의 깊이로 인하여 신화 속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해마다 열대성 폭풍인 사이클론이 비바람을 몰아오는 1월과 2월이 되면 이곳에 엄청난 양의 강수량을 쏟아붓는다고 한다. 단일 위치에서 열대 저기압에 의해 떨어진 가장 많은 강우량과 두 번째의 강우량이 이곳에서 발생했다. 먹구름을 휘감은, 물이 찰랑이는 커머슨 호수를 상상해 본다. 커머슨은 푸르네즈 화산에 속하지만 주 분화구인 돌로미에우 분화구가 있는 칼데라의 외부에 위치해 있다. 커머슨 크레이터의 이름은 프랑스 탐험가 필리베르 커머슨 Philibert Commerso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웅장한 커머슨 크레이터는 칼데라이다. 화산은 화도가 연결된 구멍에서 용암이 폭발하면 분화구가 생긴다. 땅 속 마그마가 위로 올라와서 폭발한 상태이므로 땅 아래는 비어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각층이 땅 아래의 비어있는 공간으로 주저앉아 수직 절벽의 둥근 냄비와 같은 모양으로 함몰된다. 이런 화산 지형을 칼데라 caldera라고 한다. 그러므로 칼데라는 분화구보다 훨씬 크다. 이미 형성된 칼데라에서 다른 폭발이 일어나 분화구가 생기기도 한다. 칼데라에 물이 고이면 호수가 되는데, 예를 들면 백두산에 있는 천지는 칼데라호수이다. 반면에 한라산 백록담은 분화구호수이다. 물이 말라있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푸르네즈에는 크레이터가 한두 개가 아니지만 아름다운 황무지가 펼쳐지는 렝파르 평원과 연결된 커머슨 크레이터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렝파르Remparts 평원(해발고도 2340미터)에서는 종류는 다양하지 않지만 이곳에서만 자라는 화산의 키 작은 식물들을 관찰할 수가 있다. 황무지 같지만 비옥한 화산지대인 이곳은 그야말로 렝파르 정원이다. 이들은 비와 바람 더위와 추위, 가뭄 등의 혹독한 기후에 적응한 식물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파리가 작고 잔털이 많다. 이파리가 작은 것은 수분을 보존하기 위해서이고 미세한 잔털은 작은 습도라도 흡수하기 위해서이다.  

렝파르Remparts 평원에서 만난 꽃이다. 감자꽃을 닮았다.

     

커머슨 칼데라에서 푸르네즈 화산 크레이터로 가려면 화성이 연상될 만큼 붉은 사막을 지나야 한다. 사블레 평원 Pleine des Sables이다. 이곳에서는 차들이 속도를 줄인다. 레위니옹에서 드문 오프로드이다.  

 

Pas de Bellecombe   


푸르네즈 Fournaise는 용광로를 뜻한다. 그러므로 Pas de Bellecombe은 용광로의 가장 깊은 곳으로 가는 길이다. 르네즈 화산(해발고도 2,632미터) 입구에서 칼데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Pas de Bellecombe 1768년 노예 야곱이 발견했다.(당시 인구의 대부분은 노예였다) 길 이름은 당시 레위니옹 총독인 Bellecombe의 이름을 따서 Pas de Bellecombe이라고 명명했다. 이 길을 따라 들어가면 피통 드 라 푸르네즈의 목적지인 돌로미에우Dolomieu 분화구까지 갈 수 있다. 푸르네즈는 이름 그대로 용암이 언제 끓어오를지 모르는 활화산이다. 그러므로 안내판에는 조심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고도가 높아서 더욱 변화무쌍한 기후로 인해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복장만 갖춘다면 트레킹의 난도는 높지 않다. 트레킹이 생활화된 한국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푸르네즈 분화구 가는 경로(주황색 길)


주차장에서 분화구 입구까지는 약 20여분 소요된다. 입구에는 수직으로 내려가는 절벽에 지그재그로 임도를 만들어놨다. 수직절벽은 화구의 절벽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칼데라의 절벽이다. 엔클로 푸케 Enclos Fouqué 칼데라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분화구들을 볼 수 있다. 수직절벽을 내려가서 처음 만나는 것은 끓어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 암석이 된 길이다. 용암이 볼륨감 있는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린 자국은 경이로 뿐만 아니라 아름다웠다. 그 위에 푸른색 식물들이 터를 잡았다. 푸르네즈는 순상화산이어서 용암도 천천히 흘러내렸을 것이다.

그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작은 동산처럼 보이는 붉은색 기생화산 분화구인 포미카 레오가 있다. 작은 화산이 마치 개미집을 연상시켜서였을까. 포미카 레오 Formica Leo(포미카는 개미라는 뜻)라고 이름을 붙였다. 보리 분화구와 돌로미에우 분화구까지 가는 길은 흰색으로 칠한 돌을 따라가면 된다. 그러나 포미카 레오를 본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가이드 프레드와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은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임도로 내려가면서 찍었다. 최근에 용암이 흐른 자국이 포미카레오 뒤로 보인다.
칼데라 안이다. 뒤에 보이는 것은 포미카 레오, 사람들이 용암이 굳은 바위위를 걷고 있다.
포미카 레오(기생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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