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테트리스

by 마이즈

나는 장례 지도사다. 도시에는 흔한 직업일 수 있지만 이런 시골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상조에 가입을 하기 때문에 내가 나설 일이 드물기는 하다. 직접 나서게 되는 경우는 미리 준비해두지 못했거나 가족과 연락이 뜸한 분들이다.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게 보겠지만, 나는 내 직업이 좋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거두는 일은 숭고하다고 생각한다. 한동안은 일이 맡겨지면 그분을 편안히 보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내가 누군가의 마지막을 주도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생전의 그 분들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노인들이 모이는 공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보통은 양로원이겠지만, 이 마을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공간이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나타난 듯한 논길 한가운데 오락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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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르신들을 보기 위해 오락실을 자주 방문했다. 내부에는 너무 많은 게임기가 있었고 각자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디를 보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게임 앞에 자리를 잡았다. 테트리스. 처음 오신 분들도 한 번씩 하시고,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하다가 지칠 때쯤 한 번씩 가볍게 하고 가시는 게임이다. 아마 이 오락실에 있는 게임 중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이 건드는 게임이 아닐까? 직접 게임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어르신들의 플레이를 바라볼 뿐이다. 가끔은 오락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듯한 소녀가 다가와 함께 구경하기도 했다. 아이도 신기한지 말했다.


“같은 상황에서도 모두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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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르신들의 다양한 성격이 비친다. 상황이 될 때마다 한 줄씩 지우는 분도 계시고, 한 번에 여러 줄을 지우기 위해 블록을 쌓는 분도 계시다. 블록이 빨리 내려 오도록 조작하는 분도 계시고, 제 속도로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는 분도 계시다. 신기하다. 같은 게임을 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이래서 오락실이 좋다. 양로원에서 어르신들을 알아 가려면 말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내 직업을 알게 되는 순간 불편한 표정을 짓는 분들이 계시다.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오락실에서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것만으로 어르신 들을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다. 어떤 어르신은 블록이 잘못 쌓이자 인상을 쓴다. 어떤 어르신은 한 줄 한 줄 지워질 때마다 미소를 짓는다. 어떤 어르신은 스테이지를 클리어 후 코사크 춤을 추는 캐릭터를 보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나는 그 얼굴을 깊이 기억한다. 언젠가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만나게 되더라도 생명력 넘치는 모습을 상상하며 보내 드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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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오락실이 유명해졌다. 미디어에 노출되며 외부에서도 다양한 사람이 찾아왔고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소중한 공간이었는데, 아마 어르신들에게도 특별한 공간일 텐데, 그것을 침범당했다고 생각했다. 변해버린 분위기를 보며 어르신들을 걱정했다. 시골 마을의 유일한 놀이터인데, 이런 건 그냥 묻어줘도 되는 거잖아? 매일 보이던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조금씩 텀이 길어졌다. 여기는 전시장이 아니다. 파티장도 아니다. 일생을 열심히 살아온 분들이 마지막으로 소소하게 즐기며 쉬는 공간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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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이 테트리스를 하는 어르신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민다. 할아버지, 아직도 게임을 하세요? 저건 무슨 무례한 질문이란 말인가. 하지만 어르신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내가 이 게임을 언제부터 했냐면 말이야~ 그 시절은 아주 엄청났지! 귀여운 허세를 부리신다. 순간 깨달았다. 이 또한 내가 기억해야 하는 모습들임을. 조용하게 고정된 공간에서의 모습도 중요하다. 하지만 변화에 대응하는 모습들 또한 현재의 증거 아닐까? 변화한 장소에 적응하는 분, 오히려 더욱 즐기는 분, 뜸해지는 분. 모두 각자의 개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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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북적거리는 와중에도 꾸준히 오시는 분들이 계시다. 오늘도 한 어르신이 테트리스 앞에 앉았다. 매번 긴 작대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블록을 쌓는 이른바 “한방 유저”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블록이 쌓이지 않도록 최대한 빠르게 줄을 지우고 계시다. 어째서? 첫 스테이지가 끝나고 화면에 캐릭터가 나와 코사크 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어르신은 주변을 힐끔 둘러보고 다시 화면에 집중한다. 외지인들에게 과시하고 싶으신 걸까? 아니면 주눅 든 걸까? 어쩌면 오락실뿐 아니라 자신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으신 걸까? 어느 쪽이든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다. 귀엽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처음에는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변화를 이제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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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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