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끝까지 믿어준 유일한 존재들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떠오르는 그 시기. 세상 모두가 적이 되며 고립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나를 믿어준 분들이 계셨다. 가족도, 친구도 아니었다. 놀랍게도 블로그 이웃 분들이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블로그와 이웃 분들은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인터넷이라는 신 문물이 들어오고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일기장에 쓰던 리뷰를 PC로 쓰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보내는 메일로 작성해서 저장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 커뮤니티인 DAUM 카페가 생겼다. 1인 카페를 개설하고 게시판에 리뷰를 남겼다. 취업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블로그라는 것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1인 카페에 올리는 리뷰는 혼자서만 보다 보니 종종 현타가 왔다. 내가 이걸 왜 쓰고 있지? 블로그에 올리면 모두가 볼 수 있겠지? 혼자 쓰고 혼자 보던 리뷰를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다양한 사고의 확장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상대의 블로그도 오가게 되면서 한 명 두 명 친해질 수 있었다.
블로그 포스팅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나 혼자 쓰던 것들을 공개적으로 했을 뿐이니까.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당시 몇 없는 게임 기획자의 블로그라는 것도 한몫을 했다. 지금도 종종 10년 차가 넘는 게임 개발자들이 내 블로그를 보며 꿈을 갖게 되었다거나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아무튼 하루하루 들어오는 사람 숫자가 늘어났다. 처음에는 10명도 안되었는데, 100명, 1000명을 넘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파워 블로거 수준은 될 수 없었다. 당시 기준으로 하루 1만 명을 넘겨야 파워 블로거라고 부르는 시기였으니까.
일 방문자 8,000에서 9,000을 오가던 시기부터 다양한 제휴가 들어왔다. 내 블로그의 게임 리뷰는 단가가 최저 20만 원에서 최고 90만 원이었다. (요즘 단가와 비교하면 한숨만 나온다) 그 와중에 마음에 드는 게임만 골라 받았다. 리뷰 요청을 받은 게임의 단점을 썼다가 문제가 생긴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작 돈 몇 푼에 거짓말까지 하며 내 공간을 더럽히라고? 그건 싫었다. 지금도 리뷰 요청이 오면 단점을 써도 되는지 미리 확인을 하고 받아들인다. 그 시점에서 요청을 철회하시는 분들도 많다.
블로그가 유일한 SNS였던 시절이다 보니 블로거를 대상으로 한 행사나 이벤트가 많았다. 나는 기준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란투리스모 론칭 행사 등 게임이 연관된 내용이면 VIP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인플루언서를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화려한 파티 장면을 상상하면 그와 비슷하다. 다만, 게임과 IT 쪽은 대체로 너드였으므로 분위기가 반짝반짝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다른 파워 블로거들과 친분을 가질 수 있었다. 그중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며 함께 지내고 있는 절친, 토이가 있다. (생존형 개발자) 녀석은 게임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지금은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 외에 전업 블로그로 부자가 된 형님들도 계시고 유명한 IT 블로거도 있었다. 내가 오타쿠였으므로 애니메이션 계열 블로그 분들과도 친해졌다.
특히 기억에 남는 활동은 “인텔 게임인”이었다. 인텔은 자사의 CPU를 홍보하기 위해 게임을 타깃으로 잡았다. 그리고 게이머들에게 가장 노출이 많이 되는 블로거들을 모집한 것이다. 친구인 토이도 함께였다. 인텔 본사에서 제품 설명회를 듣기도 하고 인텔 게임인들만의 게임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활동을 하며 1세대 프로게이머인 임요환 님과 중국 요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고, 당시 정상급 아이돌이었던 소녀 시대와 함께 하기도 했다. 회사로부터 다양한 선물도 받을 수 있었다. 멤버 입장에서는 감사하고 좋은 일이었지만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나 보다. 1년 간의 활동 이후, 인텔 게임인은 해산되었다. 하지만 이 활동 덕분에 나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생겼다.
굉장히 유명한 게임 개발자의 블로그가 있었다.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어쩐지 외부 행사에는 참가하지 않는 분이셨다. 신비주의 이신 건가? 어떤 분인지 궁금했는데, 이후 내가 다니는 회사의 대표님으로 만나게 된다. 이 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자. 내가 꿈꾸던 일본 C회사의 직원 분이 운영하는 블로그도 있었다. 블로그를 통해 친해졌는데, 이후 일본 사업을 진행할 때 항상 도움이 되어 주셨다. 현재도 연락하고 지내고 있으며 아마 향후에도 일본 출시를 한다면 이 분을 통해서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외에 일본의 K회사에서 K 디렉터의 게임을 만드는 분도 있었다. 세계적인 디렉터와 게임을 개발하다니 너무 부럽고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C회사와 K회사에서 일하는 분들의 블로그는 오래지 않아 닫히게 되었다. 회사에서 제지한 탓이었다.
이렇게 많은 이웃들 중에서 특히 나에게 큰 영향과 영감을 준 형님이 계신다. 게임기 컬렉터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시는데, 처음에는 닉네임 때문에 그저 수집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직접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의 대표 겸 개발자였다. 소규모 회사를 운영하시다가 지금은 1인 개발로 돌아서셨는데, 이력을 보면 게이머라면 누구나 알 법한 유명 회사 출신이시기도 하다. 더 규모가 크고 남들이 감탄할 만한 게임에 참여하실 수 있는 충분한 실력과 커리어가 되셨을 텐데 형님은 자신의 게임을 만들기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그 도전은 수없이 반복되며 계속해서 게임을 만들고 계시다. 가장 대단한 점은 욕망 컨트롤이다. 내가 직접 만든다면 ‘조금만 더’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끊어내는 의지와 그 안에 코어를 담아내는 본능은 역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형님의 회사인 ‘게임 뮤지엄’의 신작을 빠짐없이 한다. 이 정도면 게임에 올인한 고독한 중년이 그려질 텐데, 아내와 아이들로 충만한 가정까지 꾸리고 계시다. 이 정도면 뭐 하나 꿀리지 않는 완벽한 개발자의 이상이 아닌가? 게임을 즐기고 만들며 자신에게 없는 새로운 스킬을 늘려가기 위해 끊임없는 공부도 한다. 다른 사람이 탄성을 지를 만한 대규모 게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가? 나는 이 형님이 너무 대단한 게임 개발자로 보인다. 블로그를 통해 이런 분을 알게 되고 심지어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큰 이득이다.
게임기 컬렉터 형님을 알게 되고 게임 블로거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보통 연말에 한 번 정도 진행했고, 해외에 있는 이웃 블로거가 한국에 들어온다고 하면 우루루 모이기도 했다. 덕분에 더 많은 다양한 게임 블로거를 알게 되며 정말 좋은 인연들이 생겨났다. 게임에 진심이신 분들과 지난 게임을 추억하고 신작을 같이 플레이한다는 것. 술자리에서도 내내 게임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한동안 지속되던 게임 블로거 모임도 요즘은 시들하다. 코로나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삼삼오오 친한 분들끼리 모이기는 하지만 이제 다 같이 모이기는 힘든 걸까?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인터넷에 괴 문서가 돌았다. 여러 사람이 이를 알려주었고 그중에는 게임 블로거 동생들도 있었다. 9000명에 가깝던 트위터 팔로워는 대다수가 적으로 돌아섰고 끔찍한 멘션과 협박성 DM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홉 번의 실수) 이 타이밍에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질렀다. 해명을 한 것이다. 일단 좌표가 찍히면 그 뒤에 하는 해명은 오히려 조롱 거리가 된다. 결국 트위터 계정을 삭제했다. 더 두려운 것은 블로그였다. 수천 명이나 되는 블로그 이웃들까지 나를 공격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웃들은 오히려 나에게 괜찮냐고 물으며 어떤 놈이 저런 짓을 하냐고 분개했다. 10년 지기 친구나 부모조차도 나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 유일하게 믿어주는 분들이 온라인 인맥이라니. 그래서였을까?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답답한 마음을 서로이웃 공개 글로 올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살 충동으로 고통받을 때에도 수없이 글을 올렸다. 어찌 보면 찌질하게 나 도와주세요 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버티기) 일부 이웃 분들은 한동안 내 블로그를 떠났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 같아도 힘들어하는 글만 올리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나를 욕하지 않았다. 어떤 분은 메일을 보내서 회계 부분을 봐주시겠다고 했고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는 분도 있었다. 심지어 굶지 말라며 돈을 보내주겠다는 분까지 있었다. (물론 받지 않았다.) 세상에 내 편이 모여있는 유일한 곳. 그곳이 나에게는 블로그였고, 끝까지 나를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들이 서로 이웃이었다.
그중에서도 게임기 컬렉터 형님은 더욱 감사한 분이다. 재판을 다녀올 때면 먼저 연락을 주셔서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셨다. 어설픈 위로로 나를 약하게 만들기보다는 상대에게 함께 분노해 주셨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나를 위해 자료를 찾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동경하는 게임 개발자가 나의 편이라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누군가 다른 동생이 나 같은 일을 겪는다면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 싶었다. 물론 겪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너무 의존하고 매달리면 형님이 나를 멀리하게 될까 싶은 생각에 살짝 거리감을 두기도 했다. 혼자 너무 생각이 많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어진 고난의 나날을 버텨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감사하는 포스팅을 올리며 질문을 남겼다. ‘여러분 덕분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받은 것이 큰데,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요? 하는 질문에 누군가가 댓글을 달았다. ‘멋지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누구의 댓글인지 찾아보려고 했지만, 삭제되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내 마음속에는 남아있으니까.
생업이 바빠지고 SNS가 다양해지며 점점 이웃 블로그에 가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나도 그렇고 모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나의 가장 힘든 시기를 함께 해주 신 분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나의 블로그에 연결되어 있는 모든 분들, 새롭게 이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분들까지. 나에게는 현실의 친구들보다 더욱 소중하다. 앞으로도 우리 오래 가요. 더 나이 들어서도 항상 감사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