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닿는 거리

트윈비

by 마이즈

요즘 우리 할머니가 이상하다. 나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산다. 밤에는 항상 내 옆에 있었는데, 나를 꼭 안고 주무셨는데, 자다가 깨어나 보면 어느새 안 계신다. 하지만 아침이면 어느새 아침밥을 차리고 계시다. 그리고 매일 자기 전에 꼭 고구마를 찐다. 그것도 아침이면 사라지지만. 할머니에게 요괴가 씐 건 아닐까? 걱정된다. 하지만 물어볼 수는 없다. 무섭기도 하지만 얼마 전에 소리를 쳤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아닌 할아버지랑 살고 싶다고 했다. 너무 미안한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휴. 처음부터 너무 칙칙한 이야기만 했지? 이 이야기는 그만두자. 그보다 내가 요즘 정말 좋아하는 장소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madmaiz_child_sitting_up_in_a_dim_room_blanket_half_off_noticin_87231e19-669.png?type=w1

우리 동네에 이상한 가게가 있다. 매일 지나다니던 곳인데, 어느 날 눈에 들어왔다. 처음 그곳을 알았을 때, 들여다보니 할아버지들만 잔뜩 앉아 있었다. 뭐 하는 곳일까? 바둑이나 장기를 두신다면 서로 마주 앉아 있을 텐데, 왜 다들 화면만 보고 계시지? 호기심이 생겼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무서운 장면이 펼쳐졌다. 할아버지들이 막대 사탕을 흔들며 소리를 지르고 흥분하는 것이었다. 왜 저러시지? 평소에 항상 인자하신 분 들인데… 무서워서 도망쳤다. 그 장소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기묘함과 두려움이었다. 그날이 나와 오락실의 첫 만남이었다.

madmaiz_elderly_men_inside_the_old_arcade_waving_colorful_lolli_3209029a-df8.png?type=w1

인터넷을 찾아보고 나서야 그곳이 오래전 사라진 오락실이라는 장소임을 알았다. 할아버지들이 어릴 때 놀던 놀이터 같은 곳이라고 했다. 도시에서도 이제 찾기 힘들다고… 우리 마을이 시골이라서 아직 남아 있는 걸까? 종종 호기심에 기웃거렸지만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안에 있는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 막대 사탕을 쥔 할아버지들 사이에 그 애가 있었다. 내 또래 같았다. 그 애 옆에서는 할아버지들도 인자하신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쩐지 질투가 났다. 그 마음이 더 컸던 걸까?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날이 내가 오락실에 들어간 첫날이었다.

madmaiz_child_stopping_mid-walk_staring_at_an_old_arcade_hidden_bdfd3ff6-95c.png?type=w1

오락실에 있는 게임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탕처럼 생긴 비행기가 나오는 게임이었다. 심지어 비행기 양쪽에 주먹이 달려있었다. 첫 번째 버튼은 평범한 총알이지만, 두 번째 버튼을 누르면 그 손을 써서 바닥으로 폭탄을 던진다. 너무 신기했다. 구름 안에서는 종이 나왔다. 뎅-뎅-하는 종 말이다. 종을 쏘면 색깔이 변했다. 너무 어려워서 오래 하지는 못했지만, 신기한 비행기를 움직인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할아버지들은 내가 갈 때마다 100원짜리 동전을 하루에 한 개만 주셨다.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하셨는지 더 달라고 부탁해도 그 이상은 아무도 주지 않으셨다.

unnamed.jpg?type=w1

내가 게임을 할 때면 할아버지들이 구경을 하셨다. 금방 죽긴 했지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좋았다. 어느 날, 게임이 끝나고 나니 뒤에서 구경하던 할아버지 한 분이 이상한 말을 하셨다. 그 게임은 둘이 하면 합체할 수 있어. 두 비행기가 손을 잡고 더 세진다니까! 그 말에 다른 분들도 동의하셨다. 오랜만에 해 볼까? 다른 할아버지 두 분이 나란히 앉아 동전을 넣었다. 정말 합체가 되는 걸까? 호기심이 일었지만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게임의 스타인데, 지금은 다른 두 할아버지가 하는 화면에 모두 몰려들어 있었다. 합체는 내가 직접 하면서 볼 거야. 뛰쳐나와 집으로 달려갔다.

%ED%99%94%EB%A9%B4_%EC%BA%A1%EC%B2%98_2025-11-19_214936.png?type=w1

학교 친구에게 오락실을 말하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다. 유치하다고 생각할 것 같기도 했고, 나만의 공간을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대박인데! 그걸 왜 이제 말해? 내가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학교가 끝나고 친구와 함께 오락실에 갔다. 입구까지 들떠 있던 친구는 순식간에 차게 식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게? 유치하게. 이런 건 게임이 아니야. 진짜 게임은 이런 거지! 친구는 가방에서 닌텐도 게임기를 꺼내 흔들었다. 같이 주먹 비행기 게임을 하자는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었다. 그러게 말이야. 할아버지들은 참 유치해! 저런 형편없는 걸 좋아하다니! 오락실 안에 있는 할아버지들이 내 말을 들으셨을까 걱정이 됐다.

%ED%99%94%EB%A9%B4_%EC%BA%A1%EC%B2%98_2025-11-19_220257.png?type=w1

주먹이 달린 비행기를 생각하면 매번 합체가 떠올렸다. 손을 맞잡는다고? 어떻게 잡는 걸까? 서로 마주 보는 건가? 그러면 적을 공격할 수 없잖아? 스케치북에 이렇게 저렇게 그림을 그리며 상상했다. 할머니가 물어보셨다. 뭘 그린 거니? 사탕에 손이 달려 있구나. 할머니는 말해도 몰라! 맞아. 할미는 모르지. 그러니 알려 주렴. 궁금하구나. 갑자기 울컥했다. 나랑 함께 사는 사람이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라면 알 텐데. 나랑 같이 오락실에 가서 손을 잡고 구름 속의 종을 꺼낼 텐데. 왜 나는 할머니랑 살아야 하는 거지? 말해도 모른다니까! 할머니는 오락실도 안 가잖아! 소리치고 나서 후회했다. 할머니의 표정을 보기 두려워서 뛰쳐나갔다. 그날은 할머니가 잠드신 뒤 조용히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에도 할머니는 그 일을 두 번 다시 말하지 않았다.

madmaiz_child_on_floor_drawing_imagined_fusion_mechanics_of_can_423ccd3f-283.png?type=w1

할머니에게 사과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났다. 어느새 내 생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시간이 됐다. 매년 생일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음식을 많이 준비하셨겠지? 읍내에 나가서 사온 케이크도 있을 거야. 맛있는 음식보다 기대되는 것은 할머니의 웃는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못 본 것 같았다. 오늘은 꼭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하지만 그전에 갈 곳이 있다. 생일이니까 오늘은 꼭 첫판 왕을 깰 거야! 오락실에 도착해 보니 그 앞에 할머니가 있으셨다. 숨겨둔 비밀을 들킨 것 같아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왜일까?

madmaiz_grandmother_standing_in_front_of_the_arcade_entrance_at_4c273a71-831.png?type=w1

할머니는 손을 내밀었다. 처음으로 할머니와 손을 잡고 오락실에 들어갔다. 할머니도 게임을 아시나? 어릴 때 하셨던 걸까? 할머니는 내 손을 끌고 게임기 앞으로 향했다. 어? 이 게임은? 트윈비. 내가 매일 하던 주먹 비행기 게임이었다. 할머니가 먼저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내가 항상 하던 왼쪽 자리를 비워둔 채 200원을 넣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셨다. 왼쪽 자리에 앉아 시작 버튼을 눌렀다.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플레이하는 순간이었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떨고 계시지만, 생각보다 능숙하게 플레이를 하셨다. 나보다 약간 못하는 수준인 것 같았다. 내가 할머니를 지켜줘야지. 할머니에게 더 좋은 종을 양보했고, 할머니 쪽으로 가는 적을 격추했다. 그동안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다.

%ED%99%94%EB%A9%B4_%EC%BA%A1%EC%B2%98_2025-11-19_215103.png?type=w1

드디어 첫판 왕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까? 그때 할머니가 말했다. 잠시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보렴. 할머니의 핑크색 비행기가 나의 파란색 비행기 옆으로 다가왔다. 두 비행기가 손을 잡았다. 합체! 더 강한 총알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와! 바로 이거야! 이거였어! 오늘은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2판을 볼 수 있는 걸까? 하지만 합체는 금방 풀렸다. 조작을 잘못한 것 같았다. 당황하던 중에 보스의 총알이 날아왔고 내 비행기가 격추되었다. 하필이면 마지막 목숨이었다. 드디어 합체를 했는데… 우울해하고 있으니 할머니가 외쳤다. 버튼을 눌러! 내 목숨을 사용해! 이렇게 흥분한 할머니는 처음 본다. 얼떨결에 버튼을 누르자 내 비행기가 부활했다. 대신 할머니의 목숨이 하나 줄어들었다. 이게 뭐야? 할머니가 나한테 생명을 주셨어!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꼭 이길거야아!

%ED%99%94%EB%A9%B4_%EC%BA%A1%EC%B2%98_2025-11-19_215312.png?type=w1

결국 우리는 첫판 왕을 이겼다. 그리고 두 번째 스테이지에 들어갔다. 처음 들어가는 새로운 스테이지. 할머니와 함께라서 좋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우리는 격추되었다. 역시 어려웠다. 게임은 끝났지만 여운이 남았다. 할머니도 나도 게임기 앞에 계속 앉아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지만,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땡그랑


누군가가 기계 위에 동전을 얹었다. 내가 처음으로 이곳에 발을 디딜 수 있는 용기를 준 그 아이. 내 또래의 소녀였다. 할머니는 인자한 표정으로 목례를 했다. 소녀가 말했다. 시끄러운 전자음 속에서도 똑똑히 들렸다.


“생일 축하. 그리고 매일 밤 노력하신 할머니에 대한 존경을 담아.”


madmaiz_two_100-won_coins_placed_neatly_on_a_retro_arcade_cabin_78033e5d-a98.png?type=w1

소녀는 100원을 더 얹었다. 그리고 한발 뒤로 물러서서 화면을 응시했다. 기계 위에 100원짜리 동전 두 개가 반짝였다.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나도 함께 웃었다. 우리, 한판 더 할까?

이전 01화넥스트 스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