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돌고래의 현실 프로젝트
앞서 말한 것처럼 이 프로젝트는 공동 개발이다. 한국에서 기획과 프로그래밍을 메인으로 진행하며 일본에서 그래픽을 포함한 리소스를 주로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래픽 인력이 있고 일본에도 서버와 프로그램 인력이 있긴 하다.) 페이스북 메신저 및 슬랙, 텔레그램 등을 통해 일본 PM과 소통했다. 실력이 매우 뛰어나고 인성도 좋은 분이셨다. 몇 번은 직접 한국에 들어와서 접대를 하기도 했다. 깔끔하게 고깃집에서 식사를 하셨고 매너도 좋았다. 종종 일본에서 기술 미팅을 요청하기도 했다. 서버와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들이 우리 사무실로 왔는데, 일본어를 적당히 할 줄 알면서 프로그램 용어까지 이해가 가능한 것은 나의 큰 장점이었다. 회의 중 커뮤니케이터가 있기는 했지만, 기술 용어에 약했기 때문에 내가 쓸모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제작 발표회를 준비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갈 수 없었다. 형사 재판의 피의자였고 출국 금지로 여권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바퀴벌레 재판) 회사에서 법원에 출장 증명을 해주었고, 덕분에 임시 여권을 발급받았다. 정해진 날만 다녀올 수 있고 일본에서의 동선을 보고하는 조건이었다. 살짝 불편하기는 했지만 일본 회사에 방문해서 회의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들떴다. 회사 1층은 캐릭터 상품으로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약속된 승리의 검! 오오! 일본 회사에서의 회의를 마친 뒤 일본 개발자 분들과 회식을 했다. 역시 다들 오타쿠였다. 다음날은 제작 발표회에 참가했다. 우리 대표님이 일본어로 더듬더듬 회사 소개를 했다. 하이라이트는 주연 성우 발표였다. 우리가 만든 캐릭터 목소리를 러브 라이브 성우가 맡는다고? 모두가 성덕이었다. 아, 물론 나는 러브 라이브보다 아이돌 마스터를 좋아하긴 한다.
출장 중 하루는 동생을 만났다. 나를 위해 미리 예약해 둔 후지코 F 후지오 박물관에 함께 다녀왔다. 일본에서 사는 집도 둘러봤다. 결혼식 후 처음 가보는 집이었다. (빈 둥지 증후군)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 진지하게 할 말이 있어. 2심 선고일이 멀지 않았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만약의 경우, 어머니를 부탁해. 월세는 이 정도고 생활비는 이 정도 드리고 있어. 꼭 여기에 맞출 필요는 없으니 잘 상의해 봐. 일본으로 모시고 와도 좋고. 또 다른 날은 프릴 양을 만났다. N사를 다닐 때 친해진 여동생인데, 이후 일본에 건너와서 게임 계열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녀가 말했다. 오빠도 일본으로 오는 건 어때? 낮에 본 일본 회사, 안정적으로 보이는 프릴이, 그리고 동생이 떠올랐다. 만약 그때 화성 공장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나도 여기에 머물고 있지 않을까? (그 회사는 오사카이긴 하지만...) (멈춰버린 게임 라이프) 하지만 아직 재판도 남아있었고 무엇보다 새로운 동료들과 마무리 짓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었다. 여러 복잡한 마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표님과 이사님은 사업과 마케팅 출신이었다. 그러다 보니 방향성 면에서 자주 충돌했다. 나는 재미있는 게임부터 만들어 놓고 과하지 않은 수준의 BM을 붙이고 싶었다. 과금이 부담스럽지 않은 대신 많은 사람이 즐기는 방향이 목표였다.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게임은 그렇게 가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반면 임원진은 고래 과금러가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강력한 BM을 원했다. 일본 PM도 나의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었고 봄 AD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에나 있는 사업팀 vs 개발팀의 논쟁이다. 하지만, 매번 결론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른 방향이었다. 여기에는 여러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는데, 무엇보다 우리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정한 게임의 콘셉트가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방향성이 바뀔 때마다 윗 분들 핑계를 댈 수는 없다. 리더가 사람들 앞에서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내가 생각이 달라져서 방향을 바꿔야겠다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뒤에서 욕은 하겠지만, 디렉터는 욕먹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아마 방향성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게임은 진작 나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개발 기간이 길어지며 문제가 생겼다.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인 일본 회사는 규모가 작은 곳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사내 정치가 개입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내 정치를 너무너무 싫어한다.) 나와 봄 AD, 그리고 우리 임원진 모두가 믿고 있던 실력 좋은 개발 PM이 교체되었다. 새로운 본부장이 내려온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음 단계는 뻔하다. 선임자의 프로젝트 중 자신의 성과가 될 수 있는 것은 빼앗고 그렇지 않다면 홀드나 드롭을 선언할 것이다. 새로운 본부장은 우리 개발팀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당연히 이번에도 접대를 나갔다. 이전 개발 PM처럼 깔끔한 식사 접대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매우 싫어하는 스타일의 접대를 해야만 했다.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일본인들의 비즈니스 이미지는 깔끔하고 좋았다. 생각과 크게 다른 경우도 있음을 알게 된 날이었다.
2심의 선고일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면담을 신청하지는 않았다. 그냥 조용히 예약 메일을 준비하고 인수인계를 정리했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이 프로젝트만은 살릴 수 있기를. 새로운 불안 요소가 나타나긴 했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우리 개발팀은 열심히 만들기만 하면 된다. 대표님과 이사님이, 사업과 영업 쪽에서 길을 만들어줄 것이다. 비장한 마음으로 선고를 받았다. 이번에도 유죄였다. 항소하실 건가요? 변호사님이 물었다. 나에게 유리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만하고 싶기도 했고 회사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2심을 마치고 돌아오자 또다시 두부 파티가 시작되었다. 지겹고 물리지만 마음만은 너무 고마운.
이사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새로운 업무 지시가 떨어졌다. 그동안 일본 회사와 나눈 모든 의사소통을 점검하며 자료 정리를 했다. 내가 잘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지난 4년간 해온 일이니까. 무슨 일이냐고? 이번 공동 프로젝트는 서로의 비용이 들어갔기에 리소스에 대한 저작권이나 소유권, 사용권 등을 전부 정리해야 했다. 혹시 모를 프로젝트 드롭 시 소송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한 재판과 원활한 처리를 위해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아직 봄 AD나 대표한테도 말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익숙한 일이니 맡겨 주십시오. 이 순간을 위해 제가 4년간 재판에 끌려 다녔나 봅니다.
그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게임의 방향성은 몇 번이고 변해야 했고 여기에는 새로운 본부장의 취향이 다수 반영되어 있었다. 자칫 반발했다가 드롭되는 것보다는 따르며 프로젝트 완수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에서 수 없는 철야가 있었고 끝없는 크런치가 이어졌다. N사에서 허들을 하던 것처럼 계속 일본 회사에 보여줘야 하는 것들이 늘었다. 모두가 알았다. 지금의 프로젝트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고 PD인 나의 판단도 아님을. 방향성이 희미해지며 휘둘리는 순간 사람들은 의욕이 꺾이며 지치게 된다. 이제야 깨달았다. 왜 이사님이 나에게 계속 독재하는 디렉팅을 하라고 했는지. 만약 처음부터 독재자였다면 이런 상황에 사람들의 텐션이 떨어질 일도 없었겠지. 나의 디렉팅은 위기에 약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연되는 사이, 우리의 기술력은 평범한 것으로 전락했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때로는 더 뛰어난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게임들이 여기저기 출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지금 당장이라도 출시해야 했다. 하지만 출시를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멋지고 화려한 게임들이 많아졌다. 유저들에게 특별함을 각인시키려면 또 다른 방향성의 전환이 필요했다. 하지만 개발 초기의 자유롭고 빠른 판단은 불가능 해진 상태였다.
어느 날, 게임의 다음 방향성을 브리핑하는 전체 회의 자리. 이사님은 갑자기 사람들에게 질문했다. 이 디렉터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마이즈가 계속 우리 프로젝트를 끌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나? 당황하는 가운데, 가장 믿고 있던 기획 팀원 하나가 말했다. 배울 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실무에서 손을 뗀 탓이었다. 여기에 이어서 모두 욕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내가 디렉터이기를 바란다고 말해주었다. 분위기가 애매해져서인지 이사님이 우리 어머니에 대해 안 좋은 말씀을 하셨다. 갑자기 왜 그런 걸까? 질문도 뜬금없었고 어머니를 탓하는 것도 이상했다. 점심시간 내내 옥상에서 혼자 고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그런 의미였던 건가? 디렉터는 책임지는 자리이다. 스스로 책임지지 못한다면 가장 불명예스러운 형태로 끌어 내려져야 한다. 공동 개발 중인 일본 회사에서는 개발 PM이 책임을 졌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날,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사님과 면담을 했다. 그리고 퇴사 준비를 시작했다. 인수인계 준비는 이미 몇 번이고 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여전히 나에게 ‘매직 돌핀’은 최고의 게임 회사 중 하나로 남아있다. 너무 멋진 추억을 주었고 사람들 하나하나 모두 좋았다. 직원을 진심으로 위하는 임원들과 서로를 신뢰하는 동료들. 이들과 함께 하는 야근과 철야도 행복했다. 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솔깃한 제안을 수 없이 받았다. 원래 몸 값의 30% 비용으로 쓸 수 있는 디렉터. N사 출신이며 사업 경험도 있는 제너럴 리스트. 야근과 철야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게임이라면 뭐든 반기는 직원. 당연히 좋은 제안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거절하며 이 회사에 머물렀던 것은 내가 꿈꾸는 거의 모든 것이 충족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우리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이 아니었을까? 반면 이사님은 나를 어리게만 보셨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가 신입 때 처음 만난 탓일까? 디렉터인데도 계속 어리게만 느껴지고 신입처럼 보였어."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계속 직원들과 따로 만나서 멘털 관리를 해주었다. 사무실과 집이 가까워서인지 점심시간에 찾아오기도 하고 퇴근 중에 집 앞에 오기도 했다. 더 이상 회사의 구성원은 아니었지만 밖에서 계속 서포트를 했다. 그것이 나의 책임감이었다. 봄 AD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서 출시하려고 했지만, 내가 하던 방파제 역할이 사라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번아웃이 왔다. 봄 AD에게만 맡기는 것은 그에게 너무 큰 희생을 요구하는 셈이었다. 어떻게 안 되겠냐는 말에 결국 다른 지인을 통해 새로운 PD를 추천해 주었다. 그렇게 이 프로젝트는 결국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일본에 출시된 게임을 플레이하며 지난 3년에 걸친 모든 동료들의 노력에 감사했다. 게임 개발은 이렇게 멋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