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열

봄잭

by 마이즈

오픈 시간 전부터 오락실 앞에는 줄이 늘어서 있다. 아무리 세계 유일의 고전 게임 오락실이라고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카메라는 물론, 삼각대나 여러 장비를 들고 온 사람들도 많다. 어떤 젊은이들은 이미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조용히 줄 맨 뒤로 간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원할 때 와서 언제든 하고 싶은 만큼 게임을 플레이했다. 훨씬 오래전부터 다녔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예전에 동네 노인들끼리 있을 때와는 너무 달라졌다.

madmaiz_A_long_line_of_people_standing_in_front_of_a_retro_arca_24a7f09a-9d1.png?type=w1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간다. 천천히 뒤를 따라 들어갔다. 어차피 내가 하는 게임들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을 것이다. 요즘 젊은 애들은 미리 게임을 찾아보고 오는 것 같은데, 이곳을 찾아오는 방송쟁이 들도 보기 좋은 게임만 하다 보니 몇몇 게임만 계속 알려지는 것 같다. 벌써 유명한 게임들은 줄이 늘어섰다. 오늘은 어떤 게임을 할지 고민하다가 봄잭으로 하기로 했다.

madmaiz_Arcade_doors_opening_with_a_crowd_rushing_inside_bright_72773160-ef3.png?type=w1

게임을 시작했다. 화면 여기저기에 폭탄이 흩어져 있다. 이를 모두 회수하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그건 하수들이나 하는 것. 나 같은 고수는 다르다. 폭탄 중 하나는 점화되어 있는데, 이것을 먹어야 높은 점수를 얻는다. 점화된 폭탄을 하나 없애면 나머지 폭탄 중 다른 하나가 점화된다. 즉, 순서대로 폭탄을 회수해야 고득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완벽한 순서가 있고, 나는 그것을 모조리 외우고 있다.

%ED%99%94%EB%A9%B4_%EC%BA%A1%EC%B2%98_2026-02-15_161735.jpg?type=w1

젊은 시절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힘들게 들어간 회사에서 열심히 노력했고, 빠르게 팀장을 달았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서 회사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들은 나를 챙기려고 노력했으며 후배들은 나를 존경했다. 너무나 좋은 시절이었다. 멋진 여성들과 연애를 했다. SNS에 나의 일상을 게시하자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무엇에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madmaiz_Overlay_scene_faint_ghost-like_images_of_a_younger_busi_82c966d9-d79.png?type=w1

점화된 폭탄을 먹으려고 했는데, 적을 피하다가 실수로 보통 폭탄을 먹어버렸다. 실수다. 오늘의 게임으로는 고득점을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게임을 계속해야 할까? 조금 전부터 뒤에서 구경하고 있는 젊은 애들이 있다. 노인이 게임을 잘하니 신기하게 보는 것이겠지. 덕분에 고민이 커진다. 고득점을 못 낸다면 나를 우습게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애들이 이 게임을 잘 모른다면, 점수가 아니라 오래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볼 것이다.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손은 바삐 움직인다. 젠장.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거지? 아까 실수만 하지 않았어도...

%ED%99%94%EB%A9%B4_%EC%BA%A1%EC%B2%98_2026-02-15_161611.jpg?type=w1

모든 프로젝트를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실적이 나빠 중간에 해체된 팀도 있었고, 관리를 잘 못한 탓에 문제가 커지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실패한 프로젝트가 더 많았다. 나를 존경한다는 후배들이 험담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동기들의 견제나 시기 질투를 받아 추락하던 순간도 있었다. 연애의 마지막은 항상 지독한 고통이었다. 다시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연애가 시작되었다. 인플루언서 급으로 많은 팔로어가 생긴 SNS에서는 마녀 사냥을 당하기도 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나는 알고 있다. 점화된 폭탄부터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젠장.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또 점화되지 않은 폭탄을 먹어 버렸다.

madmaiz_Dim_office_at_night_empty_desks_a_lone_man_sitting_unde_76d29d7c-118.png?type=w1

평소 같았다면 게임을 끝내고 재시작했을 것이다. 이대로 게임을 계속해도 될지 고민한 것은 뒤에서 구경하는 젊은 애들 때문이었다. 몇 사람이 더 몰려와서 나의 플레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고득점을 받지 못한 것을 저 놈들이 아는 것은 아닐까? 혹시 나를 비웃으려고 구경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오래 살아남는 것을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초짜일까? 젠장. 초반에 폭탄 순서를 틀리지만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ED%99%94%EB%A9%B4_%EC%BA%A1%EC%B2%98_2026-02-15_161820.jpg?type=w1

“처음에는 잘하셨어요.”


어느새 다가온 소녀가 스치듯 한 마디를 남기고 지나간다. 이 오락실에서 동전 교환을 맡고 있는 아이다. 그 한 마디에 기묘한 여운이 남았다. 평소에 나는 잘했던 것, 좋은 일들 만을 떠올린다.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는 순간부터는 그 순서가 반대가 된다. 실수한 것, 힘들었던 일 만을 떠올린다. 내가 잘했거나 좋았던 것은 어느새 잊힌다. 지금도 그런 것인가? 맞아. 내가 처음으로 폭탄을 잘못 먹은 것은 이미 몇 개 스테이지를 지나고 난 뒤였어.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

%ED%99%94%EB%A9%B4_%EC%BA%A1%EC%B2%98_2026-02-15_161958.jpg?type=w1

결국 게임이 끝났다. 점수는 나쁘지 않지만 당연히 최고 점수를 갱신하지는 못했다. 일어서서 자리를 피했지만 구경하던 젊은 애들은 게임에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데모 화면 만을 계속 보고 있다. 그들이 나를 놀릴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창피했다.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게임기 앞으로 가서 앉았다. 결심했다.

madmaiz_Close-up_of_a_coin_dropping_into_an_arcade_slot_metalli_15743663-f36.png?type=w1

땡그랑


이번에는 처음부터 점화되지 않은 폭탄을 먹는다. 점수는 높지 않다. 하지만 상관없다. 순서를 무시하고 게임을 해보기로 했다. 성공과 실패의 조건을 보다 쉬운 곳에 둔다면 어떤 세상이 보일지 궁금해졌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몬스터만 피하며 끝까지 가보자. 뒤에서 보고 있는 녀석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더 이상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아무렴 어때.

%ED%99%94%EB%A9%B4_%EC%BA%A1%EC%B2%98_2026-02-15_161900.jpg?type=w1
이전 26화한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