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처

댄스 댄스 레볼루션

by 마이즈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좋아한다. 그 증거로 친구가 셀 수 없이 많다. 왜 나는 사랑 받는 걸까? 어린 시절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렇게 인기가 많은 사람으로 태어난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모두의 친구가 되어 줄 거야! 그렇게 내 주변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주자! 그 다짐은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지금까지는 쭉 잘해왔다고 믿었다. 2학년이 되며 그 아이가 같은 반이 되기 전까지는.

우리 반에 한 친구가 있다. 수업 시간이 아니면 거의 목소리를 들을 일이 없을 정도로 얌전한 아이다. 친척 어른들 말에 의하면 남자들은 나처럼 시끄러운 아이보다 얌전한 아이를 더 좋아한다고 하던데... 우리 학교가 여자 고등학교라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걸까? 인기가 없는 것을 넘어 아예 친구가 없어 보인다. 그 얌전한 친구는 항상 책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무언가 외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노래 가사일까? 몇 번 말을 걸었지만 무시당했다. 스스로 고립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그 아이를 한 번씩 바라보게 된다. 신경이 쓰인다.

한 번은 얌전한 친구가 쓰레기를 버리러 학교 뒤편으로 가는 것을 발견했다.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자리에서 폴짝 뛰면서 한 바퀴 빙글 도는 것이 아닌가? 뭐지? 내가 방금 본 장면은 얌전한 친구가 절대 하지 않을 몸짓 1위라고 해도 납득할 것이다. 저 애가 이렇게 귀여웠나? 그때부터 얌전한 친구를 몰래 관찰했다. 한 번은 그 애가 입고 있는 교복 치마가 찢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아무도 그 애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기에 둘 만의 비밀이라는 생각에 두근두근 했다.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가정 폭력일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런 거라면 내가 도와줘야 해!

언제나 나의 하굣길은 북적거린다. 함께 귀가하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따라 각자 일이 생겼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이 틈에 얌전한 친구를 따라가 보자. 위험에 처한 거라면 내가 구해줘야 해! 저 아이도 혼자 고립되고 싶지는 않을 텐데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내 딴에는 미행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몸을 숨겼지만, 그런 행동이 의미 없음을 금세 깨달았다. 얌전한 친구는 주변에 관심이 없었다.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이어폰을 꽂은 채 걸었다. 두리번거리는 일 조차 없었다.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뛰어가서 함께 탔다. 혹시 돌아볼까 조마조마했지만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휴대폰에 뭐가 있길래 저렇게 집중하는 걸까?

버스를 내린 뒤에도 한참 걸었다. 논 길을 걷다 보니 수상한 건물이 나왔다. 얌전한 친구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 뭐 하는 곳일까? 문 틈으로 보니 수상한 기계들이 잔뜩 있었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얌전한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들어가 봐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박수 소리가 들렸다. 뭐… 뭐지? 나를 환영한다는 건가? 이런 수상한 곳에서조차? 잔뜩 얼어붙은 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놀라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얌전한 친구가 기계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고 있었다. 쓰레기 분리 수거장에서 본 것처럼 폴짝 뛰면서 턴을 했다. 얌전한 친구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저렇게 빛나는 모습을 하는 아이였구나.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관중들은 대부분 할아버지였다. 얌전한 친구가 큰 몸짓을 할 때마다 박수를 쳤다. 나 따위가 아니었어. 박수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어. 내가 이 공간에 들어오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거야. 진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무대 위에 있으니까. 당혹감과 감탄, 같은 반 친구라는 자랑스러움, 약간의 질투를 느끼며 춤추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복잡한 마음을 들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 황급히 뛰쳐나왔다.

다음 날 학교. 얌전한 친구에게 말을 걸어볼까 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몰려와서 포기했다. 저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모두와 멀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었다. 나보다 더 빛나는 모습을 가진 존재를 숨기고 싶은 걸까? 한 걸음 떨어져서 얌전한 친구를 관찰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빛날 수 있을까? 항상 보고 있는 휴대폰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교복 치마는 왜 찢어진 걸까? 춤을 추다가 어디에 걸린 걸까? 거리를 두고 보니 불편한 모습이 조금씩 눈에 걸리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이 그 아이의 반찬을 빼앗거나 청소를 떠넘기는 모습들이 보였다. 악의적인 괴롭힘은 아니었고 무시하는 것에 가까웠다. 알고 보니 치마를 찢은 것도 친구들이었다. 왜 그동안 이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걸까? 항상 같은 공간에 있었는데 어째서?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는 무시당해도 되는 아이가 아니야.

하교 길에 친구들에게 말했다. 내가 굉장히 핫한 장소를 발견했어! 논 한가운데 멋진 장소가 있더라. 속는 셈 치고 한번 따라와 볼래? 여러 친구가 따라붙었다. 나를 좋아하는 친구들이었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이 아이들에게 얌전한 친구의 빛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나를 떠날지도 몰라. 하지만 그 아이가 무시당하는 것을 계속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건 부당한 일이었다. 동시에 그렇게 멋지게 빛나는 얌전한 친구의 모습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이돌의 팬이 된 기분이랄까? 버스를 타고 한참을 걸어 논 한가운데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역시 시끄러운 음악이 들리고 있었다. 다들 놀라지 마. 그리고 저길 봐.

댄스 댄스 레볼루션. 얌전한 친구는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싼 할아버지 팬들이 박수를 쳤다. 감탄하며 주변 친구들을 둘러봤다. 어때? 저 애 진짜 멋지지? 어? 쟤 우리 반 얌전한 친구 아니야? 그리고는 깔깔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노인네 들이 박수치는 꼴 좀 봐! 평소 이 공간에 들리지 않는 소리였기 때문일까? 할아버지들이 우리를 돌아봤다. 얌전한 친구도 우리를 발견하고 춤을 멈췄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애는 옆에 내려둔 가방을 들고 우리를 지나 뛰쳐나갔다. 주변 친구들은 계속 낄낄 거렸다. 학교에서 씹을 소재가 생겼네! 책상 위에서 춤춰보라고 하자! 그건 아니었다. 정말 이건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말할 용기는 없었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인기 있던 것은 언제나 용기 없이 묻어가기 때문이었을까?


땡그랑


친구들이 한참 셀피를 찍고 돌아간 뒤, 얌전한 친구가 춤을 추던 기계 앞에 섰다. 복잡한 심경으로 화면을 바라보는데 누군가가 동전 하나를 넣었다. 처음 이곳에 온 날, 내 마음을 꿰뚫어 본 듯한 그 소녀였다. 동전을 넣은 뒤 내 눈을 응시했다. 나..? 나보고 하라는 거야?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 위에 올라가면 나도 그 애처럼 빛날 수 있을까? 기계 위에 올라가 발판을 밟았다. 올라오는 화살표를 도저히 맞출 수 없었다. 이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그렇게 까지 할 수 있던 걸까? 순간, 그 애가 매일 쳐다보던 휴대폰 화면이 기억났다. 항상 화면 가득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그걸 외우던 거야? 게임은 첫 번째 곡에서 종료되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소녀가 다가왔다.


“넌 그 애의 유일한 안식처를 빼앗은 거야.”


안식처라고? 그걸 위해서 이렇게 어려운 걸 해낸 거야? 노력한 거야? 그 말을 듣고 보니 기계 위가 독립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어째서 집이 아닌 이곳이 안식처라는 걸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마 얌전한 친구는 이곳에 다신 오지 않을 거야. 다 나 때문이야. 내가 친구들을 여기로 데려왔으니까. 그냥 둘 수는 없어. 내일 학교에 가면 말을 걸어야지.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어. 다른 아이들을 보지 못했던 그 아이의 빛나는 모습을 나만은 알고 있으니까. 내가 새로운 안식처가 되어 줄 거야.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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