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특별했던 나의 선생님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묘한 놈이었다. 주로 그림을 그리는 오타쿠 그룹과 어울렸다. (룩백 온 기브업) 한편 하교 후에는 빠짐없이 오락실에 갔고 격투 게임으로 3년 내내 반짱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학년 짱을 해보지는 못했다. (하이스코어 보이) 저녁시간과 주말에는 지하상가에 있는 게임 가게 ‘으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으뜸) 일진들과도 어울렸는데, 중학교 때부터 칼을 휘두르고 다니던 것의 영향이 컸다. (중딩 느와르) 성적은 하위권으로 반에서 50명 중 48등을 한 적도 있었다. 시간이 남으면 학교에서 종종 TRPG를 했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는 옥상에서 TRPG를 하거나 책상을 화장실에 숨겨두고 오락실로 탈출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선생님들은 나를 얌전한 아이로 생각했다. 나열하다 보니 그냥 평범한 학생 중 하나인가 싶기도 하다. 10대는 질풍노도의 시기니까.
고등학교 1학년. 어머니와 약속했다. 다시는 싸움을 하거나 말썽을 피우지 않겠다고. 담배도 끊었고, 불량한 친구들은 만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입학하자마자 오타쿠 그룹으로 스며들었다. 담임 선생님에게는 첫 면담 때 선언했다. 저는 공부에 관심이 없습니다. 한동안 만화를 그릴 거고 나중에 게임을 만들 거예요. 사고는 안치겠습니다. 아슬아슬한 출석일수로 진학한 탓인지 담임 선생님은 나를 경계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면담 이후 크게 터치하지 않으셨고,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을 말한 뒤에 한번 가게에 오셔서 사장님과 대화를 하고 가시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용히 뒤에서 응원해 주신 좋은 선생님이셨던 것 같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은사님으로 기억되는 분이셨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쟤물포였다. 어느 학교에나 있다는 그 별명. ‘쟤 때문에 물리 포기’. 키도 작고 목소리도 작은 탓에 학생들에게 무시당했다. 당시 고등학교도 대학처럼 시험을 봐서 성적순으로 들어갔다. 중학교 시절을 엉망으로 보낸 내가 간 곳은 깡패 학교로 유명한 곳이었다. 당시 경기 권에서 싸움으로 2위였고 (1위는 안양공고였다) 가끔 단체로 패싸움을 나가기도 하는 거친 곳이었다. 체육 수업 대신 격구, 유도, 검도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이에 한몫했다. 거의 매주 학교에 응급차가 와서 누군가를 실어갔고 가끔은 그 대상이 선생님이기도 했다. 경찰차도 몇 번인가 다녀갔다. 아, 물론 지금의 모교는 분위기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사나이 훈련소에서 남녀 공학으로 바뀌었거든. 아무튼 당시에는 이런 곳이다 보니 쟤물포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불쌍한 입장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아무도 듣지 않는데도 혼자 묵묵히 수업을 진행했다. 나도 뒤에서 그림만 그렸다. 대청소 날에는 반 전체가 선생님을 무시하고 가버리거나 놀러 나가기 일쑤였다. 나 역시 당연하게 선생님을 무시했다. 약한 것이 잘못이라는 어린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모두가 하교해 버린 교실을 선생님 혼자 청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쓰레기통을 닦는 모습까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다. 약한 것은 죄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을 받는 일이 있었다. 주말에 TRPG를 하기 위해 학교에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마스터이기 때문에 미리 가서 준비를 해야 했는데, 운동장을 달리고 있는 쟤물포를 발견한 것이다. 의외로 몸이 좋아 보였다. 어쩌면 우리 담임, 강한 건가? 이후 철봉을 하는데, 이건 뭐. 체조 선수가 따로 없었다.
그 이후 담임 선생님과 가까워졌다. 쓰레기통 이야기도 물었고 혼자 운동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자백도 했다. 거친 학교이다 보니 대부분의 선생님이 학생들을 때렸고 당구 큐대나 야구 방망이, 혹은 커스텀 제작한 자신만의 무기(?)를 들고 다니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담임은 결코 학생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고 뒤에서 조용히 자신의 진심을 내비쳤다. 본인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매일 몸을 단련하는 사람이었지만, 폭력으로 지도했을 때 변하는 건 그 순간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학생들이 보지 않도록 몰래 숨어서. 내가 자퇴를 결심했을 때, 적극적으로 말린 어른 두 분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다른 한 분은 내가 알바하는 게임 가게, 으뜸의 사장 님이셨다.) 왠지 나처럼 몰래 이야기하는 제자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사 선생님은 미친 체벌로 유명했다. 폭력적이기보다 수치스러운 방식이었다. 시험 점수 80점 이하인 학생들에게 10점마다 얼음물 한 컵씩을 속옷 안에 부어 넣었다. 그리고 한 겨울에 손을 들고 밖에 서 있도록 했다. 성기가 얼어붙을 것처럼 아프면 다른 학생과 서로 문지르라고 했다. 마주 보면 어색해서 서로 뒤로 뒤로 붙다 보니 무슨 인간 지네처럼 되어버렸다. 10대 남자아이들에게 너무 수치스러운 체벌이 아닌가? 나처럼 미친놈이 이를 방관할 리 없었다. 벌떡 일어서서 외쳤다. 이거 성추행입니다! 남자끼리 무슨 성추행이냐? 선생님 변태입니까? 뭐? 이 새끼가! 정신없이 얻어맞아 교실 한 켠으로 날아간 뒤 일어서서 말했다. 사과하시기 전까지 저는 수업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니 맘대로 해 새끼야! 그 이후 한동안 세계사 수업 시간에는 책상을 들고 복도로 나갔다. 한 겨울이라 추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교장 선생님이 세계사 선생님을 호출했다. 나도 함께였다. 결국 세계사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 앞에서 학생들에게 수치스러운 체벌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쟤물포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교장에게 말한 거죠?’ 대답은 듣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 누구셨더라. 수학 선생님이셨던가? 물론 좋은 분이셨지만 역시 쟤물포 선생님 탓에 기억이 희미하다. 고3 때는 특히 강렬한 사건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이 쟤물포 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3학년 초반. 조회 시간에 새로 온 지구 과학 선생님의 소개를 들었다. 매우 젊었다. 그리고 다음 날 지구 과학 첫 시간. 수업을 시작하기 5분 전에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냥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직진하더니 따귀를 때리셨다. 어? 이거 뭐지? 쉬는 시간 특유의 떠들썩 함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수업 5분 전이면 미리 책 펴고 예습하고 있어야지! 뭐 하는 거야! 거칠게 소리치는 선생님을 올려다보며 이게 무슨 억지인가 생각을 했다. 선생님의 손에 든 굵은 몽둥이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첫 수업이라며. 저건 뭐지? 순간, 이해했다.
지구 과학 선생님의 목적은 명확했다. 여기는 유명한 깡패 학교다. 학생들은 거칠고 때로는 교사를 폭행하는 경우마저 있다. 기선 제압을 해야 한다고 누군가에게 들었을 것이다. 쟤물포 선생님처럼 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그리고 우리 반에서 잡아야 할 미친놈은 나라고 들었을 것이다. 세계사 선생님 사건 이후 교무실에서는 나를 일진들과는 다른 의미의 이상한 놈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일진을 직접 건드리는 건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보복당할 수 있을 테니까. 무서웠을 수도 있다. 내가 만만하다 이거지? 다시 카멜레온이 떠올랐다. 가장 무서운 것은 강한 놈이 아니라 미친놈이다.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따귀를 때린다는 것은 도전한다는 거죠? 먼저 도전하셨으니 정당방위 인정하십니까?
인정할 리 없었다. 나는 수없이 두들겨 맞았다. 책과 주먹과 손바닥과 몽둥이로. 하지만 다시 일어서서 같은 말을 외쳤다. 도전을 인정하십시오. 지금부터 정당방위 맞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사과하십시오! 그날은 수업시간 내내 두들겨 맞은 기억이다. 하지만 나의 미친 짓은 지구 과학 수업 시간에 그치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에 쳐들어가서 지구 과학 선생님 앞에서 외쳤다. 저는 잘못한 적이 없습니다. 사과하십시오! 아니면 정식으로 도전하십시오! 다른 선생님들은 저 미친놈 또 이상한 짓 한다는 표정이었다. 교무실에 없다면 화장실로 찾으러 갔다. 한동안 나의 모든 쉬는 시간은 지구 과학 선생님 한 분에게 집중되었다. 진짜 미친놈 같이 굴었다. 내가 우스웠나 보지? 이 일은 일진들에게도 좋은 구경거리였다. 덕분에 그들과 사이가 좋아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적의 적은 아군이니까. 결국 지구 과학 선생님은 자신의 이미지를 포기했다. 교무실에서까지 나를 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쟤물포 선생님이 나에게 조언을 주셨다. 네가 싸우는 방법은 잘못되었단다. 더 좋은 방법이 있어. 지금은 선생님들이 다들 너를 안 좋게 보는데, 이 방법을 쓰면 여론이 달라질 거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은 공부였다. 폭력으로는 너만 다칠 뿐이다. 차라리 지구 과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어려운 질문을 들고 가서 괴롬히렴. 어른이 되고 나서 생각해 보니 현명한 조언이었다. 이는 나에게도 지구 과학 선생님에게도 성장을 가져오는 방법일 테니까. 다른 사람이 공부하라고 했으면 잔소리로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쟤물포 선생님은 유일하게 믿는 교사였기에 그 말이 진심임을 믿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아는 최고의 공부 전문가, 백곰에게 SOS를 쳤다. (곰 세마리가 한 집에 있었어) 형, 내가 공부로 1등을 해야 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구 과학 선생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어. 백곰은 공부 방법을 알려주는 한편 고등학교 수준에서 지구 과학 선생님에게 물어볼만한 어려운 문제들을 찾아 주었다. 반에서 48등을 하던 나의 성적은 반 학기 동안 전교 3등까지 올랐다. (워낙 공부를 안 하는 학교라서 더 빨리 올랐을 게다.) 그 과정에서 하루에 한 번씩 어려운 문제를 들고 가서 지구 과학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초반에는 백곰이 찾아준 문제들을 쉽게 해결했지만, 조금씩 난도를 높이니 결국 지구 과학 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럴 때면 교무실에서 목소리를 키워 선생님을 망신스럽게 했다. 지구 과학 선생님이 지구 과학 문제를 못 알려주시면 저는 어디서 배웁니까! 답답해서 잠을 못 자요! 잠을! 요즘 같으면 인터넷이라도 찾아보라고 하겠지만,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으니까.
결국 지구 과학 선생님의 사과를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복수했다고 생각해 만족스러웠다. 이 사건으로 나는 한층 더 미친놈 소리를 듣게 되었고, 성적이 높아지니 전교 1~2등을 하는, 평생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던 수재들 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냐고? 복수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나의 등수는 원래 자리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다행히 50명 중 48등까지 내려가지는 않았다. 반에서 40등 정도에 머물렀다. 그때부터 쟤물포와 담임 선생님은 잔소리를 시전 했다. 넌 하면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니? 필요하면 하겠죠. 언젠가는요. 그 언젠가가 바로 다음 해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평화로운 대학생활) 이 사건으로 공부하는 습관과 요령을 미리 체험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대학 생활은 1년 만에 막을 내리지 않았을까?
몇 년 뒤, 쟤물포 선생님과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며 서로 연락을 끊게 되었다. 하지만 그분은 여전히 내 인생 최고의 스승님 중 한 분이다. 교수직을 하게 되면서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떠오른다. 여러 의미로 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울림과 경험을 남길 수 있을까?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삶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뿐 아니라 많은 분들에게 영향을 주셨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