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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문장이 묵묵히 남는다.
“반투명한 날개처럼 파닥이는 불꽃의 가장자리를 나는 묵묵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문장에 다다르자, 아프고 저릿한 꿈이 끝난 것처럼 안도했다. 책을 덮은 시각은 새벽 1시 13분.
나는 정형외과 병실에 누워 있었다. 6개월 전 발등을 가르고 들어가 발가락 1번에서 3번을 가로지르며 뼈를 관통하는 여섯 개의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진통제를 손목으로 흘려넣으며 회복 중이다. 병원에선 저녁이 이르다. 오후 5시도 되기 전에 저녁 식판을 받는다. 주어진 양의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보충하는 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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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병실에서 웬만큼 궁금한 동영상들을 훑어보고(영화 《전,란》을 봤다), 내 폰에 있던 모든 SNS와 OTT 앱을, 동영상이 흘러나올 법한 앱을 모두 삭제했다. 애플 뮤직에서 빌리 아일리시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그러고나서야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기 시작했다.
가끔씩 일상과 관련된, 전란이나 항쟁에 비하면 사소하지만 복잡한 마음이 들게 하는 일들이 떠올랐지만, 금세 다시 서너 문단을 되돌아가 되짚어 읽으며 심상을 연결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문장이 심상에 달라붙어 나의 공감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빌리 아일리시의 수많은 노래들이 지나가고, 알 수 없는 가수들의 음악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았을 때, 사샤 슬론의 노래들을 찾아서 플레이 했다. 그 다음엔 라나 델 레이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책이 끝날 때까지 음악에 대해서는 더이상 관심을 되돌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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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6월, 도청의 분수대는 눈부신 물줄기를 뿜었다. 여자는 공중전화를 찾아 114를 누르고 도청 민원실을 연결했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그 분수대는 5월만 하더라도 가두 시위 함성과 박수로 가득하던 공간이었고, 스물 여덟 개의 관이 나란히 놓였다 다시 옮겨지던 장소였다. 하지만 “그만 전화해요, 학생. 학생 같은데 맞지요.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라고 말하는 도청 공무원이 있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라고 하는.
작품에 등장 하는 연극에서, 검열을 받은 이후로 여자가 말할 수 없었던 대사,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는 특히 아팠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도 떠나지 못한다.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산다. 광주에 살다 간 사람들에게서 빠져 나온 혼이 아직도 산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혼은 몸이 없으므로 눈도 손도 없지만, 날개처럼 파닥일 순 있을 지도 모른다. 반투명한 날개를 가진 어린 새처럼. 관 머리맡에 놓인 환타 유리병에 꽂힌 양초의 불꽃 가장자리 정도는 흔들릴 수 있을까. 새의 날개짓으로.
다시 마지막 문장에 이른다.
“반투명한 날개처럼 파닥이는 불꽃의 가장자리를 나는 묵묵히 들여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