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촌
나는 골동품처럼 오래된 것들을 좋아한다. 그중 최고는 역시 레트로 게임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세상에 나온 게임들을 수집할 뿐 아니라 직접 플레이하기도 한다. 주변 친구들 중에는 이런 취향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훨씬 화려하고 멋진 최신 게임이 많은데 왜 레트로를 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었다. 그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레트로 게임은 비밀스러운 취미가 되어 갔다. 요즘 나온 게임을 하면, 내가 어떤 게임을 얼마나 했는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냈는지가 모두 공유된다. 하지만 레트로 게임은 그렇지 않다. 당시에는 공유되는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수백 번을 죽어도, 실력이 부족해도 될 때까지 하면 된다. 몇 번이고 다시 할 수 있다는 것과 누구에게도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이 나에게는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오래도록 혼자 즐겨온 레트로 게임이 미디어에 나오는 것을 보는 일은 특별했다. 어느 논길 한가운데에 고전 게임이 잔뜩 있는 오락실이 있다고 했다. 수 십 년 전 완전히 사라져서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사라진 문명이라며 호들갑이었다. 앵커 뒤로 보이는 화면들이 나를 유혹하는 듯했다. 시간을 내서라도 한 번은 가보고 싶어졌다. 집에서 비밀스럽게 플레이하던 레트로 게임을 당당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오락실에 갈 예정을 정한 뒤부터 며칠간 들뜬 마음이 계속되었다.
드디어 도착한 오락실은 내가 상상한 모습과 많이 달랐다. 과거 영상이나 자료에서 본 것과 달리 사람이 많았다. 방송에 나오면서 핫플이 되어서일까? 게임기에서 나오는 전자음보다 사람 소리가 더 많이 들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일단 오락실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섰다. 어떤 게임을 할지 둘러보는데, 격투 게임은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고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대화 주제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체감형 게임도 궁금했지만, 오늘의 목표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숨어서 하던 체험을 당당하게 하는 경험이 필요했다. 슈팅 게임과 퍼즐 게임은 연인들이 점령했다. 계속해서 할만한 게임을 찾아 서성거렸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으면서, 집에서 하던 것과 같은 게임이 어디 없을까?
팬티 한 장을 걸친 기사가 앙상하게 뛰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계촌! 집에 있는 레트로 콘솔 게임기에서 해본 게임이다. 이거라면 괜찮지 않을까? 이목이 집중되지도 않을 것 같고 이미 해본 게임이니 익숙해지기도 쉬울 것이다. 잠시 기계 앞에 서서 화면을 지켜봤다. 집에서 하던 것과 캐릭터의 그래픽이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나머지는 비슷해 보인다. 일단 자리에 앉았다.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뒤를 돌아봤지만, 나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내 화면을 볼 수도 있다는 점이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두는 것 같았다.
땡그랑
첫 시작은 집에서 하던 때와 동일하다. 사탄이 나타나 공주를 납치해 간다. 기사 아서는 갑옷을 입고 사탄을 따라 공동묘지로 향한다. 게임이 시작되자 땅 속에서 좀비가 튀어나왔다. 좀비 구간을 지나자 까마귀가 날아온다. 멋지게 창을 던져 격퇴했다. 집에서 하던 그대로다. 플레이는 매끄럽게 진행되지만 어쩐지 버튼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리고 역시 뒤통수가 신경 쓰인다. 누가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못한다고 놀리는 것은 아니겠지? 결국 초반의 큰 난적인 레드 아리마를 눈앞에 두고 죽었다.
두 번째 목숨. 이번에는 문제없이 레드 아리마까지 진행했다. 이 적은 패턴이 복잡하기에 그냥 싸우기는 힘들지만, 사실은 쉽게 이기는 방법이 있다.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 뒤에서 누군가가 보고 있다면 나를 정정 당당하지 못한 인간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보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무시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쉬운 패턴을 포기하고 정공법으로 달려든다. 그리고 다시 죽었다.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마지막 목숨을 시작하며, 집에서 이 게임을 하던 시간을 떠올렸다. 마계촌은 쉬운 게임이 아니다. 아마 지금까지 수백 번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한 번의 실패가 지금처럼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었나?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내가 레트로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백 번을 죽어도, 실력이 부족해도 될 때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오락실에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한 판에 100원이라는 금액이 걸려 있기 때문인 걸까? 그것 만은 아닐 것 같았다. 복잡한 마음 탓인지 마지막 목숨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 건 어려워서 많이 죽는 게임이에요.”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한 소녀가 다가와서 말했다. 이 아이도 이 게임을 아는구나. 하지만, 죽는다는 것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이 아이는 알까? 집에서 할 때와 오락실에서 할 때 다르다는 것을. 같은 이름을 갖고 있긴 하지만,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를 거라는 것을. 게임에서 실패하는 것의 의미도, 극복의 의미도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