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rry UP! - 상

뉴질랜드 스토리

by 마이즈


나는 오락실에 머물고 있다. 내가 어른이었다면 직원이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곳에서 화면이 아닌 사람을 본다. 100명의 마음을 움직이면 가질 수 있는 게임기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이곳에 데려와 주신 그분의 약속이다. 이를 위해 마음의 큰 점이 있는 사람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목표를 잃고 방황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관계를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이 오락실 안에 수없이 많은 게임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마다 다 각자의 세계가 있다. 평소에는 동전 교환소 안에 있지만, 한 번씩 오락실을 돌아다닌다. 오늘은 어떤 사람에게 동전이 필요할까.

madmaiz_A_quiet_young_girl_standing_inside_a_retro_arcade_surro_166c0f8c-000.png?type=w1

나는 주로 사람을 보지만, 화면을 보고 싶어 하는 게임이 하나 있다. 누군가 그 게임기 앞에 앉으면 달려가서 지켜본다. 어째서인지 직접 할 수는 없다.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게임 제목은 뉴질랜드 스토리. 바다표범에게 잡혀간 키위 새 친구들을 구하는 게임이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귀엽다고 외칠지도 모른다. 게임이 시작되자 화살을 쏘는 키위새가 나온다. 날개를 파닥이며 잡혀간 친구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시작한다. 지금 플레이하는 사람은 이 게임을 처음 해보는 것 같다. 오락실이 유명해진 뒤로 이런 사람들이 늘었다. 화면에 hurry up!이라는 글자가 떴다. 큰일이다. 이제 시간의 악마가 나타날 것이다.

%ED%99%94%EB%A9%B4_%EC%BA%A1%EC%B2%98_2026-02-18_213533.jpg?type=w1

나는 소리를 기억한다. 쿵쿵 거리는 소리. 쨍그랑 깨지는 소리. 때리는 소리와 고함 소리. 문이 쾅 닫히는 소리. 잔뜩 겁에 질린 엄마의 비명 소리. 언제나 아빠는 큰 소리를 몰고 다녔다. 엄마는 소리를 더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안 그래도 작은 소리였는데. 아빠는 엄마가 내는 소리를 싫어하는 걸까? 아빠가 엄마를 데리고 가면 큰 소리가 났다. 엄마는 나에게도 소리를 내지 말라고 했다.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아빠 앞에서는 더 조심해야 해. 웃지도 울지도 마. 표정을 감춰.

madmaiz_Dim_interior_of_a_small_apartment_heavy_silent_atmosphe_1b5abd54-57c.png?type=w1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기로 한 날이다. 먼저 문 앞에 나가 있었다. 바깥공기는 맑았다. 집안과는 너무 달랐다. 한참 기다렸지만 엄마가 나오지 않았다. 조용히 문을 열었다. 집에 아빠가 있으니까 소리를 내서는 혼난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 무거운 공기가 엄습했다. 살금살금 엄마를 찾아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안방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쿵 하고 무언가 넘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아빠의 거친 숨소리가 문 틈으로 새어 나왔다. 문을 살짝 밀어 방 안을 살폈다. 바닥에 누워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물을 흘리며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평소에 엄마는 아빠 앞에 가면 큰 소리를 냈는데, 오늘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했다. 엄마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마지막까지 슬픈 눈빛이었다.

madmaiz_A_small_child_standing_outside_a_slightly_open_door_bri_32cfa7dc-13c.png?type=w1

나는 그저 서 있었다. 엄마가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소리 지르며 달려들었다면 무언가 변했을까? 밖으로 달려 나가 도움을 요청해야 했을까?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빠가 방 안에 있었으니까. 아빠 앞에서는 소리를 내지 말라고 했으니까. 엄마가 그랬으니까.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아빠 앞에서는 조심해야 해. 웃지도 울지도 마. 표정을 감춰. 그러다 보면 다 지나갈 거야. 그러니 그냥 조용히 기다리렴.

madmaiz_View_through_a_slightly_opened_bedroom_door_blurred_sil_c3066235-8b2.png?type=w1

나는 사신을 알고 있다. 그는 빨간색이고 시계를 들고 있다. 서둘러야 했다. 사신이 나타나기 전이었다면 엄마는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사신을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타난다는 것을. Hurry Up! 엄마는 눈을 감았지만 숨을 쉬고 있었다. 분명, 그때까지는 괜찮았을 것이다. 아빠의 거친 숨소리 사이로 엄마의 가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조용했다. 나의 소리가 엄마의 숨을 가리는 것이 싫었으니까. 엄마의 숨소리가 점점 줄어들수록 나도 더 움츠렸다. 내 소리를 줄여야 엄마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SE-a2c2c897-88bb-4acc-9b74-28f8c834e3cb.jpg?type=w1

나는 도망쳤다. 그날 이후 집은 더욱 조용해졌다. 더 이상 엄마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제 알았다. 조용한 것은 무서운 것이구나. 엄마가 있을 때 소곤거리던 목소리, 엄마의 포근한 숨소리가 사라지니 내 곁에는 완전한 침묵만이 남았다. 안방 문 너머로 아빠가 보는 TV 소리만이 들렸다. 그 조차도 두려웠다. 얼마 뒤, 경찰 아저씨들이 아빠를 데리러 왔다. 친절해 보이는 어른 몇 분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함께 가자고. 저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예요? 엄마는 어디 있어요? 그들을 따라가면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madmaiz_A_small_girl_running_down_a_narrow_street_at_dusk_no_cl_4e2a7cc1-134.png?type=w1

나는 오락실의 이 시끄러운 소리를 좋아한다. 수많은 세계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뉴질랜드 스토리의 세계에 다시 눈을 돌린다. 나는 왜 이 게임을 보고 싶은 걸까? 잠시 후, 시간의 사신이 나타난다. 이번 키위 새도 늦었구나.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다면, 구할 수 있었을 텐데. 화면에서 고개를 돌린다. 언젠가 시간의 사신을 만나지 않고 새장에 갇힌 친구를 구하는 사람이 나타날까? 누군가 바다표범을 혼내 주었으면 좋겠다.

이전 27화배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