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시간 아래 평등하다
고등학교 3학년. 지구 과학 선생님과의 결전이 시작된 직후, 백곰에게 SOS를 쳤다. (쟤물포 선생님의 가르침) 나의 좁은 인맥 안에서는 최고의 공부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었어) 짧은 시간 안에 성적을 최대한 올려야 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방법이 있긴 한데, 가능하겠어? 왜? 너 일도 하잖아? 그럼 불가능해? 음. 일단 알려는 줄게. 프린세스 메이커 알지? 당연하지! 네가 그 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남자인데? 그럼 프린스 메이커라고 하던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너의 모든 능력치를 적어. 과목별로. 이 능력치는 하루에 한 번 오르는 거야. 잠자기 직전에. 오 멋진데? 이제부터가 본론이야.
백곰에게 전수받은 방식은 실로 단순했다. 하루의 모든 활동을 초 단위로 적는 것이었다. 분 단위가 아닌 초 단위로. 그리고 잠자기 전에 오늘의 모든 시간을 합산해서 능력치에 더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합산하는 것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백곰은 상관없다고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매일 공부 시간을 단 1초라도 늘릴 것. 실로 명쾌한 미션이었다. 처음에는 욕심을 내서 1시간을 늘리기도 했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니 1초를 늘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밥을 먹으면서도 동시에 공부를 했고 걸으면서도 공부를 했다.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공부를 해야 했다.
시간을 늘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1시간이 넘게 걸리는 통계와 합산 시간을 줄이는 것.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했는데, 답은 명확했다. 합산해야 하는 가짓수를 줄이면 되는 것이다. 한 과목의 공부를 시작했을 때 끊지 않고 최대한 오래 버티면 합산할 항목이 줄어든다. 만약 내가 수학 공부를 30분 동안 한다고 치자. 내내 집중해서 한다면 ‘수학 + 30분’으로 표기되지만, 10분마다 잠깐 멍 때리기를 한다면 ‘수학 10분, 멍 때리기 5초, 수학 10분, 멍 때리기 5초, 수학 9분 50초’가 되어 버리는 것. 따라서 억지로 집중력을 높여야 했고 공부 중에 친구가 말을 걸어도 무시해야만 했다.
공부 잘하는 방법이 뭐냐고? 어떻게 반에서 48등 하던 성적이 전교 3등까지 올라갔냐고? 단지 이 것뿐이었다. 초 단위로 기록하고 저녁에 통계를 내며, 매일 1초라도 공부 시간을 늘리는 것. 이 단순한 솔루션은 나를 억지로 공부에 잡아 두었으며 강제로 집중하게 만들었다. 능력치 표기의 또 다른 장점은 밸런스였다. 수학을 좋아한다고 수학 공부만 매일 하다 보면 한쪽 수치만 높아진다. 따라서 모든 과목을 골고루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는 싫어하는 과목에 사용하는 시간과 좋아하는 과목을 전략적으로 배치하게 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손님이 없으면 계속 공부를 했다. 사장님은 이를 오히려 좋게 봐주셨다. (으뜸) 그래도 안 되면 잠을 줄였다. 한 번은 끔찍한 경험이 있었다. 퇴근하면서 영어 단어장을 보는데, 누군가가 앞에서 달려와 배에 펀치를 날렸다. 내가 앞으로 쓰러지자 웃으며 여러 명이 달려와 마구 밟아 댔다. 누구인지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나에게 원한이 있었던 녀석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길을 걸으며 공부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놈들은 영업이 끝난 지하상가 한 복판에서 나를 한참 동안 밟다가 낄낄거리며 뛰어가 버렸다. 그 뒤에 내가 한 행동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절뚝거리며 일어나서는 다시 영어 단어장을 펼친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지독했다. 하지만 얻어맞은 몇 분간의 손해는 메꿔야 했다.
공부의 목적은 복수였다. 따라서 만족스러운 복수가 끝나자마자 공부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하지만 시간 관리의 엄청난 힘을 이미 느낀 뒤였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진다.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에 따라 성취가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동시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도키메키 메모리얼이라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덕분이었다. 캐릭터 능력치 중에서 ‘잡학’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시시껄렁한 수다나 아무 소용없을 것 같은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을 때 높아지는 수치다. 즉, 세상 어떤 일에도 능력치를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동등하게 주어진다면 모든 인간 능력치의 총합은 동일하다. 다만 이 능력치가 어디에 할당되었는지가 다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발가락으로 과자 봉지 뜯기’ 라든가 ‘선 채로 잠자기’ 같은 묘한 능력치가 남보다 높을 수도 있고, 오타쿠 경험이 남보다 높을 수도 있다. 연애 스킬에 능력치가 할당되었을 수도 있다. 결국 서로 간의 능력치 배치가 달라졌을 뿐 같은 시간을 살아왔다면 모든 능력치의 총합은 동등하기에 인간은 평등하다.
이렇게 독특한 경험주의자가 되면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을 더욱 존중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보다 어린 분들은 무시하나? 그렇지 않다. 틀림없이 최소한 한 개 이상의 스탯 능력치는 나보다 뛰어날 테니까. 총합은 내가 높더라도 틀림없이 나보다 나은 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순히 복수를 위해, 성적을 단기적으로 올리기 위해 했던 초 단위의 시간 관리 방법은 나를 경험주의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때의 강렬한 경험은 대학 생활을 하는 내내 트레이닝되었고, 결국 나에게 온전히 자리 잡았다. (평화로운 대학생활)
현재도 나는 시간 효율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도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잠부터 줄인다. 잠이야말로 경험 주의자 입장에서는 가장 의미가 없는, 버려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굉장히 빡빡한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누군가를 만날 때는 무조건 상대방에게 집중한다. 그 어떤 상대라도 나보다 나은 구석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이 만남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따귀를 때린 지구 과학 선생님과, 공부로 복수하라며 등을 떠민 쟤물포 선생님, 여기에 극한의 시간 관리 기법을 알려준 사촌형 백곰. 그리고 무엇보다 능력치 관리를 알게 해 준 프린세스 메이커와 도키메키 메모리얼이 합심해서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종종 나의 시간 관리에 놀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다. 관리하지 않는 시간에 있는 분들도 쇼츠를 보든 공상을 하든 무언가 경험을 쌓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까. 누구나 동일한 시간만큼의 경험이 각각 다른 능력치로 쌓이고 있을 테니까. 고작 시간 관리 여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우리는 경험의 시간 아래서는 모두 평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