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바퀴벌레 재판

스스로를 세상에서 지워야 했던 4년간의 이야기

by 마이즈

에세이 연재를 고민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재판에 대한 기억을 마주하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를 짚어오며 용기를 갖게 되었고, 언젠가는 넘어야 할 벽이라는 생각에 글을 쓴다. 재판이라는 것이 그렇다. 보는 입장에 따라 선악이 달라질 수 있으며 동일한 상황이라도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다르게 기억될 수 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쓰인 것임을 밝힌다. 이를 통해 나에게 실망하고 떠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내가 받아들여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줄이고 줄였지만, 그럼에도 평소보다 조금은 긴 글이 되었다. 한 편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글이기에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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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내용을 듣지도 않고 쫓아내는 경우도 많았고, 이길 확률이 희박하다며 다른 곳을 찾아보라는 완곡한 거절도 많았다. 수없이 거절당한 끝에 결국 잘못된 선택을 했다. 배신자들에게 인벌을 내리리라! 칼을 들고 동료 중 하나가 사는 동네로 이동했다. 집 주소를 찍고 지도 앱을 켜는데, 문득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영화처럼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화목한 모습을 보고 돌아오거나 했다면 좀 더 이야깃거리가 되었겠지만, 그저 한동안 전철역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나는 죽음 직전에 부활했다. 이유는 단 하나. ‘억울하게 죽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누군가를 해치는 방법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함에 미쳐서 스스로 빌런이 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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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인맥이 있는 게임회사 ‘돌핀’의 대표를 통해 변호사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동창이라고 했다. 상담을 받는데,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하셨다. 따라서 승소 비용을 따로 책정하지 않고 이기든 지든 고정 비용으로 계약을 했다. 재판에서 나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지분은 대부분 나에게 있었고, 회사의 크고 작은 일에 개인 사비를 쏟아부었다. 심지어 카드론을 내면서까지 에어컨을 설치해주기도 했고, 동료들이 불편해하는 장애인 학교 수업을 직접 나가면서까지 사무실을 유지했다. (아홉 번의 실수) 무엇보다도 노동부에서 내가 모든 내용에 시인한 서류가 있었다. (버티기) 검사실에 불려 가 옛 동료들과 대질 심문을 받은 끝에 결국 형사 재판으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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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어쩌면, 이길 수도 있겠는데요?’


변호사님이 반가운 소리를 했다. 쟁점이 되는 모든 포인트에 명확한 증인들이 있는 것이다. 초반의 은행 부지점장님과 투자가 분이 있었고, 회사 가치를 평가한 신용보증 기금 담당자 들도 있었다. 심지어 우리 회사에 합류하기 위해 옛 동료들과 함께 면접까지 봤지만, 그들의 반대로 함께하지 못한 분도 계셨다. 하와이와 중국 출장에서 함께 했던 비즈니스 파트너 분들, 회식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이 모두 증인이었다. 증인 신청을 해야 할 사람이 조금 많기는 하지만 확보되기만 하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다. 희망이 보였다.


한 분씩 찾아가 설득했지만, 다들 증언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거절한 분이 열명 가까이 되었다. 나에게는 인생이 달린 일이지만 그분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장애인 학교의 원장 선생님은 학교의 이미지 문제를 거론했다. (내려가는 삶의 경사면) 다른 분들도 구설수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증언 한번 잘못했다가 꼬투리라도 잡히면 어떻게 하냐고. 혹여나 내가 재판에서 지면 자기들에게 문제 생기지 않겠냐고. 제발 부탁한다고 빌어도 아무 소용없었다. 이때 증언을 받았다면 재판은 싱겁게 끝났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토록 믿는 동료들도 뒤통수를 치는데, 남이라면 오죽할까? 이해는 되지만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 모든 사태가 끝난 뒤 그때 미안했다며 연락 오는 분들이 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분들의 연락을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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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재판의 증인이 되어 준 사람은 셋이었다. 회사 설립에 깊이 관여했던 흰 늑대. 그리고 창업 전부터 재판 중반까지 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본 사람, 5년 반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낸 연인 MM. 마지막으로 모두 떠난 이후 사업 진행에 계속 방해가 들어오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함께 분노해 준 친구 토이였다. (생존형 개발자) MM의 첫마디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미 헤어진 사람이기에 좋은 감정은 없습니다만, 잘못된 일을 모른 척 넘어가고 싶지는 않아 이 자리에 섰습니다. 불의를 그냥 지나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5년 반 동안 알지 못했던 멋지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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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고소한 10명의 옛 동료들은 모두 한 두 번씩 증인으로 출석해야 했는데, 그중 대학 동창이자 10년 지기였던 TS 군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부모님까지 모시고 온 것이다. 네가 잘못한 게 없다면 무서울 게 없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TS 군의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동료들이 나를 고소한 초기, TS 군이 아직 나와 함께 버티며 애쓰던 시절, 아버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네가 이렇게 힘들면 그 친구는 얼마나 힘들겠냐고 하시며 끝까지 힘이 되어 주라고 당부하셨단다. 그 말에 얼마나 감동했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네요.


결국 쟁점은 회사의 돈이 떨어지던 시점에 진행한 프레젠테이션으로 좁혀졌다. 회사의 상황을 고지하고 자유롭게 퇴사를 선택하라고 했던 것이 사실인지. 그 말을 듣고 스스로 급여를 반납한 것이 맞는지, 휴직 처리는 왜 동의했는지. 쟁점이 좁혀지며 확실히 이길 자신이 생겼다. 옛 동료들은 나를 고소하기 직전에 모두 단톡 방을 나갔지만, 심리적으로 무너진 나는 그러지 못한 채 방치해 두었는데, 이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나에게만 지난 우리의 모든 메신저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들은 확인할 수 없는 대화 로그가 끝도 없었다. 네이트온, 텔레그램, 카카오톡. 이를 모두 캡처하고 코멘트를 달아 법원에 제출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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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검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의 옛 동료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피해 갔을까? 황당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가족들을 붙잡고 협박하셨지요?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어이가 없었지만 더 황당한 것은 판사님이 그 말을 믿는다는 점이었다. 내가 동료들의 집에 쳐들어가서 가족들을 붙잡고 동의서에 도장을 찍도록 협박했다고? 무슨 특수 요원이라도 되나? 아니, 그렇게까지 하면서 이 분들을 붙잡아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뭔 데요? 옆에서 변호사님은 나에게 발언하지 말라고 하셨다. 법적인 다툼과 무관한 감정적 발언은 의미가 없다고. 오히려 불리해진다고.


그다음으로 우리가 준비한 것은 회사의 서버와 데이터 이슈였다. 옛 동료 중 한 분의 사설 서버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회사의 설립자 중 하나인 핵심 임원이기에 개인 서버를 사용하기로 합의했었고 메신저 대화 내용도 있었다. 회사의 중요 데이터를 일반 직원에게 함부로 맡길 수 없지 않나요? 반론은 똑같았다. 협박.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족을 가만 두지 않겠다고 했다고.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납치를 시도했단다. 고소인들끼리의 단톡 방이 있는 것도 알고 그 들끼리 회식을 한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대체 나를 어디까지 악당으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일까? 이걸 믿는 판사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검사가 쐐기를 박았다. 단 한번, 이성을 잃고 단체 메일을 쓴 적이 있었다. 앞부분에는 우리가 처음부터 함께 시작한 이야기들을 기록했고 이렇게까지 해야겠냐고 한탄을 하며, 원한다면 가진 거 다 주겠다고 다 가져가버리라고 구체적으로 얼마씩 언제 줄 테니 나 좀 내버려 두라며 욕을 잔뜩 쓴 폭력적인 내용이었다. 옛 동료들에게 시달리고 집에 사채 업자가 찾아가는 상황이 극한에 몰려 반쯤 미쳐가는 상황이었다. 이 메일을 쓰고 며칠 뒤 나는 자살을 시도했다. (아버지 : 생명의 은인) 구석에 몰린 채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한 탓에 큰 실수를 한 셈이다.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여기에서는 다 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제발 앞부분부터 읽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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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기일. 변호사님의 말에 따르면 유죄가 확정될 경우 그 자리에서 바로 끌려가게 될 거라고 했다. 만약 교도소에 가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공부하며 추후 어떻게 복수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계획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사회에서 나를 지우는 일이었다. 내가 사라질 경우, 어머니의 생활비와 월세는 어떻게 할 것인가. 회사의 프로젝트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인수인계를 해두어야 했다. 사라지더라도 주변에 민폐가 없도록 하나하나 조정 하고 있으니 조금씩 더 사회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결국 먼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연인이었던 MM과 진작 헤어지기를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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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을 앞둔 최종 변론. 변호사님은 절대 감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나는 말을 듣지 않았다. “저는 당당합니다.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절대 거짓된 사과와 반성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을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 부디 현명하게 판단해 주십시오!” 판결은 유죄. 하지만 집행 유예였다. 징역을 살게 되면 나이 든 어머님이 혼자 생계를 유지하기 곤란하다는 취지의 서류를 변호사님께서 제출했다고 하셨다. 나오는 길에 최종 발언을 마음대로 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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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항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놀랍게도 재판은 판사가 누군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데, 우리 사건은 1심에서 판사와 검사가 서너 번씩 교체되었다. (사건이 길어지면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하셨다.) 깊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은 사건이고 사용하지 않은 증거도 많으니 좀 더 싸워보자고 하셨다. 비용 문제로 고민되어 아버지에게 연락했는데, 흔쾌히 지불해 주셨다. 아직 억울한 거지? 그럼 싸워라. 빚은 못 갚아줘도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다.


나머지 증거들은 옛 동료들을 배려해서 사용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어찌 보면 치부일 수 있고 밝혀지면 곤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족을 인질로 붙잡은 협박 범으로까지 몰아세우는데, 봐줄 이유가 없었다. 첫 번째는 옛 동료들 중 일부가 대출 문제나 운영하는 별도의 회사 문제로 공금을 돌려 쓰거나 혹은 개인 회사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한 거짓 계약을 진행한 경우였다. 서류를 검토하다가 나중에 알게 된 부분이었는데, 회사 계좌를 사용해야 하므로 일반적인 직원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두 번째는 법인 카드 내역을 뽑은 정보였다. 회사 일과 무관한 곳에 전혀 다른 지역에서 사용한 것이 찍혀 있었고 근무 시간에 전혀 다른 지역에 있었다는 통신사 자료도 잔뜩 제출했다. 심지어 한낮에 숙박 업소 내역들까지 나왔다. 자료를 수집하고 전달하면서도 치졸하다고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개인사를 파헤치면서 해야 하는 걸까? 그냥 적당한 합의로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다. 합의되지 않은 편이 오히려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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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재판을 시작하기 전, 합의 기간이 있었다. 변호사님은 합의를 시도하지 않으면 무조건 불리해지니 차라리 거절당할 조건으로 제안하라고 하셨다. 다만, 검사나 판사가 보기에 납득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도 불리해질 수 있으니 적당히 하라고 했다. 결국 지난 1년간의 월수입 평균을 계산해서 몇 년에 걸쳐 매달 얼마씩 지급하겠다는 식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만약 받아들인다고 하면 더 큰일이었다. 거의 20년간 빚만 갚아야 할 테니까. 불안한 마음으로 두 명을 만났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일시불로 몇 억을 주지 않으면 합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모두 그렇게 합의했으니 더 만나볼 필요도 없을 거라고 했다. 당시의 나는 아파트도 경매로 넘어간 상태였고 매달 사채 빚을 갚고 있었다. 계좌에는 몇 만 원 밖에 없는 상황인데 몇 억을 달라고? 불가능한 요구였다. 그렇게 합의는 무산되었다.


나는 또다시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이미 한 번 했기 때문에 두 번째는 쉬웠다. 일본에 있는 동생을 직접 만나 하루 동안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건넸다. 어머니를 잘 부탁해. 나 몇 년간 못 볼지도 몰라. 나를 여러 번 도와준 수상한 투자가는 이제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재판 결과에 따라 본인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을 테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인수인계를 진행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변호사를 소개해준 감사한 ‘돌핀’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다들 잘 될 거라고 했지만, 믿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더 이상 복수를 떠올리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만약 교도소에 가게 되더라도 40대에는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검사는 최초 6년을 구형했지만, 재판을 진행하며 2년 정도로 줄었다) 그 안에서 또 무언가를 배워와야지. 교도소에 다녀온 게임 개발자는 유니크할지도 몰라. 아무도 안 뽑아주면? 그냥 혼자 만들면 되는 거지. 이런 것도 견뎠는데, 내가 뭘 못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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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는 이번에도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나의 인간성과 됨됨이를 이야기했고 내 옆에서 겪은 고소인들에 대해 증언했다. 나를 10년 이상 지켜봐 오신 게임 개발자 Y대표님도 탄원서를 써주셨고 법원에 함께 출석을 해주시기까지 했다. MM은 멀리서 나를 응원했고 동생과 아버지도 격려의 말을 건넸다. 그렇게 최종 기일이 다가왔다. 판결문을 듣는 동안 내내 전율이 일었다. 판사님은 나의 모든 행동을 인정해 주었다.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모두에게 납득을 시키려고 한 점. 책임감 때문에 더욱 스스로 몰리게 된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그동안의 억울함이 모두 풀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유죄였다. 사유는 상상도 못 한 부분이었다. 진정성과 의도는 모두 이해하지만 애초에 급여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수많은 스타트 업들은? 인디 개발사들은? 많은 곳들이 이를 모른 채 급여에 대해 상호 합의를 진행하고 있다. 아니면 최소한 공증받은 문서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MM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이 사람들 각서나 동의서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야. 힘든 결정을 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래. 결국, 모두 내가 함부로 사람을 믿고 잘못 판단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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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를 해서 대법원을 갈지 말지 변호사님들과 이야기를 했다. 추가로 나올 만한 게 있을까요?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싫어하실 걸요? 뭔데요? 위증입니다. 10명이나 되는 사람을 심문하다 보니 서로 말이 안 맞아요. 서로 입을 맞추지 못했거나 기억이 각각 다른 모양입니다. 누구는 협박당했다고 하고 누구는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모두 함께 들었다는 사람도 있고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고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엄청 많습니다. 완벽한 위증이죠. 그럼 이 재판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나요?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기는 합니다만, 하지만 다른 재판을 추가로 하셔야 해요. 위증은 고소하셔야 합니다. 제가 그 사람들을 고소한다고요? 네. 그렇지요.


재판을 시작하고 이미 4년이 지나 있었다. 너무 힘든 시간이었고, 그들도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했다. 복수심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들도 고소당하는 입장이 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해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복수의 연쇄는 누군가가 끊어야겠지요. 하지만 자료는 주세요. 또다시 저를 건드린다면 그때 사용해도 되겠지요? 혹시 모르니 내 몸을 지킬 무기는 가지고 있어야지요. 변호사님은 꼼꼼하게 10명의 모든 증언에 밑줄을 그어 보내주셨지만, 이 문서를 사용할 일은 없기를 바랐다. 그들은 모르는 나 혼자만의 내려놓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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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4년간의 재판은 막을 내렸고 나는 최종적으로 징역 10개월에 집행 유예 2년을 받은 전과자가 되었다. 최초 6년 구형에 비해서는 많이 줄어들긴 한 셈이다. 이 글은 재판을 진행하며 직접 기록한 블로그의 서로 이웃 글 및 개인 기록을 통해 작성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관점임을 밝힌다. 그들에게 나는 최악의 빌런이고 악당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나 선과 악은 상대적인 것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을 악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두렵고 걱정스러웠던 것뿐이 아닐까? 자칫하면 수억 원의 빚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불안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희생한 것을 보상받고 싶었던 것뿐이 아닐까? 그들끼리 불안을 이야기하면서 탓하기 위한 대상을 찾다가 나를 지목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와중에 그가 만들어 배포한 괴 문서가 트리거가 된 것이겠지.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시간은 공장에서 보낸 2년도 아니었고, 자살 충동에 사로잡혀 보낸 시기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가난한 왕따 시절도 물론 아니었다. 가장 믿었던 동료들과 서로 칼을 겨누고 싸워야 했던, 그리고 그 와중에 세상에서 나를 스스로 지우려고 노력했던 이 4년간이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게 스스로 먼지가 되어가는 그 과정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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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은 마지막 인사로 인상 깊은 말을 남기셨다.


“앞으로는 저희 같은 형사 전문 변호사 만날 일이 없으셔야 합니다.”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1년 뒤, 우리는 다시 재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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